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미술관이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유영국(1916~2002)의 예술 세계를 총체적으로 조망하는 대형 전시를 개막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산은 내 안에 있다'라는 제목의 이번 전시는 '한국 근대 거장' 기획 시리즈의 서막을 여는 행사다.
경북 울진의 산과 바다로부터 예술적 자양분을 얻은 유영국은 기하학적 화면 구성과 원색의 대담한 사용으로 독자적 추상 세계를 구축했다. 1930년대 도쿄 유학 시절의 실험작부터 투병 중에도 여덟 차례 수술을 견디며 완성한 말년작까지, 유화 115점 등 총 170여 점이 관람객을 맞는다. 특히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미공개작 15점이 처음으로 공개된다.
1964년을 분기점으로 다섯 시기로 나뉜 전시 구성은 작가의 화풍 변천사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신사실파(1947), 모던아트협회(1957), 현대작가초대전(1958), 신상회(1962) 등 한국 추상미술 운동의 중심에서 활약했던 유영국은 40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생애 첫 개인전 무대에 섰다. 이후 그룹 활동을 접고 2년 주기의 개인전만으로 세상과 소통하겠다는 방침을 천명했다.
동료 화가 한묵, 문신, 김환기가 해외로 활동 무대를 옮길 때도 유영국은 국내에 남아 작업실에서 깊은 침잠의 시간을 보냈다. 홍익대 교수직(1966~1970)마저 의무 출강 부담을 이유로 내려놓을 만큼 창작에 대한 집념이 강렬했다. 이 시기부터 빨강·노랑·파랑의 삼원색은 물론 보라·분홍·초록 등 강렬한 색채가 기하학적 구도 위에 펼쳐지는 대표작들이 탄생했다.
평소 '60세까지는 기초를 닦고, 그 이후에는 자연으로 부드럽게 회귀하겠다'고 밝혔던 작가의 말대로 1970년대 후반부터는 산과 자연이 녹아든 서정적 추상으로 화풍이 변모한다. 전시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것은 1994년작 대형 캔버스 '산 레드'와 '산 블루', 그리고 절필작인 1999년작 '작품'이다. 선과 색이 조화를 이루며 자연과 작가가 하나로 융합되는 경지를 보여준다.
장남 유진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이사장은 전시 제목에 담긴 의미를 풀이했다. 그는 "여기서 말하는 산은 눈앞의 실제 산이 아니라 마음속에 투영된 산"이라며 "진리는 외부가 아닌 내면에 있으니 성찰을 통해 찾으라는 메시지이자, 예술가 유영국이 선택한 생존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오디오 가이드에는 피아니스트 손열음(한국어)과 방송인 피터 빈트(영어)가 보이스 앰배서더로 목소리를 더했다. 공간 디자이너 양태오, 시인 박준이 참여하는 토크 프로그램도 마련된다. 사전 예약 또는 현장 방문으로 무료 관람이 가능하며, 100여 종의 굿즈 판매와 작가의 고향 울진에서 영감받은 음료를 선보이는 팝업 카페도 운영된다.
최은주 서울시립미술관장은 "기술이 창작 개념을 뒤흔드는 시대에 인간 직관과 회화 행위의 본질적 가치를 되새기는 기회가 될 것"이라며 "한국 근대미술의 역사적 성취를 현재의 시선으로 재조명하는 축제가 되길 바란다"고 기대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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