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2팀] 김유미 기자 = 유미가 성공했다.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유미의 세포들> 시즌3가 최종회 시청률 2.5%로 막을 내렸다. ‘윰록 커플 케미’ ‘하트 피버 타임’ ‘응큼세포’ 등 요소 하나하나가 모두 화제가 됐다. 웹툰 기반 드라마로서 원작 훼손 논란 없이 세 시즌을 거쳐 잘 마무리된 최초 사례가 됐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결국 ‘공감’이었다. 배우 김고은도 극 중 유미와 또래이고 비슷한 삶의 결을 지나고 있는 사람이다. 그 공감대를 최대한 살리고 싶었다. 유미는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동생 같은 친근한 인물이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반짝이는 지점도 있다. 그런 결을 잘 살려내고 싶었다.”
공감하는
반짝이는
2021년 첫 시즌을 선보인 이후, 최근 세 번째 시즌을 마무리하며 <유미의 세포들>을 완결 지은 이상엽 감독이 한 말이다. 이 감독은 원작 웹툰이 흥행할 수 있었던 이유를 너무나도 잘 파악하고 있었다. ‘주변에서 볼 수 있는’과 ‘그 안에 반짝이는 지점’이 키워드다.
시즌 세 개를 거치는 동안 유미는 조금씩 더 성장한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던 유미는 그토록 바라던 작가가 되고, 과거보다 성숙한 연애도 할 수 있게 된다. 매 시즌 바뀌는 건 유미 남자친구다. 시즌1 구웅에서 시즌2 유바비로, 다시 시즌3 신순록으로.
평범하기 그지없는 연애담에서 주인공은 오직 한 사람이라는 점에서는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드라마 원작 IP(Intellectual Property, 지식재산권)인 웹툰 <유미의 세포들>은 작가 이동건이 2015년부터 2020년까지 연재했다. 초반부터 흥행했다. 특히 2018년부터 2020년까지 네이버 웹툰 플랫폼에서 콘텐츠가 업로드되는 수요일과 토요일, 1위 자리를 놓지 않았다.
원작 웹툰 인기 비결은 역시 ‘여잘알(여자 마음 잘 아는)’ 작가가 말아주는 알콩달콩 로맨스였다. 이동건은 남성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여심을 파악하고 담아내는 실력이 특출났다. 웹툰만큼 작가도 인기를 얻더니, 덤으로 ‘무빙건’이란 별명도 얻었다. 작가 이름 앞 두 자인 ‘이동’을 ‘무빙(moving)’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이렇듯 웹 기반 콘텐츠는 오랜 기간 작가와 팬이 소통하며 끈끈한 관계를 유지한다. 오랜 기간 연재한 <유미의 세포들>은 그림체가 꾸준히 달라진 것으로도 유명하다. <유미의 세포들> 팬이라면, 성장하는 유미는 물론, 그 주인공을 그려나가는 작가도 응원할 수밖에 없다.
흥미로운 점은, 드라마로도 세 시즌이 구성되면서 시청자들은 유미와 드라마와 감독이 성장하는 모습도 오랫동안 지켜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첫 시즌을 본 시청자는 자연스럽게 다음 시즌을 기대하는 예비 시청자가 됐다.
<유미의 세포들>은 원작과 드라마를 구분할 것 없이 두 가지 모두 누구나 경험했을 법한 연애담을 그려낸다. 연애를 시작하기 전에만 느낄 수 있는 설렘, 중간에 소소한 경험을 함께 쌓으며 서로에게 물드는 안정감, 서서히 마음이 닫히고 헤어지기를 결심하기까지 겪는 실망감. 어쩌면 뻔한 이야기뿐이다.
고민과 번뇌는 현실에서만도 벅차
애초에 강한 먼치킨 주인공 선호
그렇다면 <유미의 세포들>은 이 뻔한 이야기에 어떻게 흥미를 덧붙이고 독자와 시청자를 끌어당겼을까. 그 비결은 온갖 감정이 요동치는 연애담 안에서, 그 온갖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에 있었다. 제목 그대로 ‘유미의 세포들’이 3D 캐릭터로 등장해 본분에 맞게 유미 내면에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귀엽게 담았다.
특히 이번 시즌에서는, 남자 주인공 신순록 세포인 ‘응큼세포’와 ‘혀세포’가 극에 재미를 더하는 데 한몫했다. 유미를 담당하는 PD 순록이 ‘침착하고 이성적인’ 인물이라고 짐작했던 만큼, 공룡보다 거대한 응큼세포와 혀세포가 첫 키스를 계획하는 장면에서는 절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다.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은 그림으로만, 캐릭터로만 전할 수 있는 미묘한 감정적 변화를 재치 있게 담았다. 주인공 윰록 커플에게 ‘하트 피버 타임(일시적으로 사랑하는 감정이 폭발하는 상태)’이 찾아오는 순간을 담기에 매우 적절한 기법이었다 할 만하다.
웹툰 <유미의 세포들>보다 엄청난 인기를 얻으며 현재 웹소설 시장에서 독보적 위치에 있는 작품으로 <전지적 독자 시점>(이하 <전독시>)을 꼽을 수 있다. 아쉽게도 동명 영화 <전독시> 손익분기점은 약 600만명가량이었으나, 여기에서 한참 부족한 100만명 수준으로 관객을 모으는 데 그쳤다.
<유미의 세포들> 웹툰은 이달 기준 내려받기 3842만여회를 기록했다. <전독시> 웹소설은 이 수치의 예닐곱 배인 2억5880만회를 기록하고 있다.
총 512화로 연재한 <유미의 세포들>에 비해 <전독시>는 매일 연재하는 장편인 만큼, 더욱 반응 지표가 빠르게 상승했을 것이다. <전독시>는 본편만도 552화에 외전(속편)까지 합하면 1000화를 넘기니, 콘텐츠 분량만으로도 거의 두 배다.
그렇다 해도 <전독시> 인기 지표는 <유미의 세포들>을 말 그대로 월등하게 뛰어넘는다. 본편 인기를 업고 가는 2차 콘텐츠 특성을 고려하면, 영화 <전독시>가 흥행하지 못한 이유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전독시>는 10년 넘게 연재된 웹소설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 전편을 읽은 유일한 독자인 김독자(안효섭 분)가 그 소설대로 펼쳐지는 가상현실 속에서 소설 주인공 유중혁(이민호 분)을 비롯한 동료들과 롤 플레잉 게임을 하는 것처럼 움직이며 살아남는 과정을 다룬다.
웹소설 <전독시>는 전형적인 ‘남성향’이다. 남성이 주로 보기에 남성향이라고 부르는 것 같겠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전독시> 팬층은 여성 독자도 일정 부분 포함하고 있다. 여기에서 남성향이란, 연애사는 대체로 쏙 빠진, 성장하는 남성 주인공이 등장하는 장르를 일컫는다.
남성향
먼치킨
<전독시>는 웹소설 최신 트렌드를 총망라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특정 시기로 회귀하기, 낯선 인물에게 빙의하기, 특정 시점에 환생하기 등을 뜻하는 ‘회빙환’은 한동안 유행하는 남성향 웹소설을 이끄는 중심축으로 작용했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회빙환’이 뜨는 이유는 간단하다. 노력해도 무언가를 쉽게 이룰 수 없는 현실에서 도피해 나만 아는 정보를 토대로 마음먹은 대로 성장하며 성공 판타지를 실감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웹 콘텐츠를 스낵 컬처(Snack culture)라 부른다. 요즘 독자와 시청자는 짧은 시간에 가볍게, 간편하게 이야기를 스크롤하고 감정을 낭비하지 않는다. 좌절하고 고민하고 번뇌하는 일상은 현생만으로도 버겁고, 그래서 족하다.
<전독시>는 여기에 ‘먼치킨’이라는 주인공 특성을 추가한다. 먼치킨에는 다양한 뜻이 있지만, 국내 판타지물에서는 ‘압도적으로 강한 캐릭터’를 뜻한다. 주인공은 등장할 때부터 이미 회빙환으로 습득한 정보로 완성형에 가까운데 압도적으로 강하기까지 하다.
윗세대 인기 웹소설로 꼽히는 <나혼자만 레벨업>에서 주인공은 근육 하나 제대로 못 쓰는 나약한 하급 헌터 지위에서 시작한다. 게임을 할 때처럼 주인공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희열을 얻는 독자가 많았기에 그때는 그런 주인공을 앞세워도 유행을 탈 수 있었다.
<전독시>가 나오던 시기는 그때와 달라졌다. 독자들은 나약한 주인공이 어느 정도 성장하기까지 그 짧은 사이도 참지 못했다. 독자 구미에 플롯을 맞추기 위해서는 주인공이 애초에 강해야 했고, 계속해서 그보다 더 강해져야 했다. 독자들은 주인공이 주저하거나 위험에 처하는 순간도 견디지 못할 정도에 이르렀다.
이들은 나약한 주인공이 고군분투하는 콘텐츠가 업로드되자마자 댓글을 달았다. ‘고구마’라고.
영화 <전독시>야말로 고구마 백만개를 먹는 듯한 목 막히는 설정으로 이뤄졌다. 주인공은 극 초반 퇴근길에 사람들이 편하게 지나갈 수 있도록 출입문을 오래도록 잡아둔다.
사이다
고구마
김병우 감독은 “착하다기보다는 어디서라도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하고 보편적인 ‘독자’”를 구상했다고 하던데, 여기서부터 잘못됐다. <전독시> 웹소설 팬이라면 그 누구에게도 절대 양보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이득만 챙기는 주인공을 갈망한다. 그 장면은 역시 고구마다.
조연들도 마찬가지. 주인공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 성장해 나가는 동료들, 그리고 이들을 연민으로 돕는 대신 격려하는 독자가 서로 신뢰를 쌓고 ‘김독자 컴퍼니’를 이루는 소설 속 과정은 온데간데없다. 영화에는 나약하고 평범한 사람들이 서로 의지하는 이야기만 남았다.
인물 설정만 목 막히는 게 아니다. 플롯 구성도 매한가지다. 방대한 시리즈물 중에서도 고증된 인기를 자랑하는 <스타워즈>는 에피소드별로 매우 분명한 결론을 향해 줄거리가 달리게 하고, 일련의 사건들 역시 잘 짜인 판 안에서 귀결된다.
영화 <전독시>는 매회 카타르시스와 다음 회차에 대한 궁금증을 담는 웹소설 특유의 설정을 버리지 못했다. 대신 이어지지 않는 사건 속에 인물들을 밀어 넣었다. 이렇게 해서는 세계관을 제대로 설명하지도, 고유한 영화 줄거리를 갖지도 못하게 됐다.
이쯤 되니 누구 하나 이 영화를 선뜻 반기지 못한다. 원작 웹소설을 읽지 않은 관람객은 지루한 내레이션으로 처리된 세계관 설명에 친절이 빠져 있다고 답답해한다. ‘성좌’나 ‘도깨비’나 ‘코인’은 다 뭔 말인가, 싶었을 테다. 웹소설을 읽은 관람객은 꼭 잃고 싶지 않은 부분에서만 고증을 빼먹거나 어설프게 처리해 버렸다며 화를 냈을 테다.
1편 안에서만이라도 끝장을 본 맥락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평범하고 보편적인 사람들이 세상을 구한다는 계몽은, 요즘에 와서는 너무 고루하다. 노력해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갑갑한 현실에서 도피한 사람들이 잠깐 스며드는 롤 플레잉 게임을 김 감독은 못 알아봤다.
영화 한 편을 관통하는 감정이 차라리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처럼 ‘통쾌함’이었다면 어땠을까.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남성향 웹소설을 영상으로 2차 가공한 작품이 나오는 것은 드문 일이 됐다. <김비서가 왜 그럴까> <사내 맞선> <폭군의 셰프> 등 최근 흥행작은 모두 <유미의 세포들>처럼 로맨스를 줄거리로 삼는 여성향 소설과 웹툰을 IP로 활용했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고구마만 백만개 먹이는 플롯 전개
청량한 사이다 같은 승리 장면 부족
영화와는 달리 드라마 특성상 10부작 이상 긴 호흡으로 감정선을 끌고 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고증이 필요한 설정도 그다지 많지 않기에 각색하기에도 어려움이 덜하다. 웹툰이 원작이라면, 특유한 설정 신에서만 상상력을 발휘해 CG를 덧입히면 그만이다. 비용 절감에도 탁월하겠다. 어쩌면 드라마여서 가능한 부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간 작품으로는 영화 <좀비딸>을 들 수 있다. 웹툰 <좀비가 되어버린 나의 딸>이 원작이다. 관객 수가 무려 <전독시> 다섯배다. 좀비, 말하는 고양이 등 허구 설정은 조금 어설프게 연출하거나 생략하는 데 무리가 없었다. 추구하는 장르가 드라마이자 코믹인 덕분이었다.
그렇다면 남성향 웹소설은 그저 2차 콘텐츠로 생산하기 어려운 IP에서 그치는 걸까. 이쯤 되니 조만간 넷플릭스에서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힌 <나혼자만 레벨업>이 궁금해진다. 회차별로 강한 완결성을 갖는 웹소설 고유 플롯은 회차별로 연속성을 이어가는 강한 흡입력으로 연출될 수 있을까. 영상미를 덜 운운하면서도 마음 편하게 볼 수 있을까.
<전독시>보다는 훨씬 세계관이나 설정이 간결하기에 웹소설이나 웹툰을 읽지 않은 이들이라도 접근하기 쉬울 테다.
<이끼>가 개봉한 지 15년이 지났다. <신과 함께-인과 연>이 개봉한 이후로는 7년이 흘렀다. 웹툰과 웹소설 콘텐츠 재생산은 상당수 이뤄졌다. 이제 영화판과 OTT 시장은 웹툰과 웹소설 등으로 이미 검증이 이뤄진 작품을 다루고 안정감을 느끼는 데 익숙하다. 어쩌면 <전독시>는 그런 차원에서 흥행이 보증된 작품이라 단정한 채 제작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팀 버튼은 원작 소설을 토대로 영화를 만드는 데 탁월한 감각을 보여준다. 소설 <큰 물고기>에서 태어난 영화 <빅 피쉬>. 아동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 앨리스>를 모태로 삼고 상영한 동명 영화 시리즈. <슬리피 할로우>와 <찰리와 초콜릿 공장> 등 버튼이 손을 갖다 대기만 하면 원작만큼 좋은, 혹은 원작을 넘어서는 영화가 탄생하곤 했다.
버튼은 영화와 글 사이에서 방황하지 않는다. 상황이나 설정에 덧붙여진 설명과 자잘한 에피소드는 과감하게 쳐낸다. 남은 공간에는 상상보다 밝거나 어두운 색상, 차갑거나 따듯한 감각을 덧입힌다. 소설을 읽으며 상상했던 시간과 공간이 상상보다 선명하게 흐르도록 영화를 구성한다.
버튼이 소화하는 텍스트는 새로운 영상으로 거듭난다. 원작과 다른 결말을 그리거나 새로운 설정을 덧입히는 데도 거침이 없다. 이 과감한 제작 방식을 지탱하는 기둥은 그만이 할 수 있는 기존 콘텐츠에 대한 ‘완전한 소화’다. 버튼이 원작자가 글을 쓸 때보다 더 많이 고민했던 흔적이 영상에 고스란히 남는다.
이게 바로 원작보다 버튼이 만든 영화를 더 좋아하는 팬이 존재하는 이유다.
글과 영상
사이 메꾸기
웹툰과 웹소설을 영상화한 2차 콘텐츠 제작 방식은 아직도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상태 창이 뜨는 게임 설정과 ‘땅강아쥐’ ‘어룡’ 같은 괴물이 등장하는 판타지를 표현하는 방식은 시도가 늘어감에 따라 지속 발전하고 성장할 것이다. 그 틈새를 줄여가기까지 원작 IP를 향한 진지한 고민과 완전한 소화가 우선시돼야 할 것은 물론이다.
<younm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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