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노동운동의 역사는 일터에서 흘린 노동자들의 피와 땀, 그리고 눈물로 가득 차 있다. 노동쟁의와 파업은 노동자가 사측과 대등한 위치에서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요구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이자, 수많은 희생을 통해 정당성을 인정받은 신성한 권리다.
그러나 오는 21일 총파업을 예고한 삼성전자 초기업노동조합의 최근 행태는 과연 이들이 외치는 투쟁이 누구를 위한 것이며,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지 깊은 회의감을 던져주고 있다. 노조 지도부의 도덕적 해이와 아마추어식 재정 운용이 드러나면서, 현장에서 묵묵히 땀 흘리는 수많은 노동자의 절실함마저 바닥으로 추락하고 있다는 지적이 거세다.
삼성전자 초기업노조 지도부의 '직책수당 이중 수령' 논란은 노동계 안팎에 커다란 충격을 주고 있다. 최승호 위원장이 회사로부터 타임오프(근로시간 면제) 급여를 전액 수령하면서도, 조합비에서 매달 1500만원의 직책수당을 별도로 챙겨온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이송이 부위원장 역시 월 500만원을 받아 두 사람이 매달 조합비에서 가져간 수당만 2000만원에 달한다. 대다수 중소기업 노동자의 몇 달 치 월급에 해당하는 금액이 노조 간부의 '보너스'처럼 지급된 셈이다.
노동계에선 일제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인다. 통상적인 노조 활동비나 실비 정산 형태가 아닌 고정적 '수당'으로 지급되는 순간, 이는 소득세 납부 의무가 발생하는 근로소득으로 분류된다. 회사의 성과급 산정 방식이 불투명하다며 총파업을 선언한 노조가, 정작 자신들은 타임오프 제도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며 억대 연봉 수준의 추가 수당을 챙기는 이중성을 보인 것이다. 파업이라는 거사를 앞두고 내부 재정의 정당성조차 확보하지 못한 채 논란을 자초한 것은 명백한 '아마추어 처사'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이권 성격의 규약 개정이 조합원들의 눈을 가린 채 '꼼수'로 처리됐다는 점이다. 노조 집행부는 지난 3월 쟁의행위 찬반투표 공고문에 조합비 2배 인상, 직책수당 신설, 파업 불참자 징계 강화 등의 민감한 규약 개정안을 슬그머니 묶어 올렸다. 파업 찬반이라는 거대 의제에 묻혀 조합원들이 세부 독소조항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도록 만든 구조다. 쟁의 중에는 운영위원회 결의만으로 조합비를 기존의 10배인 5만원까지 올릴 수 있도록 한 대목에서는 조합원을 향한 배려보다 집행부의 권력 강화 의도만 도드라져 보인다.
이러한 행태를 바라보는 산업 현장의 목소리는 참담함 그 자체다. 한 중소 부품업체 노동자는 "우리는 최저임금 몇 백 원 인상과 고용 유지를 위해 목숨을 걸고 사측과 싸운다"며 "수천만 원의 연봉을 받으면서 타임오프 급여 외에 월 1500만원의 수당을 따로 챙기는 삼성 노조의 파업을 보며 깊은 자괴감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한 석유화학업계 노조 관계자 역시 "노동쟁의의 생명은 도덕성과 대중적 공감대인데, 이번 사태는 전체 노동운동을 '돈 욕심에 눈먼 귀족 노조의 떼쓰기'로 비치게 만들었다"면서 "정작 생존의 기로에 선 하청 노동자나 한계기업 노동자들의 절실한 목소리마저 도매급으로 폄훼당할까 두렵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삼성 노조가 내건 파업의 명분 역시 대중의 지지를 얻기 어렵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노조는 성과급 재원 기준과 상한 폐지를 요구하고 있으나, 이는 이미 업계 최고 수준의 처우를 받는 이들의 추가적인 이익 극대화에 가깝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가는 비정규직 노동자나, 경기 침체로 구조조정 위기에 몰린 중소기업 노동자들에게 삼성 노조의 총파업은 '그들만의 리그'이자 사치로 보일 뿐이다. 법원이 삼성전자가 제기한 가처분 신청을 일부 인용하며 반도체 라인의 안전보호시설 및 보안작업 인력을 유지하도록 명령한 것도, 국가 경제의 근간을 흔드는 무리한 쟁의행위에 대한 사법부의 경고 메시지로 해석된다.
정부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긴급조정권 발동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중앙노동위원회의 사후조정 회의에서도 사측과 노조는 좀처럼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고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파업 돌입 시점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노조 내부 게시판마저 집행부의 이중 수령과 기습 규약 개정에 대한 조합원들의 성토로 들끓고 있는 실정이다.
노동운동은 사회적 약자의 권익을 대변하고 공정성을 확립할 때 비로소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조합원의 눈을 속여 억대 수당을 챙기고, 대외적으로는 고연봉 노동자의 이익만을 위해 국가 경제를 담보로 파업을 벌이는 행태는 대한민국 노동쟁의의 신성한 역사에 오점을 남기는 일이다.
삼성 초기업노조는 지금이라도 자신들의 행태가 현장에서 땀 흘리는 진짜 노동자들에게 얼마나 큰 상실감과 피해를 주고 있는지 직시해야 한다. 명분과 도덕성을 잃은 투쟁의 끝에는 조합원의 외면과 국민적 지탄만이 남을 뿐이다.
박성대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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