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전쟁①] 대한민국에서 'PTSD'는 왜 정책이 되지 못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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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전쟁①] 대한민국에서 'PTSD'는 왜 정책이 되지 못했나

프라임경제 2026-05-19 12:27:0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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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PTSD(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군 복무 과정에서 발생하는 PTSD 역시 마찬가지다. 전투는 기록으로 남고, 희생은 이름으로 호명되지만, 그날의 기억은 개인의 삶 안에 오래 머문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다시 떠오르고,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일상을 흔든다. 전투가 끝났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함께 끝나는 것은 아니다.

최근 이란-이스라엘 간 직접 충돌도 같은 질문을 남겼다. 화면에 비치는 것은 교전 상황과 피해 규모지만, 전쟁을 통과한 개인에게 남는 것은 숫자로 설명되지 않는 시간이다. 전쟁은 종전이나 휴전으로 정리될 수 있지만, 그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이후의 시간이 더 길게 이어진다.

군 복무 과정에서 반복되는 긴장과 위협,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은 외상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그 영향은 단기간에 사라지지 않고, 때로는 시간이 지난 뒤 더 또렷해진다. 살아 돌아왔다는 사실이 곧 회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외상 경험은 충분히 기록되지 않고, 증상은 나타나도 체계적인 관리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뒤늦게 드러나는 지연성 PTSD가 개인의 문제로 이해되기 쉬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지난 3월27일 대전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제11회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 앞서 전사자 묘역을 찾아 참전 장병의 묘소를 참배하고 있다. ⓒ 청와대

국내에서도 이런 문제는 낯설지 않다. 매년 이어지는 서해수호의 날은 희생을 기억하는 자리다. 전사자의 이름은 호명되고, 국가는 예우를 약속한다. 그러나 그날 이후를 살아가는 이들의 시간은 상대적으로 덜 조명돼 왔다. 보이지 않는 상처는 기록되지 않으면 정책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이제는 군인 PTSD를 개인의 고통이 아니라, 국가가 함께 기록하고 관리해야 할 시간으로 바라봐야 한다.

◆전투는 끝났지만, 인정은 늦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제2연평해전이다. 2002년 6월29일 발생한 제2연평해전은 우리 해군 장병 6명이 전사하고 다수의 생존 장병이 부상을 입은 사건이다. 그날은 국가 안보의 역사로 남았다. 그러나 생존 장병들에게 그날은 하나의 날짜로만 정리되지 않았다. 전투 이후에도 기억은 반복됐고, 상처는 각자의 일상 속으로 옮겨갔다.

제2연평해전 생존자 19명 중 2명은 사건 이후 20년 가까이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들은 PTSD 등 정신적 후유증을 이유로 여러 차례 신청했지만, 제도 안으로 들어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사건 발생 19년 6개월여가 지난 2021년 12월, 이 가운데 1명이 국가유공자 판정을 받았다. 이어 2022년 1월에는 마지막 남은 생존 장병도 PTSD 등 증상을 인정받아 국가유공자 7급 판정을 받았다. 2002년 6월 교전 이후 생존 장병 전원이 제도 안으로 들어오기까지 20년이 넘게 걸린 셈이다.

제2연평해전 이후 인양되는 참수리 357호정. 선체 곳곳에는 치열했던 교전의 흔적이 남아 있다. ⓒ 국방일보

20년은 한 사람의 삶에서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청년이 중년에 이르는 시간이고, 가족의 형태가 바뀌고, 일상의 무게가 달라지는 시간이다. 제도가 뒤늦게 인정한 것은 하나의 등급이나 등록 여부만이 아니라, 그동안 개인이 혼자 견뎌온 시간이기도 했다.

이 사례는 군인 PTSD 문제의 본질을 보여준다. 상처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제도가 상처를 읽어내는 방식이 늦었다. 전투는 끝났지만, 어떤 이들에게 그날은 끝나지 않았다.

천안함 피격 사건도 비슷한 구조를 드러낸다. 2010년 3월26일 천안함 피격 당시 생존 장병은 구조됐지만, 구조가 곧 회복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생존 장병들이 PTSD로 국가유공자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2021년부터다. 사건 발생 이후 무려 11년이 지난 뒤였다. 

천안함 생존 장병 58명 중 24명은 국가유공자 등록을 신청했고, 이 가운데 12명이 등록됐다. 등록자 중 9명은 PTSD로 국가유공자 등록을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전사자 46명은 모두 국가유공자로 등록됐지만, 생존 장병의 경우 신청과 심사를 거쳐야 했다.

참수리 357호정 선체에 남은 피격 흔적. 제2연평해전 당시의 교전 상황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 국방일보

숫자는 문제의 규모를 보여주지만, 살아남은 이들이 통과한 시간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천안함 생존 장병 최광수 씨는 전역 직후를 "내팽개쳐진 기분"으로 기억했다. 그는 "사건 이후부터 전역하고 나서 반년에서 1년 정도는 기억이 거의 없다"며 "머릿속에서 삭제된 것처럼 '툭' 끊겨버린 느낌이었다"고 돌아봤다. 

구조는 생존의 순간이었지만, 회복의 시작은 아니었다. 살아 돌아온 뒤에도 누군가는 자신의 일상을 다시 붙잡기까지 오랜 시간을 혼자 견뎌야 했다.

이 수치는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천안함 생존 장병에게 PTSD가 실제로 확인됐다는 점, 그리고 국가가 먼저 장기 추적 관리에 나선 것이 아니라 당사자가 직접 신청하고 피해를 입증해야 했다는 점이다.

◆지원은 있지만, 입구는 좁다

지원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상처가 제도 안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고통은 여전히 개인의 이름으로 남는다. 누군가는 병원을 찾아야 했고, 누군가는 기록을 모아야 했으며, 누군가는 자신이 겪은 일을 다시 말해야 했다.

천안함 46용사 영결식에서 해군 장병들이 전우의 영현을 운구하고 있다. ⓒ 국방일보

천안함 생존 장병 최광수 씨에게 전역은 회복의 시작이 아니라 또 다른 단절에 가까웠다. 그는 전역 이후 심리치료나 상담 지원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으로 생각했지만, 사회로 나온 뒤 먼저 상태를 묻거나 치료로 연결해주는 시스템은 없었다고 했다. 최 씨는 "사고 당시에는 국가가 끝까지 책임질 것처럼 이야기했는데, 막상 나오니까 결국 스스로 살아남아야 하는 구조였다"고 되짚었다. 전투와 사고를 겪은 뒤에도, 제도의 문 앞에서는 다시 혼자가 된 셈이다.

물론, 정부가 PTSD 진료 자체를 전혀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국가보훈처는 2018년 설명자료에서 PTSD가 공무상 발생한 질병으로 인정된 경우 5개 보훈병원에서 국비로 PTSD 진료와 상담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또 2011년 9월부터 중앙보훈병원에 PTSD 전문클리닉을 개설해 개인별 장애 수준에 따른 맞춤형 진료를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설명은 동시에 한계를 드러낸다. 지원은 존재하지만, 핵심은 '공무상 발생한 질병으로 인정된 경우'다. 즉, 제도적 지원은 인정 이후에 작동한다. PTSD의 특성상 사건 직후 증상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거나, 시간이 지나 뒤늦게 악화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 과정에서 공식 진단과 기록이 충분하지 않으면 지원 체계로 진입하기 어렵다.

군인 PTSD가 정책 영역으로 자리 잡지 못한 이유는 지원책의 부재만이 아니라, 지원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좁고 늦게 열린다는 데 있다. 상처가 있어도 기록되지 않으면 제도는 그것을 쉽게 알아보지 못한다. 고통이 있어도 진단과 서류로 정리되지 않으면, 개인은 다시 입증의 자리로 밀려난다.

천안함 피격 해역을 찾은 관계자가 희생 장병들을 추모하며 바다에 헌화하고 있다. ⓒ 국방일보

보훈 심사 과정에서도 기록의 문제가 반복된다. 군 복무 때 치료받은 기록을 근거로 심사를 받아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 기록이 부족하거나 아예 없는 경우가 있다. 제1·2연평해전 생존 장병 중에는 20년이 넘도록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 사례가 있었고, 연평도 포격전 참전 장병 역시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보훈부 심사를 받는 사례가 확인됐다.

최원일 전 천안함장 역시 이와 관련해 "개인이 뛰어다니면서 변호사를 선임하고 하면서 다니는 모습은 정말 아니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의 말은 단순한 행정 절차의 불편을 넘어선다. 국가가 기억해야 할 시간을 개인이 다시 증명해야 하는 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다.

군 조직 안에서 고통을 말하기 어려운 문화도 문제를 더 늦게 드러나게 한다. 최원일 326호국보훈연구소장은 "가장 안타까운 건 정작 본인 스스로 PTSD라는 사실을 모른 채 버티고 있다는 점"이라며 "괜찮지 않은데도 버티는 문화가 반복된다"고 지적했다.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는 시간은 기록되지 않고, 기록되지 않은 고통은 다시 개인의 몫으로 남는다.

이 지점에서 군인 PTSD는 의료 문제가 아니라 제도 설계 문제로 확장된다. 전투와 사고는 군 조직 안에서 발생하지만, 전역 이후 증상이 나타나는 순간 개인은 군 조직 밖에서 혼자 움직여야 한다. 병원을 찾고, 진료기록을 모으고, 국가유공자 신청을 하고, 심사를 기다린다. 국가가 먼저 찾아가 확인하는 구조보다, 개인이 스스로 자신의 피해를 증명하는 구조다.

천안함 46용사 추모 공간에 새겨진 전사 장병들의 얼굴. 한 유가족이 부조를 어루만지고 있다. ⓒ 국방일보

정신적 고통을 입증해야 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또 다른 외상이 될 수 있다. 최 씨는 "유공자 심사 과정에서도 정신적인 고통은 계속 설명하고 증명해야 했다"며 그 과정 자체가 "또다시 상처를 꺼내는 일"이었다고 했다. 보이지 않는 상처는 제도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다시 말해져야 했고, 다시 설명돼야 했고, 다시 증명돼야 했다. 그 반복 속에서 고통은 행정 절차의 이름으로 한 번 더 소환됐다.

지난해 국가보훈부가 제10회 서해수호의 날을 앞두고 공개한 서해수호 3개 사건 참전 장병 국가유공자 등록 현황을 보면, 제2연평해전·천안함 피격·연평도 포격전 참전 장병 149명 가운데 119명이 등록을 신청했고, 이 중 113명이 등록됐다. 사건별로는 제2연평해전 신청자 20명 전원, 천안함 피격 사건 81명 중 77명, 연평도 포격전 참전 장병 18명 중 16명이 등록됐다.

수치만 놓고 보면 상당 부분 진전된 듯 보인다. 그러나 숫자가 높아졌다는 사실이 곧 군인 PTSD 체계가 완성됐다는 뜻은 아니다. 등록은 결과다. 문제는 그 결과에 도달하기까지 걸린 시간과 절차다. 제2연평해전 생존 장병이 20년 만에 인정받은 사례, 천안함 생존 장병이 PTSD로 뒤늦게 등록된 사례, 연평도 포격전 참전 장병이 시간이 한참 흐른 뒤 심사를 받게 된 사례는 모두 같은 질문을 던진다. 왜 정신적 후유증은 사건 직후부터 관리되지 못했는가.

◆늦게 열린 제도, 남은 질문

올해 4월 이뤄진 군인재해보상법 개정도 같은 맥락에서 볼 필요가 있다.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군인재해보상법 일부개정안은 퇴직 후 6개월이 지나 PTSD 판정을 받은 경우에도 전상 또는 특수직무공상에 따른 보상이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한 해군 장병이 참수리 357호정 앞에서 경례하고 있다. 전투의 기억은 오늘의 장병들에게도 이어진다. ⓒ 국방일보

기존 제도는 퇴직하거나 퇴직 후 6개월 이내에 심신장애 판정을 받은 경우에만 장애보상금 지급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었는데, 지연성 PTSD의 특성을 고려하면 이 기준은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이 개정은 의미 있는 진전이다. 지연성 PTSD를 제도가 뒤늦게나마 반영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전투 중 입은 신체 부상뿐 아니라 시간이 지난 뒤 드러나는 정신적 외상도 군 복무의 결과로 볼 수 있다는 인식이 법제화된 것이다.

동시에 이 개정은 그동안 제도가 얼마나 물리적 상처 중심으로 설계돼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PTSD는 눈에 보이지 않고, 발생 시점도 뒤늦게 나타날 수 있다. 그런데 보상 체계는 오랫동안 일정 기간 안에 드러난 장애만을 중심으로 작동해왔다.

제도가 늦게 문을 연 동안, 개인의 시간은 먼저 흘렀다. 어떤 상처는 심사표에 오르기 전 이미 일상을 바꿨고, 어떤 기억은 진단서가 나오기 전부터 삶을 흔들었다. 법 개정은 필요한 변화지만, 그것만으로 그동안의 공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고(故) 한상국 상사의 배우자 김한나 씨도 같은 지점을 짚었다. 그는 군인재해보상법 개정 이후에도 "법이 통과됐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현장에서 실제로 인정받고 치료와 보상으로 이어지는지 지켜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도의 문이 열렸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그 문을 당사자가 실제로 통과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늦게 열린 문 앞에서 또다시 개인이 혼자 서 있어서는 안 된다.

제2연평해전 참수리 357호정 장병의 군번줄과 훼손된 신분증. ⓒ 국방일보

군인 PTSD가 독립적인 정책 영역이 되지 못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국내 제도는 전사자 추모와 부상자 보상에는 비교적 익숙하지만, 생존자의 정신적 후유증을 장기적으로 추적하고 관리하는 방식에는 아직 충분히 정교하지 않다. 보훈은 사후 인정에 집중되고, 군 의료는 복무 중 관리에 머물며, 전역 이후 정신건강 지원은 개인의 선택과 신청에 의존한다. 국방, 보훈, 복지 체계가 서로 맞물려 움직이기보다 각자의 영역 안에서 분절적으로 작동해온 것이다.

이런 구조에서는 PTSD가 '정신건강'이라는 넓은 범주 안에 흡수되기 쉽다. 정신건강 관리는 필요하지만, 군인 PTSD는 일반적인 스트레스 관리와 동일하게 취급하기 어렵다. 전투, 피격, 포격, 훈련사고, 반복되는 고위험 임무는 일반 사회생활의 스트레스와 성격이 다르다. 외상 경험이 군 복무와 직접 연결돼 있다면, 관리 책임 역시 개인에게만 맡겨둘 수 없다. 군인 PTSD는 복무 환경과 지휘 체계, 전력 유지, 전역 이후 사회 복귀까지 이어지는 문제다.

더 큰 문제는 데이터다. 외상 경험은 존재하지만 충분히 기록되지 않고, 증상은 나타나지만 장기 관리로 연결되지 않는다. 군 복무 중 어떤 외상 경험이 있었는지, 이후 어떤 증상이 나타났는지, 전역 뒤 치료와 사회 복귀가 어떻게 이어졌는지에 대한 누적 데이터가 부족하면 정책은 늘 사후 대응에 머물 수밖에 없다. 

문제가 보이지 않으면 예산이 붙기 어렵고, 예산이 붙지 않으면 제도는 움직이지 않는다. 기록되지 않는 상처는 정책의 언어로 번역되기 어렵다.

철책 너머 서해 접경 해역에서 해군 함정이 경계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 국방일보

서해수호 장병들의 사례는 바로 이 공백을 보여준다. 국가는 매년 희생을 기억하고, 예우를 약속한다. 그러나 기억과 예우가 곧 회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전사자는 이름으로 남지만, 생존자의 상처는 기록되지 않으면 제도 밖으로 밀려난다. 전투 이후 살아남은 이들의 시간은 추모 행사장 밖에서 더 길게 이어졌다.

군인 PTSD는 개인이 감당해야 할 문제로 남기기에는 이미 범위를 넘어섰다. 복무 환경과 직결돼 있고, 전력 유지와도 연결된다. 나아가 전역 이후의 삶과 가족의 일상까지 흔드는 문제다. 

우리 사회가 서해수호 장병들을 기억한다면, 이제는 그 기억 이후의 시간도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 한국의 군인 PTSD 문제는 '없었던 문제'가 아니라 '늦게 보인 문제'다. 전투가 끝난 뒤에도 누군가는 그날을 계속 살아왔다. 이제 필요한 것은 늦은 인정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을 국가가 어떻게 기록하고 책임질 것인지에 대한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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