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수도', '노동자의 도시', '보수 텃밭'. 울산에는 서로 모순처럼 보이는 세 개의 별명이 공존한다. 현대자동차와 HD현대중공업이 뿌리내린 공업도시이자, 민주노총 금속노조를 중심으로 한 노동조합 조직력이 선거판에 영향을 미치는 지역이면서도 보수 강세가 오랫동안 이어져 온 곳이기도 하다.
울산은 1998년 광역시 출범 이후 첫 시장 선거에서 송철호 후보가 약 15만 표(39.44%)를 얻었지만, 현직 시장이던 심완구 후보(약 16만 표·42.74%)에게 약 1만 표 차로 석패했다. 노무현·문재인 전 대통령과 함께 인권변호사로 활동했던 이력에도 불구하고 고배를 마신 것이다. 이후 울산은 2014년까지 단 한 번도 보수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이 흐름을 처음 바꾼 것은 2018년 지방선거였다. 송철호 후보가 당시 현직 울산시장이던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을 꺾으며, 울산에서 처음으로 진보 진영이 승리했다.
이처럼 선거 셈법이 복잡다단하게 작동하는 울산에서 15일 더불어민주당과 진보당이 후보 단일화에 합의했다. 6·3 지방선거를 19일 앞둔 시점이다.
다단한 울산시장 선거 지형…진보 진영, 남은 건 공단권 후보냐 도심권 후보냐
울산은 동구·북구·중구·남구·울주군 등 5개 구·군으로 나뉜다. HD현대중공업 조선소가 위치한 동구와 현대자동차 공장 지대인 북구는 노동자 표심과 민주노총 조직력이 강해 진보 벨트로 분류된다. 반면 원도심인 중구·남구와 도농복합지역인 울주군은 보수 성향이 강하다.
이 같은 정치 지형은 최근 선거 결과에서도 확인된다. 지난해 5월 치러진 21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동구(48.0% 대 42.1%), 북구(48.6% 대 40.6%)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를 앞섰다. 반면 남구(38.9% 대 50.9%), 중구(39.9% 대 50.9%), 울주군(40.7% 대 49.9%)에서는 김문수 후보가 우세했다.
2022년 20대 대선에서도 유사한 구도였다. 당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중구(57.3%)·남구(58.4%)·울주군(56.7%)에서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크게 앞섰다. 반면 북구에서는 이재명 후보가 75표 차이로 승리했고, 동구에서도 불과 2.6%포인트(2,559표) 차로 패했다.
이 같은 구도 속에서 특히 동구의 선거 지형도 변화해왔다. HD현대중공업 창업주 정주영의 아들인 정몽준 HD현대 총수가 13대부터 17대 국회까지 이곳에서 내리 5선을 했고, 그의 보좌관이었던 안효대 울산시 경제부시장이 한나라당·새누리당 소속 18·19대 국회의원으로 잇달아 당선됐다. 현대가의 영향력이 강했던 동구는 2016년, 동구청장 출신 김종훈 후보가 안효대 당시 후보를 꺾으며 20대 국회에 입성하면서 변화를 맞았다. 이후 동구는 영남권 진보 정당의 거점 중 하나로 자리 잡았고, 2024년 총선에서는 더불어민주당 김태선 의원이 당선되는 성과로 이어졌다.
이번 단일화의 당사자인 진보당 김종훈 후보는 울산 내 공단권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울산 동구청장(6대·9대)과 20대 국회의원(울산 동구·민중당)을 지낸 그는 민주노총 조직력을 기반으로 동구에서 지역 장악력을 구축해왔다. 2022년 제8회 지방선거에서 진보 진영 전반이 국민의힘에 참패하는 와중에도 김종훈 후보는 천기옥 국민의힘 후보를 꺾고 동구청장에 당선됐다. 진보 3당 후보 중 유일하게 기초단체장에 당선된 사례였다.
또 다른 당사자인 민주당 김상욱 후보는 울산 내 도심권을 대표한다. 과거 국민의힘 소속으로 울산 남구갑에서 당선된 그는 12·3 내란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다 탈당해 2025년 5월 민주당에 입당했다. 역대 총선에서 17·18대 최병국(한나라당), 19·20·21대 이채익(새누리당)에 이어 22대 김상욱(국민의힘)까지, 남구갑에서는 단 한 번도 진보 정당 당선자가 배출된 적이 없다. 결국 이번 민주당과 진보당 간 단일화 경선은 공단권 조직력을 가진 후보냐, 도심권 보수 확장성을 가진 후보냐의 대결로 압축된다.
산술적으로는 단일화 후 범진보 우세…변수는 보수 진영 단일화
민주당과 진보당은 울산시장 후보를 100% 여론조사 방식의 경선을 통해 선출하기로 합의했다. 여론조사공정이 지난 4~5일 울산 거주 성인 80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KBS울산방송·울산매일신문 의뢰, 무선전화 ARS 80%·유선 ARS 20%)에서 다자 대결 기준 김상욱 후보는 32.9%, 김종훈 후보는 14.2%였다. 여론조사로 경선을 치르는 만큼 이 격차 그대로 김상욱 후보가 단일후보가 될 가능성이 높다.
단일화 효과는 수치로 확인된다. 같은 조사에서 다자 대결 결과는 김두겸 37.1%, 김상욱 32.9%, 김종훈 14.2%, 박맹우 8.5% 순이었다. 진보 진영 후보들의 지지율을 합산하면 김두겸 후보를 10%포인트 이상 웃돈다. 반면 같은 조사에서 김상욱과 김두겸의 양자 대결은 40.0% 대 41.8%로 오차범위 내 박빙이었다. 진보 진영이 단일화할 경우 경쟁력이 크게 높아진다는 점을 보여주는 수치다.
이번 민주당-진보당 선거연대에서 민주당은 울산 동구청장 후보를 진보당 박문옥 후보에게 양보했고, 기초단체장·광역의원 선거구 일부도 내줬다. 실리를 양보하는 대신 광역단체장 경선권을 확보한 것이다. 양당은 조례 제정을 통한 시민 참여·협치 제도화와 공동정책 마련도 약속했다. 서로 내줄 것을 내준 만큼, 경선에서 진 쪽이 이탈할 이유도 줄어들었다. 양당의 단일화가 힘을 받는 이유다.
그러나 변수는 여전히 남아 있다. 진보 진영이 단일화를 한 이상 국민의힘에서도 단일화를 안 하긴 어려운 상황이 됐다. 국민의힘 공천에서 배제되면서 무소속으로 선거에 뛰어든 박맹우 후보가 김두겸 후보와 단일화할 경우 양 진영은 다시 접전 구도를 이루게 되고, 승부는 다시 원점이 된다.
이 기사에 인용한 여론조사 결과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폴리뉴스 김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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