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총파업이 나흘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정부가 17일 삼성전자의 파업 위기와 관련해 마지막 수단으로 여겨지던 '긴급조정권' 발동 가능성을 공식 언급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도 대국민 사과에 나선 가운데 삼성전자 파업 사태를 둘러싼 정부의 대응이 단순 노사 갈등 중재를 넘어 국가 산업안보와 경제위기 관리 차원의 대응 국면으로 전환되며 18일로 예정된 노사 사후협상이 최종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재용 회장은 총파업 위기로 번진 노사 갈등 수습을 위해 해외 출장 일정을 조정해 귀국한 뒤 공개 사과했다. 이후 노조 측 요구를 받아들여 사측 대표교섭위원을 전격 교체하는 등 협상 재개 수순에 들어가며 파업을 3일 앞둔 18일 협상에서 양측이 극적타결을 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김민석 총리, 직접 대국민 담화문 발표
삼성전자 파업 사태…국가경제·산업안보 문제로 인식
金 "긴급조정 포함 모든 대응 수단 강구하지 않을 수 없어"
정부가 삼성전자 파업 위기와 관련해 마지막 수단으로 언급됐던 '긴급조정권' 발동 가능성을 공식 거론했다. 그간 긴급조정권에 대해 "검토할 단계가 아니다"라는 원론적 입장을 유지해 왔던 것과 달리 파업이 임박해지자 강한 메시지를 낸 것으로 보인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직접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삼성전자 파업으로 국민 경제에 막대한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정부는 국민 경제 보호를 위해 긴급조정을 포함한 가능한 모든 대응 수단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김 총리는 "동시에 분명히 말씀드린다. 오는 18일 교섭은 파업을 막을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라며 "노사 모두 이 자리의 무게를 결코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현재 정부는 작금의 상황을 매우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 파업이라는 극단적 선택보다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 이 위기를 함께 해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총리가 긴급조정권을 직접 거론한 것은 파업에 따른 막대한 경제적 손실과 업계 파장을 막기 위해 노사가 18일 교섭에서는 반드시 결론을 내라는 압박을 가한 것으로 해석된다.
삼성전자 파업이 현실화할 경우 경제 전반에 미칠 파장을 우려한다는 뜻도 전했다.
김 총리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은 단 하루만 정지돼도 최대 1조원에 달하는 직접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반도체 생산라인 특성상 잠시의 멈춤이 수개월의 생산 차질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글로벌 AI 반도체 경쟁에서 대한민국이 어렵게 확보한 전략적 우위를 경쟁국에 내줄 수 있다. 이번 파업이 산업 경쟁력과 국가 경제 전반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호소했다.
총파업 예정일은 오는 21일로 삼성전자 노사는 18일 중앙노동위원회 막판 사후조정에 나선다. 김 총리는 이에 대해 환영의 뜻을 밝히며 "18일 교섭은 파업을 막을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라고 강조했다.
담화문 발표 현장에는 김영훈 장관, 김정관 장관이 함께 배석했으며, 정부는 이날 오전 제2차 긴급 관계장관회의도 연 것으로 알려졌다. 관계 부처인 노동부, 산업부 장관이 회의에 참석해 삼성전자 파업이 경제·산업 전반에 미칠 영향을 점검하고 대응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긴급조정권은 노조 쟁의행위가 국민의 일상을 위태롭게 하거나 국민 경제를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을 때 노동부 장관이 발동할 수 있는 조정 절차다.
긴급조정권이 발동되면 30일간 파업이 금지되고 중노위가 조정을 진행한다. 여기에서도 합의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중노위가 강제로 중재안을 만들 수 있다.
삼성전자 노조는 이미 지난 3월 중노위 조정 결렬로 쟁의행위권을 확보한 상태로, 긴급조정권을 발동하면 정부가 노조의 합법적인 쟁의행위를 강제로 멈추게 하는 셈이다.
노동장관, 주말 삼성전자 노조·경영진 면담…중재 역할 나서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삼성전자 노조에 이어 경영진과도 직접 만나 노사 대화 재개를 촉구했다. 총파업 가능성이 커지는 가운데 정부가 노사 양측을 상대로 전방위 중재에 나선 것이다.
김 장관은 15일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내 노조 사무실을 찾아 삼성전자 최대 노조인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 최승호 노조위원장과 만났다. 이 자리에서 김 장관과 최 위원장은 총파업 관련 현안과 노사 협상 상황 등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 장관은 다음 날인 16일엔 삼성전자 경영진을 만나 한 시간 정도 면담을 진행하며 주말 이틀 동안 노조와 경영진을 차례로 만나 양측 간 협상을 적극적으로 중재했다.
노동부는 16일 공지를 통해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오늘 삼성전자 경영진을 만나 한 시간 정도 면담했다"고 밝혔다.
김 장관은 면담에서 전날 초기업노조와의 면담 내용과 정부 입장을 설명하고, 사측에도 문제 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대화 노력을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용 회장, 파업 위기에 대국민 사과 "비바람 내가 맞겠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16일 총파업 위기에 놓인 삼성전자 노사 갈등과 관련해 국민과 고객들에게 공개 사과했다. 삼성전자 사장단이 전날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데 이어 이 회장도 직접 고개를 숙였다.
이 회장은 해외 일정을 조정해 귀국한 뒤 첫 공개 대국민 사과와 함께 대화를 통한 해법을 당부했다.
그는 일본 출장 일정을 마치고 서울 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를 통해 귀국한 직후 취재진과 만나 "저희 회사 내부 문제로 불안과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전 세계 고객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항상 삼성을 응원해주시고 사랑해주시고 채찍질해주시는 국민 여러분께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라며 노조를 향해 "노조 여러분, 삼성 가족 여러분 우리는 한 몸이고 한 가족이다. 지금은 지혜롭게 힘을 모아 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매서운 비바람은 제가 맞고 다 제 탓으로 돌리겠다. 우리 한번 삼성인임을 자부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해보자"며 "저희 문제 해결을 위해 애써주시는 정부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걱정을 끼쳐드려 죄송하다"고 거듭 사과했다.
이 회장이 총파업 위기를 둘러싼 삼성전자 노사 갈등과 관련해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노조 측 요구 받아들여 사측 교섭위원 전격 교체 후 협상
노조는 15일 김 장관과의 면담에서 중단된 교섭 재개를 위해 사측 대표교섭위원인 김형로 부사장 교체를 요청했고, 이에 사측은 교섭위원을 전격 교체하며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노조는 김 부사장이 중노위 교섭 과정에서 '삼성전자 올해 영업이익이 200조원'이라고 언급한 점 등을 문제 삼으며 반도체 사업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는 주장을 펼친 것으로 알려졌다.
최 위원장을 16일 공지를 통해 "사측 대표교섭위원이 (김형로 부사장에서) 여명구 DS피플팀장으로 교체됐다"고 밝혔다.
그는 "안건은 아직 다 준비되지 않았다고 연락받았다. 여명구 팀장이 내려오고 있고, 미팅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노조는 김 부사장이 교섭 과정 이해를 위해 발언 없이 조정에 참여하게 해달라는 요청도 수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최 위원장은 이재용 회장의 대국민 사과와 관련해선 "직원들이 회사와의 신뢰가 깨져 조합에 가입했다. 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의 경우 85% 가입으로 사실상 모두 노조원이고 직원"이라며 "신뢰 회복 시간이 걸릴 수 있겠지만 함께 갈 수 있도록 이번 교섭부터 노력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노사는 노조 측 요구대로 사측 대표교섭위원을 교체한 뒤 18일 중노위에서 협상 재개에 나설 예정이다.
노사 18일 사후조정 분수령…노조원 이탈에 '파업 동력' 시들
한편 총파업에 대한 비판적 여론과 노노 갈등이 수면 위로 부상하면서 노조원들의 노동조합 탈퇴 분위기도 이어지고 있어 총파업 동력이 약화된 것 아니냐는 평가도 있다.
임금 교섭을 진행하는 공동교섭본부는 삼성전자 단일 최대 노조인 초기업노조와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 동행노조 등 3개 단체였지만 비반도체 분야인 디바이스경험(DX) 부문 기반의 동행노조는 공동투쟁본부에서 탈퇴한 상황이다.
공동교섭단은 반도체(DS) 부문에 대해 영업이익의 15%를 상한 없이 성과급으로 지급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 과정에서 비반도체인 DX 부문이 배제됐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에 동행노조는 초기업노조를 상대로 교섭 정보 공유 및 차별 대우 금지 등 공정대표의무 준수를 촉구하는 공문을 전하기도 했으며 전삼노 역시 최승호 초기업노조 위원장에게 '조합원 의견 수렴 활동에 대한 교섭 배제 협박성 발언 유감 표명 및 사과 요청'이라는 제목의 공문을 보낸 바 있다.
초기업노조는 삼성전자 노조 중 최대 단일 노조로, 삼성전자 직원 약 13만 명의 절반 이상이 가입해 있다.
초기업노조 조합원 수는 17일 오전 8시를 기준으로 7만 1625명이다. 지난달 23일 총파업 투쟁결의대회 당시 한때 7만 6000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4375명이 이탈했다.
통상적으로 파업이 가까워질수록 결집이 이뤄진다는 점에서 삼성전자 노조의 경우 이탈이 잇따르고 있으며, 동행노조의 이탈과 조합원 탈퇴, 노조 간 분쟁 등이 맞물리면서 공동교섭단의 파업 의지와 명분이 약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노조는 오는 21일부터 다음달 7일까지 18일간 총파업을 벌일 예정이다. 총파업이 현실화할 경우 반도체 라인 가동 차질 등에 따른 직간접적 손실 규모가 최대 100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노조는 반도체 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 재원으로 배분하고 성과급 상한 폐지 및 제도화를 요구하고 있으며 사측은 기존 성과급 제도를 유지하면서 추가 특별보상 제도를 신설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외신 "삼성전자 '연봉의 607%' 메모리 성과급 제안했었다"
로이터통신은 16일 노조 측이 공개했던 중노위와의 비공개 협상 녹취록을 인용해 삼성전자가 올해 3월 메모리 사업부 직원들에게 연봉의 607% 수준의 성과급을 제시했다고 보도했다. 반면 적자 사업부인 파운드리와 시스템LSI에는 50~100% 성과급을 책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로이터에 따르면 최승호 노조위원장은 사측에 "메모리 사업부는 성과급 5억 원을 받는데 파운드리 사업부는 8000만 원을 받는다면 그 직원들이 계속 일할 동기가 있겠느냐"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DS부문은 데이터 저장장치를 주력으로 삼고 있는 '메모리', 설계·위탁생산 등 시스템 반도체를 맡고 있는 '시스템LSI'와 '파운드리' 등 3개 사업부로 구성돼 있다.
메모리 사업부는 최근 인공지능(AI) 수요 증대로 막대한 이익을 내고 있지만 시스템 반도체 부문은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다.
노조는 사측의 성과급 제시안에 대해 '2030 시스템 반도체 1위'라는 회사 비전을 흔들고, 메모리 부분이나 타사로의 직원 이탈을 부추길 것이라고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는 사측의 전 대표교섭위원이었던 김형로 부사장이 "시스템 반도체 사업부는 수조 원의 손실을 기록했고, 솔직히 우리 회사가 아니었다면 그들은 아마도 파산했거나 문을 닫았을 것"이라며 "성과급 지급을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겠느냐"고 발언했다고 전했다.
[다음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입장문 전문]
저희 회사 내부 문제로 불안과 심려를 끼쳐드린 점 전 세계 고객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그리고 항상 저희 삼성을 응원해 주시고 사랑해 주시고 또 채찍질 해 주시는 우리 국민 여러분께 머리 숙여 사죄드립니다.
노동조합 여러분, 삼성 가족 여러분 우리는 한 몸 한 가족입니다. 지금은 지혜롭게 힘을 모아 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매서운 비바람은 제가 맞고 다 제 탓으로 돌리겠습니다. 우리 한번 삼성인임을 자부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해 봅시다.
끝으로 저희 문제 해결을 위해 애써주고 계시는 정부와 관계자 여러분께 고맙다는 말씀드립니다.
걱정을 끼쳐드려 죄송하다는 말씀드립니다. 고객 여러분들과 국민 여러분들께 다시 한 번 머리 숙여 사과 올립니다.
[폴리뉴스 김성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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