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서류 없는 실손보험 청구를 목표로 한 실손24가 확산의 분기점에 섰다. 정부가 낮은 의료기관 연계율을 높이기 위해 EMR(전자의무기록) 업체 참여 확대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공공 표준망 전환 과정에서 기존 민간 간편청구망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쟁점의 한 축에는 실손24 도입 이전부터 의료기관과 보험사를 연결해 온 간편청구 서비스업계가 있다. 이들은 병원 EMR과 보험사 전산망을 연계해 소비자 청구를 대행해 왔지만, 실손24 가동 이후 일부 보험사들이 기존 전자청구 접수를 중단하거나 계약을 종료하면서 민간 청구망의 활용도가 낮아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19일 금융권 및 보험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 실손24 활성화를 위해 미참여 EMR 업체 설득과 공정거래위원회 점검, 의료기관 참여 캠페인 등을 추진하고 있다. 반면 간편청구업계에서는 실손24가 충분히 안착하기 전 기존 민간 전자청구 채널이 축소될 경우 일부 청구가 팩스 방식으로 돌아가는 등 소비자 편익 공백이 생길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정부가 실손24를 핵심 소비자 편익 정책으로 보는 배경은 명확하다. 그동안 실손보험 가입자는 보험금을 청구하기 위해 병·의원에서 관련 서류를 발급받고, 이를 사진으로 찍어 제출하거나 팩스로 보내야 했다.
특히 소액 보험금은 절차 부담 때문에 청구를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실손24는 이 같은 불편을 줄이고 소비자의 보험금 청구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표준 인프라로 추진되고 있다.
다만 논점은 실손청구 전산화의 당위성보다 전환 과정에 있다는 평가다. 실손24가 의료 현장 전반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한데, 이 과정에서 기존 민간 간편청구망이 먼저 위축될 경우 소비자 편익에 공백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에서다.
실손24 속도내는 정부…EMR 병목 해소 ‘총력’
정부는 현재 실손24 확산을 가로막는 주요 요인으로 EMR 업체의 낮은 참여율을 지목하고 있다. EMR은 병·의원이 환자의 진료기록, 영수증, 진료비 세부산정내역, 처방전 등을 전산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개별 의료기관이 실손24를 통해 데이터를 전송하려면 해당 기관이 사용하는 EMR 시스템과 실손24 플랫폼 간 기술 연동이 필요하다.
금융당국이 집계한 지표에 따르면 최근 기준 실손24에 참여하고 있는 의료기관은 총 3만614곳으로 전체 대상 의료기관 대비 연계율은 약 29.0% 수준이다. 가입자 수는 약 377만명, 누적 청구 완료 건수는 약 241만건으로 집계됐다. 정부는 주요 대형 EMR 업체들과의 협의가 본격화되고 기술 연동이 마무리되는 6월 이후 의료기관 연계율이 최대 52% 수준까지 높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당국은 일부 EMR 업체들이 시스템 개발에 따른 비용 부담과 경제적 유인 부족 등을 이유로 연동 작업에 미온적이라고 보고 있다. 환자가 청구를 원하고 의료기관이 참여 의사를 갖고 있더라도, 사용하는 EMR 시스템이 실손24와 연결되지 않으면 서비스 구현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는 미참여 EMR 업체들을 대상으로 참여를 독려하는 한편, 일부 업체의 집단적 참여 거부나 불공정 관행 여부에 대해서는 공정거래위원회와 함께 점검하겠다는 방침이다. 의료기관에는 청구전산화 참여가 법상 의무라는 점을 안내하고, 네이버·토스 등과 함께 소비자가 직접 의료기관에 연계를 요청하는 캠페인도 추진하고 있다.
보험업계 역시 실손24 활성화 필요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는 민감한 의료정보와 금융 데이터가 오가는 구조인 만큼, 표준화된 전송 체계 안에서 보안과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민간 간편청구 서비스별로 청구 방식이 나뉠 경우 의료기관과 보험사의 연동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점도 실손24 중심 전환의 명분으로 꼽힌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는 소비자의 청구 편의를 높이자는 취지인 만큼 표준화된 전송 체계와 보안 기준이 중요하다”며 “보험사 입장에서는 실손24 구축·운영 비용을 부담하는 상황에서 개별 민간 서비스와 별도 연동을 유지하는 데 현실적 부담이 있다”고 말했다.
전산화한다더니 팩스 병행…기존 청구망 ‘혼선’
실손24 확산 지연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EMR 연동 문제와 별개로, 기존 민간 간편청구망 위축 논란도 제기된다. EMR 업체는 병·의원의 진료기록 전산시스템을 제공하는 회사이고, 간편청구업체는 의료기관 EMR과 보험사를 연결해 소비자의 실손보험 청구를 대행해 온 사업자다.
간편청구업계는 실손24 가동 이후 보험사들이 비용 부담과 단일망 전환 등을 이유로 기존 제휴를 종료하거나 데이터 송수신을 중단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로 인해 일부 업체는 소비자 청구 단절을 막기 위해 EMR 데이터를 이미지로 변환한 뒤 보험사에 팩스로 전송하는 방식까지 병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보험업계는 실손24 구축·운영 비용을 부담하는 상황에서 민간 간편청구업체와의 별도 연동을 계속 유지하는 데 현실적 부담이 있다는 입장이다. 보안 관리와 책임 소재 측면에서도 표준망 중심 전환이 필요하다는 시각이 있다.
쟁점은 실손24 전환 과정에서 기존 청구 편의가 유지되느냐다. 실손24가 표준망으로 자리 잡기 전 기존 민간 청구망이 빠르게 위축되면, 소비자는 새 서비스의 효용을 체감하기도 전에 기존 청구 편의부터 줄어드는 상황을 겪을 수 있다. 전문가들이 각 주체의 역할과 비용 부담 조정이 필요하다고 보는 이유다.
서울디지털대 세무회계학과 최미수 교수는 “실손24 확산이 더딘 것은 단순히 시스템 문제가 아니라 병·의원, EMR 업체, 보험사, 민간 플랫폼의 이해관계가 모두 얽혀 있기 때문”이라며 “정부 또한 실손24 중심으로만 추진하기보다 공통 표준을 만들고 민간 서비스와도 연동될 수 있게 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어 “소비자 입장에서는 어떤 앱을 쓰느냐보다 편하게 청구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며 “정부는 EMR 업체와 병·의원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초기 개발비나 표준 연동시스템 지원을 검토하고, 직접 시장을 독점하기보다 조정 역할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부연했다.
소비자단체 역시 제도 전환 과정에서 청구 서비스의 연속성이 중요하다고 본다.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 회장은 “실손청구 전산화는 소비자 편익을 위한 제도인 만큼 전환 과정에서 기존 청구 서비스가 끊겨 소비자 불편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며 “감독당국과 보험업계가 서비스 연속성을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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