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삼성전자 파업]적자에도 터져 나온 '성과급 권리'라는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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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삼성전자 파업]적자에도 터져 나온 '성과급 권리'라는 역설

비즈니스플러스 2026-05-20 14:29:1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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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AI 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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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단어의 본래 의미가 완벽하게 전복되는 기이한 현상을 목격할 때가 있다. '성과급'(成果給)이라는 단어가 그렇다. 이룰 성(成)에 맺을 과(果). 말 그대로 이루어 낸 결과물에 대해 지급하는 보상이다. 성과가 있어야 지급되는 돈이라는 너무도 자명한 이치가 삼성전자 노사 갈등 앞에서는 완전히 길을 잃었다.

중앙노동위원회의 3차 사후조정 회의마저 결렬되며 삼성전자 노조가 오는 21일 총파업 돌입을 선언했다. 파업이라는 극단적 카드를 꺼내 든 결정적 명분은 단 하나, '반도체(DS) 부문 내 적자 사업부에 대한 성과급 배분 문제'였다. 노조의 요구대로라면 적자를 낸 사업부 소속 직원들도 1인당 3억원이 훌쩍 넘는 성과급을 받게 된다. 성과가 없는 곳, 아니 오히려 손실을 낸 곳에 수억 원의 성과급을 달라는 이 '기이한 당당함'을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더 흥미로운 것은 이 기이함의 기저에 깔린 심리다. 사측은 이미 초과이익성과급(OPI) 산정 기준을 양보하고, 성과급 상한 폐지 요구에 대해서도 사실상 우회안을 제시하며 노조의 요구를 상당 부분 수용했다. 

적자 사업부 직원들의 사기 저하를 우려해 일회성 위로금이나 격려금 차원의 보상을 지급하는 것은 기업의 배려이자 경영진의 정무적 판단일 수 있다. 하지만 노조는 사측의 이러한 절충 노력이나 배려에 대해 '당연한 권리'로 포장해 청구서를 내밀었다. 이는 흑자를 낸 부서의 성과를 떼어내 적자 부서와 나누자는, 이른바 '결과적 평등'을 강요한 것이다.

돌이켜보면 보상과 책임의 원칙이 무너진 조직은 필연적으로 쇠락의 길을 걸었다. 중국 전국시대 진나라를 최강국으로 이끈 재상 상앙의 핵심 사상은 '신상필벌'(信賞必罰)이었다. 공이 있는 자에게는 반드시 상을 주고, 죄가 있는 자에게는 반드시 벌을 준다는 이 원칙이 엄격히 지켜졌기에 진나라는 천하 통일의 기틀을 다질 수 있었다. 그러다 상벌의 기준이 모호해지고, 무능력자나 패전한 장수에게도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상이 주어졌을 때, 조직은 무너져 내렸다.

현대사에서도 뼈아픈 반면교사가 있다. 1970년대 후반 영국의 경제를 파탄으로 몰고 갔던 '영국병'(British Disease)과 1978년의 '불만의 겨울'(Winter of Discontent)이다. 당시 영국의 강성 노조들은 생산성 향상이나 기업의 적자 여부와는 무관하게 물가 상승률을 상회하는 과도한 임금 인상을 무리하게 요구했다. 

"파이는 우리가 키우지 않겠지만, 내 몫의 파이는 무조건 더 크게 잘라 달라"는 억지였다. 결과는 참혹했다. 국가 경쟁력은 곤두박질쳤고, 결국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성과와 보상의 고리를 끊어버린 무리한 요구가 산업 생태계 전체를 마비시킨 것이다.

지금 삼성전자 노조의 행태는 1970년대 영국의 강성 노조를 묘하게 닮아 있다. "적자 사업부가 몇억 원의 성과급을 받는 게 언제부터 당연한 게 됐느냐"며 "과반 노조 성립을 위한 수작"이라고 꼬집은 어느 누리꾼의 지적은 뼈아프다. 노조 집행부가 조직의 세를 불리고 내부 결속을 다지기 위해 적자 부서의 표심까지 의식한 '정치적 포퓰리즘'을 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성과 있는 곳에 보상이 있다'는 원칙은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지탱하는 근간이자, 삼성전자를 오늘날의 글로벌 일류 기업으로 만든 핵심 동력이다. 부문 공통 재원을 과도하게 키워 흑자 사업부와 적자 사업부의 보상 격차를 인위적으로 줄인다면, 밤낮없이 연구개발에 매달려 흑자를 낸 핵심 인재들의 근로 의욕은 차갑게 식어버릴 것이다. 이는 무임승차를 장려하고 하향 평준화를 유도하는 꼴이다.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지금, 삼성전자의 위기는 곧 한국 경제의 위기다. 경제성장률 하락까지 우려되는 마당에, 적자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들고서도 수억 원의 밥그릇을 더 챙기겠다며 국가 경제를 볼모로 잡는 파업은 어떠한 사회적 명분도 얻을 수 없다. 노조는 성과급의 본래 의미를 되새기고, 위로를 권리로 착각하는 아집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기업 경영의 기본 원칙을 훼손하면서까지 쟁취할 수 있는 '정당한 보상'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박성대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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