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수산과학원 산하 연구기관에서 근무하던 30대 박사과정 연구원이 숨진 채 발견된 사건과 관련해, 유족 측이 직장 내 폭행과 괴롭힘, 조직적 방치 의혹을 제기하며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유족은 고인이 생전 상습적인 폭언과 신체적 폭행, 업무 배제와 따돌림 등에 시달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18일 오마이뉴스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충남 금산군 소재 국립수산과학원 중앙내수면연구소에서 기간제 일반연구원으로 근무하던 박 모(34)씨는 지난 15일 숨진 채 발견됐다.
중앙내수면연구소는 담수어류 양식 기술 개발과 토속 어종 복원, 내수면 생태계 보전 등을 담당하는 국가 연구기관이다. 쏘가리와 뱀장어 등 내수면 어종 연구를 수행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유족 측 설명에 따르면 사건 당일 박씨의 원룸 PC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호소하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됐다. 유서에는 상급자들의 폭언과 폭행, 그리고 이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조직에 대한 절망감 등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고인은 유서에서 상급자인 A 박사로부터 반복적인 폭행과 폭언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손찌검을 네 번 했다”, “뒷머리채를 잡아당겨 머리가 뒤로 젖혀질 정도였다”는 등의 표현으로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 측은 유서에 당시 상황을 목격한 사람이 있었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상급자인 B 박사에 대해서는 연구원들의 업무와 일상 전반을 지나치게 통제하며 이른바 ‘갑질’을 반복했다고 주장했다. 유서에는 이 같은 분위기 때문에 연구소를 떠난 연구원들도 있었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연구소 측의 대응 과정에 대한 문제 제기도 이어지고 있다. 고인은 생전 연구소 책임자인 C 소장에게 피해 사실을 두 차례 공식 보고하고 A 박사와의 분리 조치를 요구했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사무실만 변경됐을 뿐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고 유서에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 측은 이후 오히려 고인이 업무에서 배제되거나 조직 내부에서 은근한 따돌림을 당하는 등 ‘2차 가해’에 시달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족이 공개한 메신저 대화 내용에는 올해 초 고인이 문제 해결을 요구한 이후 업무 참여가 줄어들고 고립감을 호소하는 정황이 담겨 있다고 한다.
유서에는 “너무 힘들었고 고통스러웠다”, “행위자들을 반드시 엄벌해달라”는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유족 측은 가해자로 지목된 상급자 2명과 연구소 책임자인 소장 등 총 3명을 상대로 폭행·상해 및 직장 내 괴롭힘 관련 혐의로 금산경찰서에 고소장을 제출한 상태다.
사건 이후 연구소 내부 상황도 논란이 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가해자로 지목된 연구원 2명은 일주일간 장기 휴가를 냈고, 연구소 소장은 병가를 내고 출근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부산 기장군에 위치한 국립수산과학원 본원은 사건 발생 이후에도 소속 연구원의 사망 사실과 내부 의혹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본원 관계자는 언론에 “관련 내용을 알지 못한다”며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답변하겠다”고 밝혔다.
유족 측 법률대리인인 이선경 변호사는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 신고가 접수되면 즉각적인 분리 조치와 객관적 조사, 피해자 보호가 이뤄져야 한다”며 “하지만 연구소는 형식적인 대응에 그쳤고, 결국 고인이 업무 배제와 조직 내 고립 상황에 놓이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경찰은 현재 유서 내용과 관계자 진술, 연구소 내부 근무 환경 등을 토대로 실제 폭행과 직장 내 괴롭힘이 있었는지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또한 조직 차원의 방치나 부실 대응이 있었는지도 함께 확인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은 폐쇄적인 연구기관 문화와 권위적 조직 구조 문제를 다시 드러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박사과정 연구원이나 기간제 연구인력은 상급 연구자와 기관 평가에 경력과 생계가 크게 좌우되는 경우가 많아 문제 제기가 쉽지 않은 구조라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한국에서는 2019년부터 이른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되고 있다. 근로기준법은 직장 내 지위나 관계 우위를 이용해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으며, 사용자는 신고 접수 시 즉시 조사와 보호 조치를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경찰은 정확한 사망 경위와 직장 내 괴롭힘 여부를 계속 수사할 방침이다.
한국에서 ‘직장 내 괴롭힘’은 현행 근로기준법에 근거해 규율된다. 이른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2019년 7월부터 시행됐으며, 근로기준법 제76조의2와 제76조의3에 관련 내용이 담겨 있다.
현행법은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나 관계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규정한다. 단순한 업무 지시나 정당한 평가를 넘어 반복적인 폭언, 모욕, 따돌림, 과도한 감시, 사적 심부름 강요, 업무 배제 등이 대표 사례로 분류된다.
특히 폭행이나 상해가 동반될 경우에는 근로기준법뿐 아니라 형법상 폭행죄·상해죄가 함께 적용될 수 있다. 형법상 단순 폭행죄는 2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 벌금형 대상이며, 상해죄는 7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형까지 가능하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가 접수되면 사용자는 즉시 사실조사에 착수해야 한다. 피해 근로자가 요청할 경우 근무장소 변경이나 유급휴가 명령 등 보호조치를 해야 하며, 조사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불리한 처우를 하는 것도 금지된다.
만약 사용자가 괴롭힘 사실을 알고도 조사하지 않거나 피해자 보호조치를 하지 않을 경우 행정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 특히 신고자나 피해자에게 해고·징계·전보 등의 불이익 처분을 할 경우 근로기준법에 따라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형이 가능하다.
다만 현행 제도의 가장 큰 한계로는 ‘괴롭힘 행위 자체’에 대한 직접 형사처벌 규정이 약하다는 점이 자주 지적된다. 실제로는 회사 내부 조사와 시정 권고 수준에서 끝나는 경우가 많고, 가해자가 사과나 인사 조치만 받고 형사처벌까지 이어지지 않는 사례도 적지 않다.
특히 연구기관·대학·병원처럼 폐쇄적 위계 구조가 강한 조직에서는 피해자가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고, 신고 이후 오히려 업무 배제나 인사상 불이익, 조직 내 고립 같은 ‘2차 가해’를 겪는 경우도 반복적으로 제기돼 왔다.
이 때문에 노동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 자체를 독립 범죄로 명확히 규정하고, 반복적 폭언·갑질·괴롭힘 행위에 대한 직접 처벌 조항을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도 이어지고 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에서 24시간 전문가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위키트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