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열 명 중 여섯 명은 앞으로 제사를 지낼 계획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균관 의례정립위원회가 2023년 조사기관 리서치뷰에 의뢰해 성인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제례 문화 관련 국민인식조사에서 응답자의 55.9%가 향후 제사를 지낼 의향이 없다고 밝혔다. 현재 제사를 지내고 있다는 응답은 62.2%였으나 앞으로도 지내겠다는 사람은 44.1%에 그쳤다.
제사 음식. / Yeongsik Im-shutterstock.com
제사를 지내지 않으려는 가장 큰 이유로는 '간소화하거나 가족 모임 형태로 대체하는 것이 좋다'는 응답이 41.2%로 가장 많았고, '시대 변화로 더는 필요하지 않다'(27.8%)가 뒤를 이었다. 이 변화를 실제로 끌어가는 쪽은 2030이 아니다. 수십 년간 제사를 지켜온 60, 70대가 직접 결정을 내리고 있다.
제사를 반드시 여럿이 모여야만 치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제사를 유지하는 동력은 가족 구성원 수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그런데 그 구성원 수가 빠르게 줄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1인 가구 비율은 2015년 27.2%에서 2021년 33.4%로 올랐고, 2050년에는 전체 가구의 39.6%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50대 1인 가구 비율은 15.4%, 60대는 16.4%로, 제사를 주도해야 할 세대 자체가 흩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23년 추석 당일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출국장이 이용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 뉴스1
자녀가 한둘이고 그마저 멀리 사는 경우, 기일에 모이는 인원이 서너 명에 그치는 집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제수 비용 부담은 줄지 않는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감시센터가 2024년 추석을 앞두고 서울 유통매장 90곳을 조사한 결과, 4인 가구 기준 추석 제수비용 평균은 33만 4828원으로 집계됐다. 2026년 설 제수비용 역시 4인 기준 평균 30만 5916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0.7% 올랐다. 비용은 오르는데 함께 나눠 먹을 가족 수는 줄어드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이런 현실을 반영해 성균관 의례정립위원회는 2023년 현대화 권고안을 내놓으며 "평상시 간소한 반상 음식으로 차리고, 고인이 좋아하시던 음식을 올려도 좋다"고 밝혔다. 격식보다 형편에 맞는 방식을 택하라는 권고다. 민속학자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저서 『음식전쟁 문화전쟁』에서 "한국의 제사 음식 문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음식의 의미보다 준비하는 사람의 부담이 앞서는 방향으로 바뀌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명절 차례 한 번, 기제사 한두 번만 치러도 연간 제사 비용은 100만 원을 가볍게 넘긴다. 4인 기준 제수비용이 30만 원대인데, 부부 기제사를 각각 지내고 조부모 제사까지 더하면 연간 제사 횟수가 네 번에서 많게는 열 번을 웃돌기도 한다. 여기에 제수 음식값 외에 교통비와 식사 비용이 별도로 붙으면 실제 지출은 통계 수치보다 훨씬 커진다.
서울 송파구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 시민들이 설 성수품인 생선을 고르고 있다. / 뉴스1
그럼에도 비용을 감수하면서 제사를 이어온 세대가 스스로 멈추는 배경에는 자식 세대를 향한 시선이 있다. 대출을 안고 사는 자녀가 명절마다 교통비와 선물값까지 부담하는 상황에서, 제사를 고집하는 것이 오히려 짐을 얹는 일이 된다고 느끼는 어른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결혼정보회사 가연이 2026년 발표한 연애·결혼 인식 조사에서 기혼자들의 명절 최대 고민 1위는 '명절 선물 등 지출 부담(26.6%)'으로 나타났다. 가족이 모이는 것보다 모이는 데 드는 돈이 더 크게 느껴지는 시대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앞서 사회학자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도 저서 『한국의 여성과 남성』에서 "한국의 가족 의례는 정서적 결속보다 경제적 부담으로 작동하는 방향으로 변질됐다"고 밝힌 바 있다.
국가기록원이 정리한 제사 풍속도 변화 자료에 따르면, 2000년대 이후 제사 간소화와 폐지를 주도하는 세대는 며느리가 아니라 시어머니 자리에 오른 50, 60대 여성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은 참아왔지만 그 부담을 며느리에게까지 이어주고 싶지 않다는 것이 이들이 가장 많이 내세운 이유였다. 이는 수십 년간 제사 노동의 대부분을 여성이 도맡아온 현실과 맞닿아 있다.
명절음식을 만들고 있다. / 뉴스1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 2019년 추석을 앞두고 조합원 65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명절 가사노동이 '여성이 주로 하고 남성이 거드는 정도'라는 응답은 73.2%에 달했다. 그 결과는 몸에도 새겨졌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명절 이후 손목터널증후군 환자의 80%는 여성으로, 수십 년간 전을 부치고 나물을 무쳐온 흔적이 수치로 드러난 것이다. 같은 조사에서 사후에 자신의 제사를 지내줬으면 좋겠다고 답한 비율은 남성 16.7%, 여성 2.4%로 7배 차이가 났다. 평생 상을 차려온 쪽이 오히려 제사를 먼저 끊겠다는 뜻을 밝힌 셈이다.
이 세대 여성들의 결정은 전통을 부정하는 것과 다르다. 한 세대에 집중돼 온 의례의 부담을 아래 세대에 넘기지 않겠다는 선택이다. 사회학자 김은실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는 저서 『여성의 몸, 몸의 문화정치학』에서 "한국 여성의 노동은 가족 의례 안에서 가장 철저하게 비가시화됐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 보이지 않던 노동을 가장 오래 감당한 세대가, 이제 스스로 매듭을 짓고 있다.
한편 제사를 대하는 방식은 두 갈래로 나뉘고 있다. 기일에 가족끼리 고인이 즐기던 음식으로 외식을 하는 집이 있는 반면, 자정 제사를 저녁으로 당기고 전 대신 고인이 좋아하던 음식을 올리는 방식으로 바꾼 집도 있다. 어느 쪽이 맞다고 할 수 없다. 다만 이 결정을 내린 세대가 수십 년간 제사를 가장 성실하게 지켜온 사람들이라는 점만큼은 분명하다. 조상을 잊겠다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의 방식으로 기억하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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