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출 기회 없고, 자질 검증 어려워…지방선거 취지 흔들려
찬반투표 실시·단독후보 최소 득표제 도입 검토할 때
(서울=연합뉴스) 한승호 선임기자 = 2022년 3월 9일 치러진 20대 대통령선거에는 14명이 후보로 등록해 지난 2017년 19대 대선 때 15명으로 역대 최다였던 것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후보자가 레이스를 펼쳤다. 후보가 많다 보니 투표용지 길이만도 19대에는 28.5cm, 20대에는 27㎝에 달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파면이라는 '특수 상황' 아래서 열린 21대 대선에서는 후보가 7명에 불과했지만, 대선에서는 대체로 '후보 난립'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런데 지방선거는 상황이 다르다. 보름 앞으로 다가온 6·3지방선거 후보 평균 경쟁률은 1.8대 1로 역대 최저 수준이다.
더욱이 이번 제9회 지방선거에서 기초단체장 3명과 지방의원 510명이 무투표 예비 당선자(당선 여부는 선거 당일 확정)로 파악됐다. 무투표 당선자가 가장 많았던 1998년 제2회 지방선거(738명) 때보다 적지만, 지난 2022년 제8회(490명)보다 늘어난 수준이다.
무투표 당선은 선거구의 정수와 후보자 수가 같을 때 나온다. 경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긴 무투표 당선자들은 기쁠지 모르지만, 공개경쟁과 검증을 통해 지역 일꾼을 뽑는 지방선거의 근본 취지가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우선 유권자의 참정권이 제한된다. 무투표 선거구에서는 후보가 선거운동을 할 수 없고, 투표용지도 교부되지 않는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경쟁을 통해 좀 더 능력 있는 후보를 선택하는 것이다. 선출 기회를 잃을 뿐만 아니라, 자질을 검증할 수 있는 공간도 사라지는 것이다.
지역정치 발전을 가로막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무투표 당선자가 나온 곳은 특정 정당의 지역 독점이 심해졌다는 것을 말해주는 경우가 많다. 특정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을 때 다른 정당이 아예 후보 공천을 포기한다. 정치 신인이나 소수 정당의 진입은 더 어려워진다.
대표성에도 문제가 생긴다. 무투표 당선자는 '1표도 받지 않고 선출된 공직자'가 된다. 투표라는 검증대를 통과하지 않은 당선자는 주민들로부터 정당성을 온전히 부여받았다고 보기 어렵다. 정책을 추진할 때 주민들의 자발적인 동의와 지지를 모으는 동력을 약하게 할 수 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경쟁자가 없는 당선자는 유권자인 주민들의 요구나 눈치를 보기보다, 자신을 공천해 준 거대 정당의 지도부나 지역구 국회의원의 눈치를 보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고마워해야 할 대상이 바뀌는 것이다.
이런 문제들을 안고 있지만 무투표 당선자들을 탓할 수는 없다. 정치적 리더십과 행정 수행 능력을 득표로만 재단할 수도 없다. 한때 대학입시에서 지원 미달 시 최저 합격 기준을 적용했던 것처럼 선거에서 '예외적 당선 기준'을 정하기도 어렵다.
그렇지만 무투표 당선자를 양산하는 정치 환경은 유권자의 선택에 대한 책임 의식도 흐릿하게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유권자들의 무관심 속에 특정 정당이 정책을 집행하는 단체장과 견제 역할을 하는 의회의 다수를 장악했을 때 지역 권력은 독점된다. 행정 독주는 권력 남용 가능성을 높인다.
한국의 풀뿌리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린 지도 30년이 지났다. 성숙 단계에 들어선 지방선거에 질문이 던져진 셈이다. 투표하지 않아도 당선되는 선거를 계속 방치할 것인가? 비용이 들더라도 찬반투표 실시나 단독후보 최소 득표제 도입을 검토해야 할 때다.
h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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