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한스경제 석주원 기자 | 한국 소프트웨어 산업의 대표 기업 한글과컴퓨터가 창사 36년 만에 사명과 핵심 사업을 변경하고 전 세계 인공지능(AI) 시장 공략을 본격화했다.
19일 한컴은 서울 여의도 페어몬트호텔에서 전략 발표회 ‘HANCOM : THE SHIFT’를 열고 지난 1989년 설립 이래 유지해 온 ‘한글과컴퓨터’라는 사명을 ‘한컴(HANCOM)’으로 변경한다고 발표했다.
이번 사명 변경은 단순히 시각적 이미지를 바꾸는데 그치지 않고 한국어 문서 편집기라는 지역적 한계를 넘어 AI와 글로벌 시장을 주도하는 운영체제(OS) 전문 테크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라는 게 한컴의 설명이다. 바뀐 사명은 오는 7월 2일로 예정된 정기 주주총회 의결을 거쳐 법적인 효력을 갖고 본격적으로 적용될 예정이다.
사명 변경과 함께 주력 제품이었던 ‘한컴오피스’도 2024 버전을 끝으로 연식제(Year Edition) 정책을 영구 종료한다고 밝혔다. 대신 AI 기반의 실시간 업데이트 방식으로 전면 리뉴얼해 오피스 전반을 AI 기술 플랫폼 형태로 고정시킬 계획이다.
이미 한컴의 라이선스 계약은 연간 구독형(SaaS) 기반 모델로 대부분 전환된 황이다. 2025년 기준 한컴의 오피스 라이선스 계약 중 연간 구독 모델의 비중은 70~80% 수준에 달해 있어 패키지 발매 종료에 따른 단기적 매출 타격 우려가 미미한 것으로 진단됐다.
▲ 실적으로 입증한 AI 전환 성과
AI는 미래 산업의 핵심 기술로 주목받지만 동시에 막대한 인프라 투자 대비 뚜렷한 수익화 모델을 창출하지 못해 AI 거품론에 부딪히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서 한컴은 미래 청사진만 늘어놓는 기술 개발 단계를 넘어 실제 현장에서 매출을 거둬들이는 실질적 AI 기업임을 강조하고 있다.
한컴의 지난해 별도 기준 매출은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인 1753억원으로 전년 대비 10.2%의 성장을 기록했다. 여기서 눈여겨볼 핵심 지표는 매출 증가분 162억원 중에서 과반을 넘어서는 54.6% 상당(89.13억원)이 오피스 AI 패키지를 필두로 한 AI 부문에서 도출됐다는 점이다.
올해 1분기도 매출 465억원 중 AI 매출은 52.12억원으로 증가해 단일 분기 최대 실적을 이끌었다. 1분기 전체 매출 내 AI 비중은 11.21%로 집계됐다. 1년 전인 작년 1분기 AI 비중이 0.04%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사업 구조 전환이 빠르고 성공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30% 안팎의 영업이익률도 한컴이 내세우는 강점 중 하나다. 천문학적인 사용자 획득 마케팅 비용과 거대한 AI 모델 매개변수 연산 비용 탓에 영업이익률 압박을 받는 다른 테크 기업들과 달리 한컴은 기존에 다져놓은 20만개사 규모의 오피스 고객 베이스를 최우선 타깃으로 설정하면서 높은 수익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새로운 인프라를 전면 재구축하는 영업 리소스 낭비 대신 기존에 안착된 오피스 솔루션 위에 자연스럽게 AI 레이어를 추가하는 업셀링(Upselling) 전략을 설계함으로써 단위 고객당 평균 매출(ARPU)을 증가시키는 경제적인 선순환 고리를 완성한 결과다.
▲ ‘소버린 에이전틱 OS’ 중심의 기술 특화 기업 표방
한컴이 미래 먹거리로 설정하고 총력을 기울이는 분야는 단순한 지시 응답기 형태의 개인 비서가 아니라 복수의 지능형 에이전트를 안전하게 오케스트레이션하고 모니터링하는 인프라인 ‘소버린 에이전틱 운영체제(Sovereign Agentic OS)’다.
사용자가 일일이 검색 명령을 치며 질의하던 환경에서 탈피해 AI가 배경 의도를 파악해 자율적으로 결과물을 연출하고 완료하는 시대로 전환됨에 따라 다각적인 에이전트를 매끄럽게 통제하는 핵심 OS 아키텍처의 위상은 갈수록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전 세계 에이전틱 AI 시장은 지난해 70억달러에서 2032년 932억달러 규모로 7년 만에 13배 이상 고속 팽창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에서도 클라우드에 내부 핵심 자산과 기밀 서류를 무방비하게 위탁할 수 없는 공공, 정부부처, 국방, 금융, 보건의료 등의 보안 규제 산업군이 전 세계 소버린 에이전틱 OS 유효 시장(SAM)으로 꼽힌다.
한컴은 소버린 에이전틱 OS를 △데이터 파운데이션 △컨텍스트 △추론 엔진 △실행 △오케스트레이션 △주권의 6계층 아키텍처로 나누고 그중 3대 핵심 계층에 독자적인 기술력을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첫 번째 계층(L1)은 비정형 데이터의 구조화와 임베딩을 담당하는 데이터 파운데이션 영역으로 한컴은 36년간 문서 데이터를 다뤄온 원천 기술을 바탕으로 LLM이 즉시 해독할 수 있는 고품질 데이터 파이프라인을 구축해 근간을 지탱하고 있다.
네 번째 계층(L4)은 다양한 이종 도구 및 외부 시스템과 연동해 실제 업무를 수행하는 통합 실행 엔진 영역이다. 한컴은 ‘한컴어시스턴트’와 ‘한컴피디아’ 등 AI 솔루션 사업화 실적으로 실행 레이어의 신뢰성을 입증하고 있다.
최상위인 여섯 번째 계층(L6)은 데이터 주권, 보안 거버넌스, 내부 통제를 책임지는 소버린 원칙의 핵심 두뇌다. 공공, 금융, 국방 등 엄격한 망분리나 온프레미스 연계를 필수로 요구하는 규제 산업 내에서 국가망 검증 노하우는 경쟁자들보다 앞서 있다는 게 한컴의 설명이다.
▲ 글로벌 시장 공략 본격화…전략은 ‘오픈 소스’
한컴은 이날 발표에서 글로벌 시장 확장 전략도 공유했다. 핵심은 오픈소스를 광범위하게 배포해 점유율을 높이고 그 위에 보안과 편의 기능이 부가된 상용 확장 패키지를 유료화하는 ‘오픈 코어(Open Core)’ 비즈니스 전술이다.
한컴은 글로벌 배포 문서의 98%가 PDF 포맷으로 유통된다는 점을 주목했다. 한컴에 따르면 전 세계 누적 PDF 파일 규모가 2조5000억개에 달하고 매년 신규 파일이 2900억개씩 추가 생성되고 있다. 한컴은 PDF의 비정형 자산을 파싱하고 디지털 텍스트화하는 원천 엔진 기술인 ‘오픈데이터로더(ODL)’를 아파치 라이선스 2.0으로 전 세계에 무료 공개했다.
지난 3월 12일 배포된 ODL 버전 2.0은 벤치마크 테스트에서 독클린, 뉴트리언트, 마커, 언스트럭처드 등 글로벌 상위권 엔진들과 비교해 모든 영역 1위를 차지했다. 출시 직후 깃허브 트렌딩 데일리 1위 저장소에 등극했으며 2만개가 넘는 추천 스타 수와 수만건의 복제 다운로드를 기록하며 전 세계 오피스 데이터 파이프라인 인프라로 자리잡고 있다.
한컴은 이를 기반으로 미국과 유럽에서 의무 규제로 떠오른 PDF 디지털 접근성 정비 유료 비즈니스 시장을 정조준하고 있다. 특히 유럽은 개인정보보호법(GDPR)과 인공지능법(EU AI Act)이 동시 적용돼 전 세계에서 데이터 주권 규제가 가장 강력하게 작동하는 지역이다. 한컴은 이미 유럽 시장 공략을 위해 현지의 파트너 기업 세 곳과 협력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김연수 한컴 대표는 “한컴은 AI 비전을 발표한 이래 실적이라는 가장 객관적인 언어로 AI 기업으로의 전환을 증명해왔다”며 ”지난 36년간 자랑스럽게 지켜온 사명과 성공 문법을 우리 손으로 파괴하고 이제는 소버린 에이전트 OS가 한컴의 앞으로의 36년을 이끌 새로운 비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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