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기념일 '탱크데이' 파문…단순 자구 수정에 그친 초기 대처
실무·임원·대표 거치는 검수 시스템 마비 지적
정용진 회장 대국민 사과에도 회원 탈퇴·환불 등 온오프라인 확산
(서울=연합뉴스) 홍국기 한주홍 김세린 기자 = 스타벅스코리아가 5·18민주화운동 46주년 기념일에 진행한 '탱크데이' 이벤트 사태가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기획 단계에서의 검수 시스템 부재와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채 문구 수정에만 급급했던 안이한 초기 대응이 결합하면서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지적이 나온다.
모기업인 신세계그룹 정용진 회장이 고개를 숙이고 인적 쇄신 카드까지 꺼내 들었으나, 소비자들의 냉담한 시선 속에 불매운동은 오히려 거세지는 형국이다.
◇ 논란 불거지자 문구 수정 급급…사안 본질 놓친 초기 대응
스타벅스코리아의 안이한 초기 대응이 이번 사태를 걷잡을 수 없이 키운 결정적 요인으로 꼽힌다.
스타벅스코리아는 지난 15일부터 오는 26일까지 텀블러 프로모션 이벤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전날 '탱크 데이', '책상에 탁!'이라는 문구를 사용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이 표현이 5·18민주화운동과 1987년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을 비하하고 모욕했다는 지적이 즉각 제기됐다.
논란이 확산하자 스타벅스 측은 사안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정식 사과를 하기보다 단순 문구 수정으로 상황을 모면하려 했다. 문제가 된 '책상에 탁' 문구를 '작업 중 딱'으로, '탱크 데이' 표현을 '탱크 텀블러 데이'로 고쳐 부른 것이다.
이러한 대처가 오히려 여론을 자극하자, 스타벅스는 이벤트 페이지 공개 약 3시간 만인 오후 1시께 관련 게시물을 완전히 삭제했다.
스타벅스는 1차 사과문에서 "텀블러 시리즈 프로모션 진행 과정에서 부적절한 문구를 발견했다"며 "고객 여러분께 불편과 심려를 끼쳐드린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공지했다.
그러나 정작 5·18 광주민주화운동과의 연관성이나 구체적인 발단 경위 설명 등은 담지 않았다. 전체 분량 또한 220자 수준에 불과했다.
결국 사태가 확산할 대로 확산한 당일 오후 7시께야 손정현 스타벅스코리아 대표 명의의 2차 공식 사과문이 나왔다.
스타벅스는 이때야 처음으로 5·18 정신과 5월 영령의 헌신을 기리는 기념일에 매우 부적절한 내용이 사용됐음을 인지했다고 인정했으며, 경위 조사와 책임자 조치, 내부 프로세스 개선 등의 재발 방지 대책을 포함했다.
◇ 실무부터 대표 결재까지 '검수 부재'…정무 감각 실종된 의사결정 구조
이번 사태는 근본적으로 스타벅스코리아 내부의 의사결정 및 검수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본적인 사회적 정무 감각과 스크리닝 절차만 존재했어도 대형 브랜드에서 이 같은 논란이 여과 없이 노출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문제가 된 프로모션은 스타벅스코리아 기획 부문에서 주도했다.
통상적인 조사의 틀 안에서는 실무자가 기획안을 작성해 올리면 담당 임원이 이를 다각도로 검토하고, 최종적으로 대표이사의 최종 결재를 거쳐 외부 플랫폼에 게시물이 공개되는 구조를 취한다.
다단계 검수 과정이 있었음에도 역사적으로 민감한 기념일에 논란이 될 만한 문구들을 단 한 번도 걸러내지 못한 셈이다.
이에 따라 인적 책임을 묻는 조치가 단행됐다. 이벤트를 총괄 기획한 담당 임원은 즉각 해임됐으며, 신세계그룹 정용진 회장은 지난 18일 밤 손정현 스타벅스코리아 대표를 전격 경질했다.
정 회장이 19일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며 "그룹 차원의 의사결정 시스템을 전면 재점검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의사 결정 구조의 문제점을 인식한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 회장 사과에도 탈퇴·환불 속출…과거 행보 겹쳐 냉담한 민심
인사 경질과 정 회장의 대국민 사과가 이어졌음에도 악화한 여론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특히 비슷한 시점에 이재명 대통령이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스타벅스코리아 등을 '저질 장사치'로 비유하며 강하게 비판하면서 사태의 파장은 정치·사회적 영역으로 증폭됐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전개 중인 불매운동은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스타벅스코리아가 게재한 공식 사과문에는 하루 만에 6천400개가 넘는 공감 수와 2천500여 개의 비판 댓글이 달렸다.
소비자들은 선불 금액권 형태로 적립해 둔 스타벅스 카드를 전액 환불받거나 자사 애플리케이션인 '사이렌 오더' 멤버십을 탈퇴했다는 인증 사진을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있다.
"10년간 VIP(최우수) 고객이었으나 오늘로 인연을 끝낸다", "대체 카페가 너무 많아 앞으로 스타벅스를 찾을 이유가 없다"는 등의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또 '카카오톡 선물하기' 등으로 주고받은 모바일 상품권(기프티콘)을 거절하거나 현금으로 환불받는 구체적인 매뉴얼이 커뮤니티마다 확산하고 있다.
일부 소비자들은 소지하고 있던 스타벅스 텀블러나 머그잔 등 기획상품(MD)을 파기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인증하기도 했다.
동종 마케팅 업계의 시선도 차갑다.
대행사에 근무하는 유모(29) 씨는 "유사 기획 업무를 담당하는 입장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정무 감각 마비"라며 "고향인 광주의 가족들이 5·18에 대한 참담한 기억을 갖고 있어, 이번 사건을 계기로 가족 모두가 스타벅스 발길을 끊기로 결정했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현재 스타벅스코리아 고객센터에는 민원 전화를 넣으려는 항의가 쇄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정 회장의 과거 이념적 행보도 진정성을 의심받는 도화선이 됐다.
일각에서는 정 회장이 과거 SNS에 멸치와 콩 사진을 올리며 '멸공' 인증을 지속하거나 특정 성향의 단체를 후원한 전력이 있어, 이번 대국민 사과의 문구를 액면 그대로 믿기 어렵다는 의구심도 제기하고 있다.
마트산업노동조합 역시 논평을 통해 "신세계그룹은 반역사적인 행보를 즉각 중단하고 사회 앞에 머리 숙여 사과하라"고 촉구하면서 스타벅스를 둘러싼 여론의 냉기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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