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지방선거 최대 격전지 중 하나인 대구가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다. '힘 있는 집권여당 후보'를 자처하는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예산 폭탄을 공언하며 존재감을 드러낸 가운데 추경호 국민의힘 후보는 굵직한 지역 살리기 공약으로 맞불을 놓으며 반격에 나서는 모습이다. 어느새 두 후보의 여론조사 지지율은 박빙으로 접어들었다. 선거가 보름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 현장에서 직접 확인한 지역 민심의 명령은 단순했다. 바닥으로 치달은 대구 경제를 되살려내라는 것. 선거 구도도 덩달아 단순해졌다. 이제 누가 더 확실한 구상과 비전으로 지역경제 부활에 목마른 표심을 사로잡느냐다.
생각보다 심각한 지역 경제…"적신호 들어온 지도 한참"
19일 찾은 대구 동성로는 한산했다. 손에 꼽을 정도의 행인들이 눈에 띄었고 조금만 걷다보면 임대중인 점포 공실이 나타났다. 인접한 교동시장에서는 나이가 지긋한 노인들 몇몇을 제외하면 인기척을 느끼기도 어려웠다. 평일 점심시간이라는 것을 감안해도 과거와는 확연히 유동인구가 줄어든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동성로 인근에서 귀금속상을 운영 중인 50대 김모 씨는 "길에 걸어 다니는 사람이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며 "주말이나 연휴에 날씨가 좋으면 잠깐 반짝하기도 하지만 그마저도 흔한 일은 아니다"라고 털어놨다. 근처 부동산 중개업자 나모 씨 역시 "옛날에는 '동성로에서 장사 한 번 해보는 것이 소원'이라는 사람이 많았는데 요즘은 공실이 남아돈다"고 한숨을 쉬었다.
대구를 대표하는 서문시장도 분위기는 비슷했다. 오가는 사람들은 있었으나 손님이 몰리는 가게는 찾아볼 수 없었고 특유의 활기찬 기운 역시 좀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시장 초입에서 잡화를 판매하는 40대 김모 씨는 "엄살이 아니라 이렇게 어려운 상황은 이미 한참 됐다"며 "선거 때마다 기대했다가 실망하는 것도 지겨울 지경"이라고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대구의 관문 역할을 하는 동대구역은 쉴 새 없이 승객들이 타고 내리면서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하지만 1시간 가까이 살펴본 결과 길게 줄지어 기다리던 택시들 중 손님을 태우고 출발한 택시는 몇 대 되지 않았다. 현장에서 만난 택시기사 오모 씨는 "여기서도 손님을 한참 기다려야 하지만 시내로 들어가도 별로 달라지는 게 없다"라며 "경기가 좋지 않다는 걸 매일같이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파랑이고 빨강이고 상관없다…경제 구원투수면 OK"
실제로 대구의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은 3137만 원으로 30년 연속 전국 최하위 수준에 머물고 있다. 특히 GRDP 성장률은 2024년 –0.8%에 이어 지난해 –1.3%로 2년 연속 뒷걸음질 쳤다. 마이너스 성장률은 전국 17개 광역시도 중 유일하다. 대구시민들이 이번 선거를 통해 확실한 처방을 요구하는 동시에 정당을 초월한 인물론에 그 어느 때보다도 공감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과거 선거에서도 인물론이 대두된 사례가 없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특히나 강렬하게 나타나는 양상이다. 대구 출신의 김 후보는 장관·국무총리를 지낸 거물급 인사인 데다 민주당 후보로 나서 대구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될 정도로 저력을 가진 정치인으로 꼽힌다.
무엇보다도 이번에는 중앙정부로부터 막대한 예산 지원을 약속하고 실제 실행 가능한 플랜을 내놓으면서 지역의 술렁임이 커지고 있다. 달성공원 인근 쉼터 벤치에서 만난 60대 여성 최모 씨는 "일가친척과 친구들을 포함해서 아는 사람은 모두 국민의힘을 지지한다"면서도 "이번에는 사람만 보고 투표하자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반월당역 인근에서 만난 대학생 양모 씨도 "지금까지 무조건 보수 정당만 찍던 주변 사람들도 이번에는 고민하는 게 보인다"며 "끝까지 두고 봐야겠지만 대구에서 민주당 간판으로 이 정도까지 기대감을 불러일으킨 후보는 지금까지 없었기 때문에 이변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에 맞서는 추 후보 역시 정치권에서 내로라하는 경제통이다. 경제학 석사 출신으로 재정 및 기획 부처 관료로서의 경험이 풍부하다. 윤석열 정부에서 경제부총리를 역임했고 국회에서 3선을 하는 동안에는 주로 기획재정위원회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활동했다.
그를 지지하는 주민들도 이 같은 경험과 배경에 대한 기대가 적지 않다. 칠성시장에서 수산물을 판매하는 50대 여성 윤모 씨는 "기획재정부 장관을 아주 잘 하고 돌아와 대구에서 또 당선됐지 않나"라며 "대구시장을 맡아서 대구에 집중하면 더 잘 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대구역 인근에서 마트를 운영하는 60대 최모 씨 또한 "대구가 전체적으로 힘들지만 원도심인 이 동네를 살리는 게 급선무"라며 "누가 되든 경제를 잘 아는 사람이 시장이 돼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해 추 후보에 대한 지지를 에둘러 나타냈다.
대구에서 만난 주민들 가운데는 지지하는 후보를 밝히지 않은 경우도 상당했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경제 살리기'를 기준으로 투표하겠다는 생각에는 대체로 큰 차이가 없었다. 교동 전자거리에서 가전제품 판매점을 운영하는 이모 씨는 "파란색·빨간색 구분 못하는 색맹이 돼도 좋으니 대구 경제 살릴 사람만 구분하면 된다"며 "경제 공약들을 어떻게 내놓는지 꼼꼼하게 잘 따져볼 것"이라고 역설했다.
'대구 해결사' 김부겸 "정부 예산·사업 끌어와 대구 도약"
김 후보는 선거전 초반부터 이 같은 지역 민심을 깊숙이 파고들어 공략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1호 공약으로 GRDP 100조원 규모로 확대 및 일자리 10만 개 창출을 골자로 하는 '대구 산업 대전환'을 제시했고, 대구·경북 행정통합으로 예산 10조 원을 확보하겠다는 약속도 내놨다. 그는 자신의 모든 슬로건에 경제 부흥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담았다. '지금 대구에 필요한 사람'과 '새로운 도약이냐 이대로 정체냐', '대구 해결사' 등이 그것이다.
여기에 영국의 맨체스터나 미국의 피츠버그처럼 과거 번영을 구가했던 도시가 몰락했다 다시 부활에 성공한 사례들도 연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해방 이후 급격히 성장했다가 근래 동력을 잃고 반등이 절실한 대구 역시 이 도시들과 궤를 같이하기 때문이다.
김 후보는 19일 제9차 공약발표를 마친 뒤 폴리뉴스와 만난 자리에서 "정부 예산과 사업을 책임지고 대구로 끌어올 것"이라며 "대구 재도약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다짐했다. 김 후보 선대위인 희망캠프 측도 앞서 지난 18일 "GRDP 33년째 전국 최하위와 인구 유출의 90%가 20대인 현실 속에서 같은 방식으로는 다른 결과를 만들 수 없다는 점을 시민들도 체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구경제 대개조' 추경호 "삼성전자·하이닉스·테슬라 유치"
추 후보는 대구 경제의 대대적인 체질 개선을 통한 발전을 비전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는 19일 '대구 경제 대개조' 공약 발표회에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 반도체 팹과 테슬라 아시아 2공장, HD현대로보틱스 글로벌 R&D 캠퍼스까지 대구에 유치하겠다는 메가톤급 공약을 제시했다.
특히 낙동강·금호강과 경북 해안가 원전, 대구·경북 신공항 등을 갖춘 대구는 반도체 기업에 필수적인 공업용수·전력·물류인프라 측면에서 생산시설 증설의 최적지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 같은 구상이 실현되면 GRDP와 일자리 문제는 자연스레 해결된다는 복안이다.
추 후보는 이날 공약 발표 이후 폴리뉴스에 "대구가 완성차 20만대 도시가 될 수 있다"며 "당선이 되면 곧바로 유치전에 뛰어들 것"이라고 약속했다. 최은석 대변인도 "수십 년간 경제관료로 현장을 누비고 경제부총리로 국가 경제를 직접 운용해본 경험 속에 축적된 내공과 현실 감각에서 나온 것"이라며 "대구를 다시 뛰게 할 '경제 처방전'이자 대구를 살리는 '명약'"이라고 강조했다.
[폴리뉴스 이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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