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진영 기자] 삼성전자 노사의 2차 사후조정이 18일 시작됐지만 협상장을 둘러싼 기류는 이전과 달라졌다. 총파업 예정일인 21일까지 사흘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노사는 19일까지 막판 협상을 이어가기로 했지만, 정부의 긴급조정권 시사와 법원의 쟁의행위 제동, 정치권·경제계의 파업 만류가 맞물리며 노조의 협상 환경은 한층 좁아지는 모습이다.
18일 노동계와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노사는 이날 오전 10시 정부세종청사 중앙노동위원회에서 2차 사후조정 회의에 들어갔다. 박수근 중노위원장이 단독 조정위원으로 회의를 주관, 노조 측에서는 최승호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위원장, 사측에서는 새 대표교섭위원인 여명구 삼성전자 DS 피플팀장이 참석했다.
박 위원장은 오전 회의 후 기자들을 만나 “기본 입장만 들었다”며 “사후조정을 내일까지 진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날 회의는 오후 7시까지 진행된 뒤 19일 오전 10시 재개될 예정이다.
이번 조정은 사실상 총파업 전 마지막 협상 기회로 꼽힌다. 노사는 지난 11~12일 1차 사후조정에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이후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의 중재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대화 호소 등을 거쳐 추가 협상 테이블이 마련됐다. 그러나 파업 예고일까지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은 만큼, 이번 조정이 결렬될 경우 추가 중재 여지는 크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쟁점은 성과급 제도화다. 노조는 성과급 상한 폐지와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 재원으로 삼는 방안의 명문화를 요구하고 있다. 사측은 업계 1위 달성 시 경쟁사를 뛰어넘는 수준의 특별 보상은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성과급 상한 폐지를 제도화하는 데는 선을 긋고 있다. 성과급을 임금 보상의 연장선으로 볼 것인지, 투자와 주주환원까지 고려해야 하는 경영 판단의 영역으로 볼 것인지가 충돌하는 셈이다.
갈등의 성격이 달라진 것도 노조에는 부담이다. 정부는 이미 긴급조정권 발동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거론했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전날 대국민담화에서 “18일 교섭은 파업을 막을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라며 “국민 경제에 막대한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긴급조정을 포함한 가능한 모든 대응 수단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전했다. 긴급조정권이 발동되면 30일간 파업이 금지되고 중노위 조정 절차가 진행된다.
대통령과 정치권의 메시지도 파업 강행에 우호적이지 않은 흐름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기업만큼 노동도 존중되어야 하고, 노동권만큼 기업경영권도 존중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 노사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총파업을 앞둔 노사에 대화와 타협을 주문한 메시지로 받아들여진다.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박용진 전 민주당 의원도 각각 파업 자제와 국민 여론을 언급했고, 국민의힘은 노조의 파업 철회와 정부의 긴급조정권 발동 준비를 요구했다.
경제계는 이번 사안을 국가 핵심 산업의 공급망 리스크로 규정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와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제인협회 등 경제6단체는 이날 공동성명을 통해 “삼성전자 노조의 파업은 국가 핵심 산업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며 파업 계획 철회를 촉구했다. 반도체 수출과 무역수지, 세수, 금융시장, 협력업체 피해 등을 고려하면 이번 갈등이 개별 기업의 임금 협상 차원을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이다.
법원 결정은 노조의 파업 방식에도 영향을 줄 변수로 떠올랐다. 수원지법 민사31부는 이날 삼성전자가 노조를 상대로 낸 위법쟁의행위금지 가처분 신청을 일부 인용했다. 재판부는 방재시설, 배기·배수시설 등을 안전보호시설로 보고 쟁의행위 기간에도 평상시와 동일한 수준의 인력과 가동시간, 가동규모가 유지돼야 한다고 봤다. 웨이퍼 관련 작업 역시 중단될 경우 제품 변질이나 생산 차질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근거로 정상 유지 필요성을 인정했다.
노조는 법원 결정을 존중하되 예정된 쟁의활동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법원이 안전보호시설과 웨이퍼 관련 작업의 정상 운영 필요성을 인정하면서 총파업 과정에서 생산 차질을 압박 수단으로 활용하는 데는 일정한 제약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의무 위반 시 노조는 하루 1억원, 지부장은 하루 1000만원을 지급해야 한다.
내부 결속 문제도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초기업노조 삼성전자지부 부위원장이 사후조정을 앞두고 “삼성전자를 없애버리는 게 맞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파장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초기업노조 조합원 수도 한 달 새 약 4000명 감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DX 부문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성과급 논의가 반도체를 담당하는 DS 부문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19일까지 이어지는 사후조정은 단순한 임금 협상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됐다. 노조는 협상 결렬 시 21일부터 다음 달 7일까지 18일간 총파업을 예고한 상태다. 참여 인원은 최대 5만명으로 거론된다. 그러나 법원 판단과 정부의 긴급조정 가능성, 정치권·경제계의 파업 만류, 내부 이탈까지 겹치면서 노조가 파업 명분을 여론전으로 확장하기는 쉽지 않은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사측 역시 갈등 장기화에 따른 부담을 피하기 어려운 만큼, 양측 모두 사후조정장에서 물러설 명분과 타협할 명분을 동시에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 파업은 일반 제조업 파업과 달리 생산라인 중단 여부만으로도 협력업체와 고객사, 글로벌 공급망에 미치는 파장이 크다”며 “노조 입장에서도 법적 쟁의권만으로는 파업 명분을 충분히 확보하기 어려운 국면이 된 만큼, 사후조정에서 실질적인 타협점을 찾지 못하면 노사 모두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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