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전증은 뇌 신경세포의 비정상적 전기활동으로 반복적인 발작이 나타나는 질환이다. 상당수 환자는 항발작제 등 약물치료로 발작을 조절할 수 있지만 일부 환자는 충분한 약물치료에도 발작이 이어진다. 이때 중요한 것은 발작이 뇌의 어느 지점에서 시작되는지, 그 부위가 언어·운동 등 중요한 기능 부위와 얼마나 가까운지, 절제가 가능한지부터 확인하는 일이다.
난치성 뇌전증 수술의 출발점은 '발작 시작점'을 찾는 데 있다. 두피 뇌파검사나 자기공명영상(MRI)만으로 발작 초점을 확정하기 어려운 환자에게는 입체뇌파전극삽입술(SEEG)이 활용된다. SEEG는 뇌 안에 전극을 넣어 발작이 시작되는 지점을 직접 확인하는 침습적 평가 절차다. 절제수술이 가능한지 또는 신경조절치료가 더 적합한지를 판단하는 데 쓰인다.
두개골에 작은 구멍을 뚫고 뇌 안에 가느다란 전극을 삽입해 뇌파를 직접 측정하는 침습적 검사다. 약물로 조절되지 않는 뇌전증 환자에서 발작 시작 부위를 찾고, 절제수술이나 신경조절치료 등 후속 치료전략을 정하는 데 활용된다.
SEEG는 1970년대 개발된 수술법이지만 로봇 도입 전에는 정밀도와 수술 부담 문제로 널리 시행되지 못했다. 장원석 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과거 방식으로는 5시간 걸리던 수술을 로봇을 이용하면 1시간에서 1시간 30분 안에 끝낼 수 있다"며 "큰 수술이 작은 수술로 바뀐 셈"이라고 설명했다. 로봇은 발작 초점을 스스로 판단하는 장비가 아니라 의료진이 영상 기반으로 계획한 좌표와 경로에 맞춰 전극을 정밀하게 넣도록 돕는 장비다.
다만 장비가 있다고 곧바로 SEEG가 가능한 것은 아니다. 장 교수에 따르면 국내에 뇌수술 로봇은 대략 10대 정도 들어와 있지만 뇌전증 수술을 할 수 있는 신경외과·신경과·소아신경과 등 팀이 갖춰진 곳은 전국 6곳 정도다.
장 교수는 발작을 "뇌에 쥐가 나는 것"에 비유했다. 다리에 쥐가 반복되면 근육이 손상되듯 발작이 반복되면 뇌 기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소아 환자는 반복 발작이 뇌 발달을 막기 때문에 발달 지연으로 이어질 수 있어 조기 평가가 중요하다. 18일 여성경제신문이 장 교수를 만나 정위기능신경외과의 개념과 난치성 뇌전증에서 발작 시작점을 찾는 이유, SEEG 이후 치료전략이 어떻게 나뉘는지 물었다.
―정위기능신경외과는 일반 신경외과 수술과 무엇이 다른가.
"정위기능신경외과는 뇌 안의 목표 지점을 좌표처럼 정밀하게 찾아 뇌 기능 이상을 평가하고 치료하는 분야다. 뇌는 심장이나 폐처럼 계속 움직이는 장기가 아니라 머리뼈 안에 고정돼 있다. 그래서 MRI나 CT 같은 영상자료를 통해 어느 위치에 어떤 뇌 구조물이 있고, 어디에 병변이나 치료 목표 지점이 있는지 사전에 파악할 수 있다.
이때 '정위'는 목표 지점을 정확한 좌표로 찾는 개념이다. 뇌에서는 2~3㎜ 오차도 마비나 언어장애 여부를 가를 수 있어 정밀도가 중요하다. '기능'은 뇌의 비정상적 전기활동이나 회로 기능을 평가하고, 필요한 경우 발작을 일으키는 부위를 절제하거나 전기자극 등으로 뇌 회로를 조절한다는 의미다. 뇌전증에서는 발작 시작 부위를 찾고, 파킨슨병과 수전증에서는 이상 회로를 조절하는 방식으로 이 개념이 적용된다."
뇌 안의 목표 지점을 좌표처럼 정밀하게 찾아 뇌 기능 이상을 평가·치료하는 분야다. 뇌전증에서는 발작 시작 부위를 찾아 절제수술이나 신경조절치료를 검토하고, 파킨슨병·수전증에서는 심부뇌자극술(DBS) 등으로 뇌 회로를 조절하는 치료가 포함된다.
―난치성 뇌전증 또는 약물저항성 뇌전증은 어떤 경우를 말하나.
"충분한 약물치료에도 발작이 조절되지 않는 경우를 난치성 또는 약물불응성 뇌전증이라고 본다. 이런 환자는 발작이 자주 오든 드물게 오든, 강도가 세든 약하든 약물만으로는 발작이 계속될 수 있다는 의미다. 전체 뇌전증 환자의 약 30%가 여기에 해당한다.
소아 환자는 발작 자체가 뇌 발달을 막을 수 있다. 발달 지연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 성인이 됐을 때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인 환자도 반복 발작으로 일상과 사회생활에 큰 영향을 받는다. 뇌전증에 대한 사회적 낙인 때문에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문제도 생긴다."
―약물로 조절되지 않는 발작을 오래 두면 어떤 문제가 생기나.
"발작은 뇌에 쥐가 나는 것과 같다. 한 번 지나가는 문제로 끝나지 않고 반복되면 뇌가 손상을 받을 수 있고, 장기적으로 전반적인 뇌 기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소아에서는 뇌 기능 저하뿐 아니라 발달장애로 이어질 수 있어 오래 지켜보기보다 조기에 평가하고 치료 방향을 찾아야 한다."
―국내 뇌전증 수술은 환자 규모에 비해 충분히 이뤄지고 있다고 보나.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뇌전증 수술은 환자 수에 비해 매우 적게 시행되고 있다. 뇌전증 환자는 인구의 약 1% 수준으로 추정되고, 이 가운데 약물치료에도 발작이 조절되지 않는 환자가 3분의 1 정도다. 하지만 실제 수술로 이어지는 경우는 1년에 대략 1200건 정도로 알고 있다. 환자 규모에 비해 수술까지 가는 환자가 매우 제한적이라는 뜻이다.
그만큼 많은 환자가 발작을 안고 살아간다. 수술을 검토하는 시점이 늦어졌다고 볼 수 있고, 의료진도 더 전향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환자들도 약물치료만 계속하는 것 외에 수술 가능성을 평가받는 선택지가 있다는 점을 알 필요가 있다. 정부 지원도 약물치료뿐 아니라 수술과 신경조절치료까지 포함해 더 넓게 설계될 필요가 있다."
―국내에서 뇌전증 수술이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여러 요인이 맞물려 있다. 뇌전증이 수술로 치료될 수 있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알려졌지만, 과거에는 지금보다 수술기구나 수술 정확도 면에서 한계가 있었다. 초기 뇌전증 수술 결과가 아주 좋지는 않았던 경험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그 경험 이후 약물치료를 담당하는 의료진 사이에서는 '약물치료를 하며 지켜보자'는 흐름이 생겼고, 환자들도 뇌를 건드린다는 데 두려움을 갖는다. 신경외과에서도 뇌전증 수술을 전문으로 하는 의사가 줄면서 약물치료가 최선이라는 분위기가 이어진 측면이 있다.
지금은 과거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수술 효과와 합병증 양상이 달라졌다. 의료진과 환자 모두 인식 전환이 필요한 단계다."
―MRI나 두피 뇌파검사만으로는 왜 부족한 경우가 있나.
"난치성 뇌전증에서는 발작이 어디서 시작되는지 찾는 과정이 필요하다. MRI,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 24시간 비디오 뇌파검사, 뇌자도 검사 등을 종합하면 '뇌의 어느 부위가 발작을 유발하는 것 같다'는 정도까지는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정보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다. 의심 부위를 넓게 절제하면 발작을 만드는 부위가 아닌 정상 뇌까지 제거될 수 있고, 반대로 발작을 만드는 부위가 일부 남을 수도 있다.
그래서 정밀한 뇌 지도화가 필요하다. 뇌에 전극을 심어 신경세포 바로 옆에서 뇌파를 직접 측정하면 어디가 정상 기능을 하는 부위이고 어디가 발작을 만드는 부위인지 가장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뇌 신경세포 활동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자기장 변화를 측정해 뇌 기능 활동 위치를 추정하는 검사다. 뇌전증 환자에서 발작을 일으키는 부위를 찾는 데 보조적으로 활용된다.
―SEEG는 어떤 환자에게 시행하나.
"발작 초점이 명확하지 않거나, 발작이 생긴다고 추정되는 부위가 중요한 기능을 하는 뇌 부위와 가까운 경우에 시행한다. 예를 들어 말하기, 보기, 팔다리 움직임과 관련된 부위와 가까우면 정밀한 평가가 필요하다.
과거에는 머리뼈를 크게 열고 판 모양 전극을 뇌 표면에 붙이는 방식이 있었다. 많은 정보를 얻을 수는 있었지만 뇌출혈이나 염증 같은 합병증 위험이 있었다. SEEG가 도입되면서 이런 부담이 줄었고, 지금은 뇌 지도를 더 적극적으로 정밀하게 그리려는 추세다."
―SEEG에서 전극 위치와 개수는 어떻게 정하나.
"핵심은 최소한의 전극으로 최대한의 정보를 얻는 것이다. 전극을 많이 넣으면 뇌 지도화는 더 잘될 수 있지만 그만큼 위험성도 높아진다. 그래서 사전 검사 결과와 의심 부위, 기능 부위와의 관계를 종합해 전극 위치와 개수를 정한다.
이 과정에서 의료진의 경험이 중요하다. 다만 여러 진단기법의 발전과 인공지능 기반 표준화 작업도 이뤄지고 있어 앞으로는 경험 의존도가 낮아지고 더 넓게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SEEG 과정에서 로봇은 어떤 역할을 하나.
"SEEG는 보통 여러 개의 전극을 뇌 안에 넣어 뇌 지도를 그린다. 전극 1~2개만으로는 충분한 정보를 얻기 어렵고 보통 10~20개 정도의 전극을 넣는 경우가 많다. 이를 눈금으로 하나하나 맞춰 정밀하게 넣기는 어렵기 때문에 로봇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로봇이 발작 초점을 판단하는 것은 아니다. 의료진이 MRI 등 영상을 보고 전극이 들어갈 위치와 경로를 계획하면, 로봇은 그 좌표와 경로에 맞춰 전극을 넣도록 돕는다. 쉽게 말하면 의료진의 손을 정밀하게 잡아주는 장비다."
―SEEG 이후 절제수술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결론은 치료 실패가 아니라 치료전략을 정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나.
"그렇다. SEEG는 발작 초점을 찾고 치료 가능성과 위험을 판단하는 과정이다. 절제수술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실패라고 볼 수 없다. 발작을 일으키는 부위가 언어·운동 같은 중요한 기능 부위와 너무 가까우면 절제가 위험할 수 있다. 이 경우에는 다른 치료전략을 선택해야 한다.
과거 머리를 크게 열고 전극을 붙이던 시절에는 전극을 제거하기 위해서도 수술이 필요했다. 환자 입장에서는 힘든 진단 과정을 거쳤는데 아무 치료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의료진도 어차피 수술하는 김에 의심 부위를 절제하자는 부담이 있었다.
지금은 SEEG 결과 절제가 어렵다고 판단되면 병동에서 전극을 제거하고 퇴원할 수 있다. 꼭 뇌를 절제해야 한다는 부담이 줄어든 것이다. 뇌는 여러 부위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구조이기 때문에 절제가 어렵다면 뇌의 연결성과 환경을 조절하는 신경조절치료를 고려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발작 조절을 목적으로 뇌에 직접 전기자극을 주는 심부뇌자극술(DBS)과, 목 부위 미주신경을 자극해 뇌로 신호를 보내는 미주신경자극술(VNS)이 있다."
―정밀 뇌수술은 장비만으로 완성되는 치료가 아니다. 가장 보완이 필요한 부분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의료진 간 다학제 협업이다. 수술하는 의사, 진단하는 의사, 약을 쓰는 의사는 같은 환자를 보더라도 판단이 조금씩 다를 수 있다. 여러 의료진이 함께 논의해 환자 개개인에게 가장 적합한 치료전략을 찾아야 한다.
뇌전증 수술이 충분히 활성화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도 이 협업이 부족했던 데 있다고 본다. 반면 파킨슨병 같은 이상운동질환 수술이 활발한 병원은 이런 협업 체계가 잘 갖춰진 경우가 많다.
수술하는 의사는 약물치료 경험이 상대적으로 부족할 수 있고, 약을 쓰는 의사는 수술 결과나 수술 이후 변화를 직접 경험하기 어렵다. 환자는 주치의가 권하는 치료가 최선이라고 믿기 쉽지만, 이 분야에서는 한 진료과의 판단만으로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
따라서 서로 교류하고 교육하면서 협업을 늘려야 한다. 진단과 약물치료, 수술치료를 담당하는 의료진이 함께 논의해야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치료 시점과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여성경제신문 김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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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경제신문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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