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하림이 5·18민주화운동을 '폭동'이라 주장하는 악성 DM을 받은 뒤 지난 18일 자신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에 직접 글을 올려 화제를 모으고 있다. 감정적으로 맞대응하는 대신 유족의 시선으로 담담하게 쓴 글은 빠르게 확산됐다.
하림 일상사진. / 하림 인스타그램
"대머리 아저씨"…모욕과 역사 왜곡이 함께 날아왔다
하림의 SNS 계정으로 날아온 DM의 내용은 단순하지 않았다. 발신자는 하림을 팔로우한 직후 "5·18은 폭동이에요, 대머리 아저씨"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곧장 언팔로우했다. 하림은 해당 계정의 프로필을 직접 확인했다고 밝혔다. 유럽 여행 사진이 빼곡히 채워진 피드를 가진, 외모도 준수한 실제 청년이었다. 가짜 계정으로 보기 어려운 정성스러운 운영이 오히려 그를 잠시 멈추게 했다.
하림은 글에서 "앗, 내가 정말 뭘 모르고 있나"라는 의심이 잠깐 들었다고 썼다. 극우 세력이 부정선거를 외치듯, 자신이 유족이기 때문에 사실을 왜곡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자기검열이 순간적으로 작동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의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만약 5·18이 폭동이라면, 자신의 어머니도, 외삼촌도, 외할아버지도 평생 거짓 속에서 살아온 셈이 된다.
그는 DM 발신자가 "내가 대머리라는 것, 그리고 아저씨라는 것"을 정확하게 지적했다는 점에서 자신의 정직함을 어필하려 했다고 분석했다. 타격감 있는 사실로 신뢰를 쌓은 뒤 5·18이 북한의 지령을 받은 폭동이라는 결론으로 치닫는 구성이었다. 하림은 이 전개 방식을 냉정하게 읽어냈다.
하림이 올린 5·18 민주화운동 관련 사진. / 하림 인스타그램
반박도, 욕설도 아닌 '차단'…26년 차 연예인의 선택
하림은 잠시 고민했다고 했다. "너도 늙으면 대머리가 될 거야"라는 말을 돌려줄까 싶었지만, 26년 차 연예인으로서 그 한 마디가 다음 날 뉴스 제목이 될 거라는 걸 금방 알아챘다. 조목조목 반박해볼까도 생각했지만 노안이 심해져 오타가 잦은 탓에 키보드 배틀은 백전백패라고 자조적으로 썼다.
결국 그는 조용히 '차단' 버튼을 눌렀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공연 성수기라 시간이 없다는 현실적인 이유, 그리고 자신이 5월 광주로 오빠를 잃은 어머니의 아들이자 다정한 외삼촌을 잃은 조카라는 이유였다.
그는 차단이 도피가 아니라고 분명히 했다. "유족으로서 나의 우아함을 지킨 것"이라고 썼다. 이어 "여기서 차단은 기다림이다"라는 문장을 덧붙였다. 헌법 전문에 오르지 못했던 5·18 관련 문구들이 다시 제자리를 찾는 날, 이런 모욕을 듣지 않아도 될 그날을 기다린다는 의미였다.
어릴 때는 몰랐다…삼촌이 왜 누워만 있었는지
가수 하림. / 뉴스1
뒤늦게 그 거대한 트라우마가 5월 광주에서 비롯됐다는 걸 알게 됐다. 하림은 그 이후로 줄기차게 같은 질문을 반복하고 있다고 했다. 왜 피해자가 입을 다물어야 했는가. 이미 법정에서도 퇴출된 폭동론을 왜 아직까지 붙들고 있는가. 그리고 왜 하필 유족의 눈앞에 찾아와 그것을 쏟아내고 가는가.
그는 이를 명백한 '2차 가해'라고 규정했다.
5·18은 폭동인가…법원과 역사가 이미 답했다
하림이 언급한 '법정에서 퇴출된 폭동론'은 단순한 주장이 아니다. 5·18민주화운동은 1995년 12월 제정된 '5·18민주화운동등에관한특별법'에 따라 국가 공식 사건으로 규정됐다. 이 법에 근거해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을 비롯한 신군부 관련자 다수가 법적 처벌을 받았다.
사건의 공식 명칭도 정권에 따라 변해왔다. 전두환 정부 시절에는 '광주사태'로 불렸다. 노태우 정부 때 '광주민주화운동', 김영삼 정부 때 '5·18광주민주화운동', 김대중 정부에 이르러 '5·18민주화운동'으로 확정됐다. 명칭에서 '광주'를 뺀 것은 이 운동이 지역을 넘어 전 국민적 민주화운동이었음을 반영한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8일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 한 후 양창근 열사 묘역을 찾아 헌화하고 있다. / 뉴스1
피해 규모도 수치로 확인돼 있다. 2001년 12월 18일 기준으로 공식 확인된 피해자는 사망 218명, 행방불명자 363명, 상이자 5,088명, 기타 1,520명으로 총 7,200여 명에 달한다. 이는 국가가 공식 집계한 수치다.
5·18민주화운동은 1997년 5월 법정기념일로 제정됐고, 매년 5월 18일 국립 5·18묘지에서 정부 주관 기념식이 열린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나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하면서 18년간 이어진 군사정권이 붕괴됐다. 이 공백을 전두환·노태우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가 채웠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집회와 시위는 1980년 5월 초 전국으로 확산됐다.
신군부는 5월 17일 밤 11시 40분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그 직후 공수부대가 투입됐다. 5월 18일 전남대 정문에 집결한 학생들과 계엄군 사이에서 첫 충돌이 발생했다. 공수부대는 시위대뿐 아니라 일반 시민에게도 진압봉을 휘두르며 무차별 연행했다. 시민들이 합류했고, 이후 계엄군의 발포로 사상자가 급증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8일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방명록을 남겼다. / 뉴스1
5월 21일 시민군은 계엄군을 일시 후퇴시키는 데 성공했고, 5월 27일까지 약 6일간 광주 시내에서 시민 자치가 이뤄졌다. 시민군은 치안과 행정 업무를 담당했고, 도청에서 마지막을 맞이한 이들도 있었다.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이 충정작전을 개시해 전남도청을 재점령하면서 열흘간의 항쟁은 막을 내렸다.
"이렇게 우아하게 싸우는 법은 많다"
하림은 글 말미에서 자신의 SNS 계정이 공개돼 있어 팔로우만 하면 누구든 의견을 보낼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이런 DM이 오히려 자신에게 글을 쓰게 만드는 동력이 된다고 했다. 이왕 보낼 거라면 이 정도 분량은 보내달라고, 그러다 극우를 대표하는 작가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비꼬았다.
글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이렇게 우아하게 싸우는 법은 많다. 단전 단수하고 헬기 따위 날리는 이들은 전혀 모르는."
하림. / 뉴스1
다음은 하림 SNS 전문
”5·18은 폭동이에요, 대머리 아저씨!“
내 SNS로 날아온 DM의 핵심 요약이다. 굳이 나를 팔로우하고 이 메시지를 보낸 뒤, 빛의 속도로 언팔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은 청년. 프로필을 보니 유럽 여행을 즐기는 아주 잘생긴 훈남이었다. 가짜 계정이라기엔 피드가 너무 정성스러워서 잠시 훑어보기까지 했다.
그러다 작은 의심이 들었다. ’앗, 내가 정말 뭘 모르고 있나? 극우 세력들이 부정선거 외치듯, 내가 유족이라 눈이 멀어 폭동을 부정하는 건가?‘ 만약 그렇다면 우리 엄마도, 외삼촌도, 외할아버지도 평생 속고 살았단 말인가....
사실 그 청년의 글이 아주 잠깐 신뢰감을 주긴 했다. 그가 짚어낸 몇 가지 명백한 ’사실‘ 때문이다. 내가 대머리라는 점, 그리고 아저씨라는 점. (늙은 대머리 아저씨라고 안해줘서 고맙다) 어쨌든 타격감 있는 팩트로 자신의 정직함을 어필한 청년은, 기세를 몰아 5·18이 북한 지령을 받은 폭동이라고 힘주어 결론을 내렸다.
잠시 고민했다. '너도 늙으면 대머리가 될거야...' 라고 해줄까? '그랬다간 다음 날 뉴스에 ’하림 청년에게 대머리가 되어라 욕설 파문‘이라고 박제될 게 뻔하다. 26년 차 연예인으로서 이미 미디어의 생리는 학습했으니 참아야 한다는 건 금방 알 수 있다. 아니면 조목조목 설득을 해볼까? 하지만 그러기엔 요즘 노안이 와서 오타가 너무 많다. 키보드 배틀이 시작되면 백전백패다. 그래서 미안하지만 조용히 ’차단‘을 누르고야 말았다. 시간을 소모하기엔 요즘 공연 성수기라 시간이 없고, 무엇보다 나는 5월 광주로 인해 오빠를 잃은 엄마의 아들이자 다정한 외삼촌을 잃은 조카이기 때문이다.
어릴 땐 몰랐다. 왜 삼촌은 늘 기운 없이 누워만 있었는지. 왜 작은 비디오방에 종일 누워 지내느라 정작 자기 아이는 돌보지 못해 교통사고로 잃어야 했는지. 삼촌의 삶을 무너뜨린 그 거대한 트라우마를 뒤늦게 알게 된 후, 나는 줄기차게 물어보고 있다. '왜 피해자가 입을 다물어야 했는가.' '왜 당신들은 이미 법정에서도 퇴출당한 폭동론을 여전히 붙들고 있는가.' 그리고 '그걸 왜 하필 유족의 눈앞에 찾아와 굳이 쏟아내고 가는가.' 이것은 명백한 '2차 가해'이다.
공개된 이 계정을 통해 팔로우만 하면 어떤 의견도 펼칠 수 있지만 그것은 사실 이런 폭풍 글쓰기로 나에게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알린다. 그러니 이왕 보내려면 이 정도 분량은 보내주기를 바란다. 혹시나 그러다가 극우를 대표하는 작가가 될 수도 있을지도 모르고, 만일 그걸로 먹고 살게된다면 이 또한 나의 덕이라고 한 번쯤 생각해 주길 바란다.
혹시나 차단이 도피라고 비난할 사람들이 있을지몰라 말하자면, 그 청년을 차단한 것은 도망친 게 아니라 유족으로서 나의 우아함을 지킨 것이다. 여기서 차단은 기다림이다. 우리는 기다리고 있다. 얼마 전 끝내 헌법 전문에 오르지 못했던 그 문장들을 반드시 다시 끌어올려, 다시는 이런 모욕적인 말을 듣지 않게 될 그날을.
이렇게 우아하게 싸우는 법은 많다. 단전 단수하고 헬기 따위 날리는 이들은 전혀 모르는. #518광주민주화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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