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해협에 80일 넘게 묶여 있던 한국 유조선이 처음으로 봉쇄 구간을 빠져나오기 시작하면서, 중동 전쟁 이후 멈춰 섰던 한국 선박들의 추가 통항 가능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 중인 한국 유조선 ‘유니버설 위너호’의 실시간 위치가 표시된 화면.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마린트래픽(MarineTraffic) 캡쳐
연합뉴스 등에 따르면 블룸버그통신은 20일(현지시간) HMM이 운영하는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유니버설 위너(UNIVERSAL WINNER)호’가 호르무즈 해협 진입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해당 선박은 쿠웨이트산 원유 약 200만 배럴을 실은 채 이란 당국이 승인한 항로를 따라 이동 중이며, 최종 목적지는 대한민국 울산항으로 알려졌다. 미국과 이란의 충돌 이후 호르무즈 해협 안쪽에 발이 묶였던 한국 선박이 통항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외교부도 공식 확인…“이란과 협의해 통과 중”
외교부도 같은 내용을 국회 보고 과정에서 확인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20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지금 이 순간 우리 유조선이 이란 측과 협의 하에 호르무즈 해협을 빠져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해당 선박의 이동이 이란을 포함한 유관국과의 조율 속에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이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열린 나무호 사건 현안질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뉴스1
외교부에 따르면 이란 측은 한국시간으로 지난 18일 밤 주이란한국대사관을 통해 한국 선박 한 척의 통항이 가능하다는 뜻을 전달했다. 이후 정부는 선사 측에 해당 사실을 공유했고, 선사는 내부 협의를 거쳐 통항을 결정했다. 유니버설 위너호는 19일 새벽 카타르 인근 해역에서 출발해 이란이 지정한 항로를 따라 움직이고 있다.
이번 선박은 오만만 방향으로 이동 중이며 선박 위치 추적 사이트 마린트래픽과 베셀파인더 등에서도 자동식별장치(AIS) 신호가 정상적으로 포착된 것으로 전해졌다. 선박은 다음 달 8일 울산항에 입항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번 통항은 이란 측에 별도의 통행료나 대가를 지급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면서 더 주목받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선박 안전을 위해 이란을 포함한 유관국과 조율하에 이동이 이뤄졌다”며 “비용은 없다”고 밝혔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 중인 한국 유조선 ‘유니버설 위너호’의 실시간 위치가 표시된 화면.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마린트래픽(MarineTraffic) 캡쳐
앞서 미국 재무부 산하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호르무즈 해협 통항을 위해 이란 정권에 자금을 지급하거나 보장을 요청할 경우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이 때문에 한국 유조선이 실제 해협을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미국 제재 문제가 변수로 거론됐다. 다만 외교부는 이번 선박이 제재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으며 미국 측과도 사전 조율이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나무호 피격과는 선 그어…남은 한국 선박 25척도 협의
이번 항해는 HMM 소속 유조선 ‘나무호’가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서 비행체 공격을 받아 화재가 발생한 지 약 2주 만에 이뤄졌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란 측이 나무호 피격 사건 이후 한국 측 반발을 의식해 통항을 허용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그러나 외교부는 이번 통항 협의가 나무호 피격 전부터 진행돼 왔다며 직접적인 연관성에는 선을 그었다.
정부는 중동 전쟁 발발 이후 이란 측과 선박 통항 문제를 놓고 꾸준히 협의해 왔다. 외교장관 간 통화와 특사 파견 등을 통해 호르무즈 해협에 묶인 한국 선박의 안전한 이동을 요청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 현재 이란 내 대사관 기능을 유지하며 외교 채널을 가동 중인 국가 가운데 하나다.
한국 유조선 ‘유니버설 위너호’ 자료 사진 / 마린트래픽(MarineTraffic) 캡쳐
아직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는 한국 선박 25척가량이 남아 있다. 정부는 한국인 선원 탑승 여부, 국내 반입 필요 물자 적재 여부 등을 고려해 추가 통항 대상을 협의하고 있다. 유니버설 위너호가 무사히 통과할 경우 나머지 선박들의 이동 논의도 속도를 낼 가능성이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한국 유조선뿐 아니라 중국 국적 슈퍼탱커 2척도 유사한 항로로 이동을 시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 선박이 모두 해협 통과에 성공할 경우 중동 전쟁 이후 하루 기준 가장 큰 규모의 슈퍼탱커 통행 사례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재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는 한국 선박 20여 척이 남아 있다. 정부는 한국인 선원 탑승 여부와 국내 공급망 영향, 선박 안전 문제 등을 고려해 추가 통항 대상을 이란 측과 협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유니버설 위너호가 무사히 해협을 빠져나갈 경우 장기간 현지에 발이 묶여 있던 다른 한국 선박들의 이동 논의도 본격화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 해상 수송의 핵심 길목이다. 이번 한국 유조선의 통과가 단순히 선박 한 척의 이동을 넘어, 중동 전쟁 이후 막혔던 해상 물류가 일부 풀리는 신호가 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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