한국과 일본 양국이 공통으로 직면한 위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선 '한일 경제공동체'를 하루 빨리 조성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양국의 정치적 통합이 아니라 에너지·노동·기술 등 경제적 측면에서 필요에 의한 협력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의미다.
윤덕민 한국외국어대학교 석좌교수(前 주일본국대한민국 특명전권대사)는 20일 오전 일본 도쿄 더 오쿠라 도쿄에서 '어떻게 한일경제공동체를 만들 것인가?'라는 주제 발표에서 "단순한 관세 철폐를 넘어 지정학적 위기, 초고령화 사회, 에너지 및 기술 패권 등 양국이 공통으로 직면한 과제를 함께 해결하는 과정 자체가 곧 경제공동체를 이루는 길"이라면서 이같이 밝혔다.
윤 교수는 "특히 제조업 전 분야를 장악하고 있는 중국의 명목 GDP(19조 5000억 달러)에 맞서 한국(2조 달러 미만)과 일본(5조 달러 미만)이 각개전투를 벌여서는 승산이 없다"면서 "양국이 가치관을 유지하면서 생존하려면 한일 협력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한일 경제공통체 구축 논의는 수년전부터 있어 왔지만 구체적으로 진전되고 있지 않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날 세션에 참석한 이형희 SK그룹 부회장은 "SK 최태원 회장과 대한상의를 중심으로 지난 3년간 이러한 주제를 수차례 던져왔고, 최근 급변하는 세계 질서 속에서 한국 내에서 양국이 힘을 합쳐야 하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면서 "문제는 비자문제나 신 경제조약 체결, 청년 스타트업 교류 등 구체적인 다음 진도로 전혀 나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시부야 카즈히사 간세이가쿠인대학 교수는 "직접적인 경제공동체 논의는 양국 모두 정치적으로 다루기 매우 민감한 부분"이라면서 "또 일본 내부 사정과도 맞물려 있는데, 지난 20년간 일본 경제가 정체되면서 사회 전반이 외부 경쟁에 피로감을 느끼고 내수에만 집중했을 뿐더러 과거 한국과의 역사 갈등에 대한 기억 때문에 외교적 이슈 자체를 회피하려는 경향도 있다"고 밝혔다.
그는 현실적인 대안으로 한국이 추진 중인 CP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가입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부야 교수는 "CPTPP에 이미 참여 중인 일본과 가입을 원하는 한국이 다자간 파트너십 체제 안에서 협의를 진행한다면 자연스럽게 협력을 심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윤 교수도 "일본과 유일하게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지 못했는데, 한국이 CPTPP에 가입하면 한일 FTA 체결과 동일한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일 양국의 에너지·공급망 협력 확대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앞서 지난 19일 열린 한일정상회담을 계기로 한일 양국은 어느 한쪽에 원유·석유의 공급 차질이 발생할 경우 물량을 서로 융통해주는 스와프 체계 구축 방안을 마련하기도 했다.
윤 교수는 "최근 이란 전쟁 등으로 인해 국제 정세의 불안정성이 극에 달하고 있는데, 이는 에너지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한·일 양국에 실존적 위협"이라면서 "한일 경제공동체는 단순히 이익을 나누는 차원을 넘어, 생존을 위한 '에너지·공급망 안보 동맹'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에너지 공동 구매 및 스와프를 비롯해 인공지능(AI) 시대에 대비한 데이터·전력 인프라 공동 구축, 첨단 기술 공동 개발과 안정적 공급망 형성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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