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 칼럼] 공백의 형식들④ 비손에 이어
[문화매거진=이응 작가] 지난 글에서는 소원하는 마음이 단순히 무엇인가를 얻고 싶은 바람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을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몸 위에 새겨진 가장 오래된 주술적 형식 중 하나인 ‘손금’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몸 위에 새겨진 소원의 징후
‘손금’은 손바닥에 주름 즉, ‘금’이 그어져 있다고 해서 ‘손’과 ‘금’이 합쳐진 말이다. 오늘날로 치면 ‘금’은 ‘줄’이나 ‘선’을 뜻한다. 손금은 선의 형태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읽을 수 있을 것처럼 보이고, 그것이 내 몸 위에 있다는 점 때문에 나의 삶과 연결되어 있을 것처럼 느껴진다.
사람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그 선들을 통해 자신의 삶을 읽어보려는 시도를 반복해왔다. 그 선이 실제로 미래를 예언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이 자기 삶을 읽을 수 있는 기호를 오래 필요로 해왔다는 데 있다.
나는 이 오래된 읽기의 형식을 2022년부터 이어온 여러 작업을 통해 다루어왔다.
생애복사기
‘생애복사기’는 2022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접촉이 제한되던 팬데믹 시기에 시작된 작업이다. 당시 손은 접촉을 피해야 하는 신체가 되어 있었고 악수, 하이파이브와 같이 친밀함과 관계를 만드는 행위가 갑자기 위험한 일이 된 시점에, 그럼에도 우리를 연결하는 것은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되었다.
작품은 재물운이 좋은 손금, 이성에게 인기 있는 손금처럼 사람들이 갖고 싶어 하는 삶의 조건들이 양각된 손바닥 모양의 도자가 놓여 있고 관객은 그 손바닥 위에 자신의 손을 맞대고, 일종의 하이파이브를 하듯 작품과 접촉할 수 있게 설치해 두었다.
관객은 자신이 복사해 가고 싶은 도자 손금 위에 손을 맞대 하이파이브를 하면, 그 선이 잠깐 손바닥에 묻어나거나 눌려서 옮겨지는 일시적 드로잉이 생성된다. 그러나 손바닥에 옮겨진 선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일시적 흔적이 되는데, 이 작업에서 손금은 고정된 운명의 증거가 아니라, 접촉을 통해 잠시 믿고 가져보고 싶어 하는 소망의 형식으로 작동한다.
‘생애복사기’에서 관객이 복사해 가는 것은 실제 운명이 아니라, 내게 없는 삶의 가능성을 잠시 빌려오고 싶은 마음의 흔적에 가깝다. 그것은 곧 사라질 선이지만, 바로 그 일시성 속에서 더 나은 삶을 손 안에 옮겨보고 싶은 소망의 구조를 드러낸다. 여기서 손바닥은 닿고 싶은 마음과 옮겨오고 싶은 삶의 가능성이 잠시 발생하는 표면이 된다.
사람과 사람의 손이 쉽게 맞닿을 수 없던 시기에, 손바닥은 오히려 관계와 접촉을 상상하게 하는 표면이 되었다. 그러나 그 접촉이 옮겨주는 것은 실제 운명이 아니라, 내게 없는 삶의 가능성을 잠시 빌려오고 싶은 마음의 흔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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