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전 중인 적대국'과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단어가 2026년 5월 20일 저녁 7시 한반도의 현실로 마주한다.
이날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리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 챔피언스리그(AWCL) 준결승전에서 남측의 '수원FC 위민'과의 맞대결을 위해 북측 '내고향여자축구단' 선수단 35명이 17일 한국 땅을 밟았다.
북한 선수들의 방남은 김정은 정권이 지난 2023년 12월 민족과 통일이라는 개념을 공식 폐기하고 법적으로 완전히 갈라서겠다는 '두 국가론'을 정립한 이후 처음이다.
게다가 북측 선수들이 한국 땅을 밟은 이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전군 지휘관을 소집해 군사분계선 일대, 특히 남부 국경에 대한 무장력 강화를 지시했다. 즉 한국과 맞닿은 군사분계선 일대 최전방 부대 강화 방침을 밝힌 것.
이렇듯 대남 적대 노선이 최고조에 달한 시점이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거액의 우승 상금과 체제 홍보라는 철저한 실리 계산에 따라 북한 선수들이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을 가능성이 크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현 상황 자체가 이념적 적대 선언과 현실적 실리 추구가 기묘하게 공존하는 현 남북 관계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밝혔다.
'적대국'에 왜 왔을까?
북한은 기존의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를 부정하고 '두 국가론'을 내세우고 있다. 통일 담론을 폐기했으니 이제 '남남'이라는 일방적인 주장인데, 그래서인지 북한 선수들은 한국에 입국할 때 여권을 내밀었다고 한다.
물론 이들의 입국 절차는 기존대로 한국 내 남북교류협력법에 따라 진행됐고, 북한 선수단은 여권 대신 남한 정부가 발급한 '남한 방문증명서'로 신원을 확인받았다. 북측 여권은 참고자료로만 쓰였다는 것이 한국 통일부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방남은 단순히 축구 경기가 목적일까, 아니면 또다른 명분이나 목적이 존재하는 것일까. 대남 적대 노선 속에서도 북한이 이번 대회 출전을 승인한 배경으로는 철저한 실리 계산이 깔려있다는 분석이다.
사실 지난 3월 '남북 대결'이 확정됐을 때만 해도 이 경기가 실제 치러질 것으로 기대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한국은 북한에 그저 '교전 중인 적대국'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속에 살만 빈 이브라힘 알칼리파 AFC 총재는 지난 4월 캐나다에서 직접 김일국 북한축구협회장을 만나 대회 참여를 촉구했다. 우승 상금 미화 100만 달러, 여기에 '북한 여자축구는 아시아의 등불'이자 '세계적 모델'이라며 치켜세웠다. 또한 "AFC는 북한 여자축구의 야망을 계속 지원할 것"이라며 북한을 독려했다.
여자축구 강호인 북한 입장에서는 AFC의 이러한 적극적인 '구애'에 더해 '적대국'인 한국에서 우승컵을 거머쥘 경우 매우 강력한 내부 정치적 메시지로 활용할 수 있다는 계산 역시 했을 것으로 보인다. 체제 특성상 '남조선 땅에서 아시아 최강에 올랐다는 상징성'이 선전선동에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김형석 전 통일부 차관은 "스포츠가 하나의 비정치적인 명분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김정은 위원장이 허락하지 않았나 싶다"며 "북한 여자축구가 워낙 강한 만큼 대한민국 심장부에 가서 우승할 경우의 셈법을 모두 감안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공식 국제 경기에서 '양 팀을 응원'한다?
북측 선수들의 이번 방남을 놓고 한국 내에서는 엇갈린 목소리가 나온다.
먼저 한국 통일부는 북측 선수단의 참가가 확정된 후 한국 내 200여개 민간 단체가 결성한 응원단에 남북협력기금으로 3억원 규모의 응원 비용을 지원하며 환영의 입장을 밝혔다. 청와대 역시 북한 선수단의 참가를 환영하며 행정적 협조를 약속했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측은 이미 '남북체육교류를 위한 특별법'을 발의한 상태다. 정치·군사 정세와 무관하게 스포츠 교류의 안정적 기반을 만들자는 취지인데, 법안이 통과되면 남북 교류를 확대하고 방북 평화관광 모델까지 연결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북한이 대남 도발을 지속하는 상황에서 대북 제재를 우회하는 대회 상금, 즉 외화벌이 무대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여기에 AFC 공식 국제 경기에 정부 차원에서 거액을 들여 공동응원단을 지원하는 것 역시 스포츠와 정치를 분리하지 못한 잘못된 처사라는 비판도 이어진다.
수원FC 위민 서포터즈 '포트리스' 측은 공식 소셜 미디어를 통해 "스포츠 본연의 가치보다 '남북 관계'라는 정치적 프레임이 우선시"되는 것에 유감을 표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북한이 대남 노선을 바꾸지 않는 한, 이번 방남은 북측에게만 이익을 몰아주는 일회성 이벤트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다.
신범철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단절됐던 남북 관계가 스포츠를 통해 이어졌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면서도 "국제 대회를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응원단 등 특정 단체만 지원하는 것은 경기 티켓을 돈 주고 구매한 사람들에 대한 역차별이 될 수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이어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적대적 두 국가'를 규정하고 한류 차단에 안간힘을 쓰는 만큼 남북관계 개선을 도모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이번 방남은 AFC 차원의 '홈앤드어웨이' 경기로 참석이 불가피했던 것일 뿐, 남북이나 남한이 주도적으로 교류의 물꼬를 트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반면 김형석 전 차관은 "각자의 정치적 입장이 있지만, 남북 대결이 흔치 않은 기회이고 또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를 선언했지만 남북한은 절연할 수 없는 특수 관계가 맞다"며 "너무 경직된 사고로 각을 세우기 보다는 '남북은 하나'라는 마음으로 북한 선수단을 향해 아량을 베푸는 것도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밝혔다.
다만 향후 남북 간 스포츠 교류 전망에 대해서는 그 역시 "김정은 위원장 입장에서는 교류 자체가 상당히 부담스러울 것"이라며 "이번 북한 선수단 경직된 것을 보면 알 수 있지 않나, 시간이 좀 지나고 남북 관계에 변화가 나타난 이후에나 교류가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남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북민협)과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등 한국 내 200여개 단체들은 입장문을 내고 "남북 양팀을 공동 응원하며 승패를 떠나 스포츠의 양대 정신인 '페어플레이'와 '평화'가 구현되도록 응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23일 토요일 오후 2시로 예정된 결승전에 어느 팀이 진출해도 우리는 열심히 응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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