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재한 항공·방산 전문기자] 최근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LIG D&A 등을 중심으로 KAI 인수설이 다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관련 업계에서는 항공산업은 일반 지상무기나 유도무기와 사업 구조 자체가 다른 만큼, 단순 인수합병(M&A) 논리보다 장기 기술 축적과 국가 항공산업 전략을 함께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수주잔고 비슷해도 다르다…매출 전환 ‘속도’의 차이
1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방산업계에서 제기되는 KAI 매각론의 주요 논거 가운데 하나는 다른 방산기업 대비 상대적으로 완만한 실적 성장세다. 그러나 관련 업계에서는 지상과 항공 방산의 구조적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단순 비교라는 평가가 나온다.
전차와 자주포 같은 지상무기와 탄약, 유도무기 등은 항공기에 비해 생산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고, 수주잔고가 매출로 전환되는 속도도 빠르다. 실제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올해 1분기 공시한 자료에 따르면 전체 수주잔고는 약 39조7000억원 규모다. KAI 역시 약 26조원 규모의 수주잔고를 확보하고 있어 수주 규모만 놓고 보면 압도적인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실적 흐름은 다르게 나타난다. 방산 전문가들은 지상 방산 분야는 생산과 납품 주기가 짧아 수주 물량이 빠르게 매출로 이어지는 반면, 항공 방산은 개발과 시험, 인증, 양산, 후속 개량 과정이 장시간에 걸쳐 이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K방산 수출이 본격 확대된 지난 2022년 이후 지상무기와 유도무기 업체들은 비교적 빠르게 실적 성장세를 나타내고 있지만, 항공 플랫폼 사업은 수출 계약 이후 매출 반영까지 통상 5~10년 이상이 소요되고 있다. KF-21 사업도 2015년 체계개발 착수 이후 약 11년 만인 올해 양산과 전력화를 앞두고 있는 만큼, 업계에서는 KF-21 수출 역시 계약 이후 실제 매출 반영까지 장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 ‘패키지 수출’만으로 설명 어려운 항공산업
이런 가운데 최근 글로벌 방산시장이 지상·해상·항공 전력을 묶는 패키지형 수출 경쟁으로 이동하는 흐름을 두고 방산업계 안팎에서는 지상무기와 함정, 항공기 사업을 하나의 기업이 통합할 경우 수출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실제 방산 수출 구조는 훨씬 복합적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지상무기와 항공기는 국가별 예산 규모와 도입 시점, 평가 기준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특정 국가가 지상무기 도입을 위해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더라도, 항공기 사업까지 동시에 추진하기는 쉽지 않다. 항공기 도입 사업은 규모 자체가 훨씬 크고 사업 기간도 길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상무기를 도입한 국가가 이후 항공기 도입을 검토하는 흐름은 충분히 가능하지만, 같은 시점에 동시에 패키지 형태로 계약이 이뤄지는 구조는 많지 않다”며 “특정 업체가 모든 플랫폼을 보유한다고 해서 곧바로 수출 시너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현재도 K9 자주포를 운용하는 국가에서 KF-21이나 FA-50 도입 가능성을 별도로 검토하는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런 흐름이 반드시 업체 통합 구조에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항공산업 특유의 기술 집약 구조도 변수다. KAI는 전체 임직원 약 5200명 가운데 상당수가 생산·개발 엔지니어 인력으로 구성돼 있다. 지난 3월 공시된 사업보고서에는 연구개발 인력만 2250여명 규모라고 명시돼 있다.
관련 업계에서는 항공산업은 단기간 수익보다 장기간 기술 축적이 핵심 경쟁력인 산업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실제로 KF-21 전투기도 체계개발 이후 양산 단계로 넘어가더라도 지속적인 성능개량과 후속 개발이 이어질 예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항공산업은 플랫폼 하나를 완성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후 개량이 계속 이어지는 구조”라며 “장기 연구개발과 엔지니어 조직 유지가 경쟁력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 ‘누가 인수하느냐’보다 중요한 국가 항공산업 전략
최근 KAI 인수설이 다시 확산되는 배경 가운데 하나로 글로벌 방산업계 재편 흐름이 꼽힌다. 실제 미국의 L3해리스와 보잉 등 해외 주요 방산기업들 인수합병을 확대하고 있다. 다만 해외 항공우주산업계에서 진행되는 인수합병은 항공기 제작사 인수가 아닌 공급망·엔진·부품 중심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무엇보다 KAI는 국가 주도의 항공우주 체계종합업체 성격이 강해 일반적인 M&A 논리만으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강조되고 있다. KAI는 지난 1999년 국내 항공산업 역량을 통합하기 위해 정부 주도의 구조 개편 과정에서 출범했다. 이후 KT-1 기본훈련기와 T-50 고등훈련기, FA-50 경공격기, 수리온 헬기, KF-21 전투기 등 국내 주요 국산 항공기 개발의 중심 역할을 맡아왔다.
특히 KF-21 사업은 총 10년 6개월 규모 체계 개발 사업으로 추진돼 왔고, 올해 전력화를 앞두고 있다. 이를 두고 업계 일각에서는 최근 인수 논의가 개발 리스크가 상당 부분 해소되고 양산이 본격화되는 시점과 맞물려 있다는 점에도 주목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항공산업은 개발 과정에서 막대한 비용과 리스크가 먼저 투입되고, 수익 회수는 훨씬 뒤에 이뤄지는 산업”이라면서 “단기 실적이나 단순 포트폴리오 확대 논리로 접근할 경우, 장기적으로 기술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KAI가 과거 국내 항공산업 역량을 결집하기 위해 국가 주도로 만들어진 업체인 만큼 향후 구조 개편 논의 역시 국가 항공우주 산업 로드맵과 함께 검토돼야 한다”며 “특정 기업의 이해관계나 단기 사업 논리만으로 판단할 사안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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