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끼 식사 가격이 1만원을 훌쩍 넘기는 식당이 늘어나자 가격 부담을 줄이면서도 비교적 편안하게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장소를 찾는 움직임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이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식사를 제공하는 사찰 공양간이 새로운 대안 공간으로 떠오르고 있다.
대표적인 곳은 서울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 내 공양간 '서래원'이다. 봉은사 입구 오른편 건물에 자리한 이곳은 불교 신자가 아니어도 누구나 이용할 수 있어 점심시간이면 인근 직장인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삼성동 일대가 대표적인 오피스 밀집 지역인 만큼 비교적 저렴한 가격과 차분한 분위기를 갖춘 공양간이 직장인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있다는 분석이다.
서래원에서는 잔치국수와 비빔국수, 냉모밀국수, 메밀막국수, 짬뽕순두부 등 비교적 대중적인 메뉴를 판매하고 있다. 1만2000원 수준인 짬뽕순두부와 메밀콩국수 등 일부 메뉴를 제외하면 대부분 가격대가 6000~8000원 선에 형성돼 있다. 여기에 흰쌀밥이 무료로 제공돼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가격 대비 양과 만족도가 높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치와 대파김치 역시 절에서 직접 담가 제공하고 있어 자극적이지 않고 깔끔한 맛을 선호하는 방문객들의 만족도도 높다는 반응이다.
서래원 관계자는 "공양간은 사찰 신도와 자원봉사자들의 참여로 운영되다 보니 일반 식당보다 운영비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다"며 "재료비 중심으로 가격을 책정해 누구나 부담 없이 식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과거에는 봉은사를 찾는 신도 방문 비중이 높았다면 최근에는 점심시간마다 인근 직장인 방문이 크게 늘었다"며 "외국인 관광객들도 사찰 음식과 합리적인 가격에 관심을 보이며 방문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르데스크가 평일 오전 11시가 조금 넘은 시각 현장을 찾았을 때도 내부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양복 차림의 직장인들은 물론 봉은사를 찾은 방문객과 인근 시민들도 부담 없이 식사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가격 부담이 크지 않다 보니 테이블마다 국수나 순두부 같은 메인 메뉴 외에도 만두 등 사이드 메뉴를 추가로 주문해 함께 나눠 먹는 풍경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직장인 서예지 씨(30·여)는 "삼성동은 워낙 물가가 비싸 평소 도시락을 준비해 다니는 편인데 가끔 국수가 생각날 때 동료들과 함께 방문한다"며 "가장 비싼 메뉴인 짬뽕순두부도 1만원 초반대라는 점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요즘 삼성동에서 이 정도 가격에 식사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또 다른 직장인 최수형 씨(37·여)는 "오늘은 6명이 함께 와 국수와 만두를 주문했는데도 5만원이 채 나오지 않았다"며 "회사 주변에서 이 정도 가격에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곳은 흔치 않다"고 말했다. 이어 "오픈형 주방에서 위생 장비를 착용한 채 조리하는 모습을 보니 신뢰가 갔다"며 "음식도 자극적이지 않아 식사 후 속이 편안한 느낌이 든다"고 덧붙였다.
공양간을 찾는 직장인들이 증가하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이 지목된다.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4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19.37로 전년 동기 대비 2.6% 상승했다. 소비자들이 자주 구매하는 품목 위주로 구성된 생활물가지수 역시 올해 1월 2.2%, 2월 1.8%, 3월 2.3%를 기록한 데 이어 지난달에는 2.9%까지 상승 폭이 확대됐다.
국제유가와 원자재 가격 상승이 식재료비와 물류비 부담으로 이어지면서 외식업계 전반의 가격 압박도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결국 직장인들이 점심 한 끼에서도 '가성비'를 찾는 소비 흐름이 강화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서래원의 가격 경쟁력은 인근 프랜차이즈 식당과 비교해도 저렴한 편이다. 실제 삼성동 일대 프랜차이즈 국수 전문점 '국수나무 삼성중앙점'에서는 잔치(생면)국수가 7200원에 판매되고 있으며, 프랜차이즈 짬뽕 전문점 '짬뽕지존'의 순두부짬뽕밥은 1만3500원 수준이다. 무료 공깃밥 제공과 비교적 넉넉한 양까지 고려하면 직장인들이 체감하는 가격 부담은 더 낮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래원의 인기 요인이 단순히 가격 때문만은 아니라는 평가도 나온다. 삼성동 일대는 점심시간마다 직장인 유동 인구가 집중되는 대표적인 업무지구다. 이 때문에 복잡한 식당가보다 비교적 조용하고 차분한 공간에서 식사하고 휴식을 취하려는 직장인들이 봉은사를 찾는 경우도 적지 않다.
봉은사 경내에는 나무와 전통 건축물이 어우러져 있어 도심 한복판에서도 한적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비가 내리는 날씨였음에도 일부 직장인들은 식사를 마친 뒤 곧바로 회사로 복귀하기보다 절 내부를 천천히 둘러보며 짧은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빽빽한 빌딩 숲 사이에서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식당을 넘어 도심 속 쉼터 역할까지 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고물가 장기화와 외식비 상승 흐름 속에서 사찰 공양간과 같은 대안 소비 공간에 대한 수요가 더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이홍주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외식 물가 상승으로 직장인들의 점심값 부담이 커지면서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은 공간을 찾는 소비 경향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며 "사찰 공양간처럼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이 새로운 대안 소비처로 주목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단순히 가격이 저렴한 것에 그치지 않고 위생과 음식 품질, 건강한 식재료에 대한 만족감까지 더해지면서 직장인들의 재방문율도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며 "전쟁과 원자재 가격 상승 등의 영향으로 당분간 고물가 상황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만큼 이러한 소비 흐름은 더욱 확산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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