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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투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방법을 찾으려면 먼저 목적을 물어야 한다. 투표는 미래를 위해 하는 것이다. 우리 가족과 동네, 나라의 내일을 바꾸기 위해 한 표를 던진다. 바로 이 지점에서 투표는 투자와 같은 의미를 갖는다. 투자 역시 미래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투자의 원칙을 빌려 투표의 방법을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투자의 세계에서 워런 버핏이 평생 강조한 원칙이 있다. 바로 ‘내재 가치’(Intrinsic Value)를 보라는 것이다. 주가가 오르내리는 소음 속에서도 장기적으로 얼마나 가치 있는 기업인지 냉정하게 평가하라는 뜻이다. 투표도 마찬가지다. 후보의 포스터가 멋있는지 말솜씨가 유려한지가 아니라 그 사람이 공직자로서 진정한 내재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를 따져야 한다. 내재 가치는 화려한 외양 너머에 있다. 후보가 과거에 어떤 일을 해왔는지 약속을 얼마나 지켰는지 어려운 상황에서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 그 답이 진짜 내재 가치다. 시장이 과열될 때 거품에 휩쓸리는 투자자처럼 선거 열기에 들떠 검증되지 않은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유권자는 훗날 뼈아픈 손실을 감내해야 한다. 현명한 투자자가 기업의 재무제표를 직접 들여다보듯 현명한 유권자 역시 후보의 내재 가치를 스스로 따지고 판단해야 한다.
피터 린치는 “주식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단기 소음에 흔들리지 않고 장기적 관점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단기 시세 차익만을 노리는 투기꾼과 기업의 본질 가치를 믿고 장기 보유하는 투자자의 결과는 분명하다. 선거에서도 이 원칙은 그대로 적용된다. 선거철마다 유권자들은 단기적 유혹에 노출된다. 현금 지원, 지역 개발 공약, 당장 체감할 수 있는 복지 혜택들이 표를 가져가려 한다. 그러나 진정한 투표의 가치는 5년, 10년 혹은 그 이후 세대가 살아갈 사회의 토대를 설계하는 데 있다. 오늘의 투표가 내 자녀와 손자녀가 숨 쉴 사회를 결정하는 초석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남들이 탐욕스러울 때 두려워하고 남들이 두려워할 때 탐욕스러워라.” 버핏의 이 명언은 군중 심리를 경계하라는 교훈이다. 투자에서 묻지마 투자가 손실로 이어지듯 정치에서 묻지마 지지는 민주주의의 손실로 이어진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떠도는 자극적인 정치 콘텐츠, 지인의 카카오톡 메시지, 특정 유튜브 채널의 편향된 분석만으로 투표를 결정하는 것은 루머만 믿고 주식을 사고파는 것과 다르지 않다. 현명한 유권자는 후보의 공식 공약집을 읽고 과거 의정 활동 기록을 확인하며 복수의 언론 매체를 비교 분석한다. 팩 트체크 기관의 검증 결과를 참고하고 지역 토론회나 정책 설명회를 찾아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것, 그것이 진정한 투표 준비다.
복리의 마법은 투자의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원칙 중 하나다. 알베트 아인슈타인이 “복리는 세계 8대 불가사의”라고 칭할 만큼 작은 수익이 시간과 함께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것이 복리의 힘이다. 한 사람의 표도 마찬가지다. 작아 보이지만 수백만 표가 모이면 역사를 바꾼다. 대한민국 역사를 돌아보면 단 몇천 표 차이로 당락이 갈린 선거가 있었고 수천 표 차로 결정된 국회의원 선거가 법안의 가부를 가른 사례가 한두 번이 아니다. “내 한 표는 의미 없다”는 생각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서서히 약화시키는 가장 위험한 바이러스다. 투표 불참은 결코 중립이 아니다. 그것은 현 상태를 유지하거나 더 적극적인 소수에게 결정권을 양도하는 행위다.
훌륭한 투자자는 자신의 판단이 잘못됐을 때 미련 없이 손절하고 새로운 기회를 찾는다. 감정적 집착이나 매몰 비용의 오류에 빠져 손실을 키우는 투자자는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 이 논리는 투표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지지해 온 정치인이 공약을 저버리거나 지지해 온 정당이 방향을 잃었다면 ‘그래도 우리 편이니까’라는 진영 논리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과거의 투표가 부끄럽더라도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새로운 선택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이것이 성숙한 민주 시민의 자세이자 현명한 투자자의 자세다.
투표는 내가 이 사회의 주주임을 확인하는 행위다. 기업의 주주총회에서 주주가 의결권을 행사하듯 민주주의라는 공동체에서 시민은 투표로 방향을 결정한다. 주주총회에 한 번도 참석하지 않는 주주가 기업의 방향에 불만을 터뜨린다면 누가 그 불만에 귀를 기울이겠는가.
또 다른 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아인슈타인은 말했다. 세상을 망치는 것은 악한 사람이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미래를 바꾸는 투자처럼 투표도 미래를 향해야 한다. 그리고 그 투표가 쌓일 때 대한민국 정치도 비로소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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