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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쿠레슈티(루마니아)=이데일리 김관용 기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의 안보 지형이 급변하고 있다. 특히 한때 유럽의 변방으로 여겨졌던 루마니아 등 흑해(Black Sea) 연안 국가들은 이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부전선의 핵심 요충지로 떠올랐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과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흑해는 더 이상 지역 분쟁의 공간이 아니라 NATO와 러시아가 직접 맞서는 전략 전선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안보 지형 변화 속에서 K방산의 존재감도 빠르게 커지고 있어 주목된다.
‘흑해 방위 및 항공우주(BSDA) 2026’ 전시회가 지난 13~15일(현지시간)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로마에로 전시장에서 열렸다. BSDA는 루마니아 국방부 후원 아래 개최되는 동유럽 대표 방산전시회다. 10회째를 맞은 올해 행사에는 36개국 650여개 방산업체가 참가했다.
◇NATO 남동부 방어 핵심 축 떠올라
최근 루마니아의 전략적 가치는 급부상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댄 루마니아는 흑해와 도나우강 수로를 기반으로 한 물류·군사 거점이자 NATO 남동부 방어의 핵심 축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흑해를 통해 우크라이나 전선과 직접 연결되는 NATO 후방 거점이라는 점에서 동유럽 군수 허브 역할도 주목받고 있다. 미국 역시 루마니아 미하일 코갈니체아누 공군기지를 유럽 최대 규모 NATO 거점 가운데 하나로 확장하고 있다.
루마니아는 최근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2.5% 수준까지 확대하며 대규모 군 현대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냉전 시기 운용하던 소련제 무기체계를 서방형 체계로 전환하는 작업도 본격화되고 있다. 전차와 자주포, 장갑차, 방공체계, 해군 전력, 무인체계 등 거의 전 영역에서 신규 사업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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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한국 방산업체들 역시 루마니아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가격 경쟁력과 빠른 납기, 기술 이전 및 현지화 경험 등 K방산의 강점이 루마니아의 전력 수요와 맞아떨어진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러시아 위협에 대응해 단기간 내 전력 증강이 필요한 동유럽 국가들 입장에서는 한국의 신속한 생산 능력이 강점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이번 BSDA 2026에 국내 대기업과 중견·중소기업 등 총 19개 업체가 참가했다. 대·중소기업이 함께 해외 방산전시회에 참가한 첫 사례다. 무기체계뿐 아니라 전력지원체계와 핵심 부품·소재까지 한국 방산 생태계 전반의 경쟁력을 집약적으로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단순 개별 품목 판매를 넘어 통합 솔루션 형태의 ‘패키지형 수출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도 특징이다.
◇방산업계, ‘제2의 폴란드’ 기대
전시장에서는 K9 자주포와 K10 탄약운반장갑차, K2 전차, 타이곤 차륜형 장갑차, 천궁-II 방공체계, 무인지상차량(UGV), 안티드론 체계 등이 대거 소개됐다. 특히 전시회 최고 등급 후원사로 참가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Built with Romania, Ready for NATO’라는 문구를 전면에 내세우며 현지화 전략을 강조했다. 단순 수출을 넘어 현지 생산과 기술 이전, 유지·보수(MRO) 체계 구축까지 포함하는 방식이다. 폴란드 시장에서 입증된 성공 경험을 루마니아로 확장하려는 전략이다.
앞서 폴란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K2 전차와 K9 자주포, FA-50 경공격기, 천무 다연장로켓 등을 대거 도입하며 K방산 최대 고객국으로 떠올랐다. 미국과 독일 등 기존 방산 강국들이 공급망 문제와 생산 지연으로 제때 물량을 맞추지 못하는 사이, 한국은 빠른 납기와 대량 생산 능력, 기술 이전 조건 등을 앞세워 시장을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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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 역시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이미 국산 휴대용 대공미사일 ‘신궁’과 K9 자주포 도입을 결정했다. K2 전차도 차세대 전차 유력 후보군 가운데 하나로 검토되고 있다. 이에 따라 업계는 루마니아가 향후 ‘제2의 폴란드’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하고 있다.
실제 행사 기간인 13일(현지시간) 한국방위산업진흥회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공동 주최한 ‘한-루 방산협력의 밤’ 행사가 이를 증명한다. 행사에는 루마니아 전 국방부 장관과 방위산업진흥회장 등 양국 정부 및 군 주요 인사, 산업계 관계자들이 참석해 기술 협력과 공동 연구개발(R&D), 현지화 생산, 공급망 연계 방안 등을 논의했다.
행사장을 찾은 김일동 방위사업청 차장은 “대한민국은 위기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방산 체계를 구축하고 있고 이를 루마니아와 함께 나누고자 한다”면서 “양국 기업들이 자유롭게 만나 협력 모델을 발굴할 수 있도록 한국 정부 역시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했다.
◇유럽 장벽 여전…정부의 전략적 지원 필요
다만 사업 환경이 녹록지 않은 게 사실이다. 최근 루마니아 정국은 집권 연정 붕괴와 총리 사퇴, 극우 세력 부상, 재정 불안 우려 등이 겹치며 정치적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다. 이에 따라 대규모 방위사업 역시 향후 정권 변화나 예산 조정, 사업 우선순위 변화 등에 따라 일정이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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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유럽 시장의 벽은 여전히 높다는 지적이다. 독일과 프랑스 등 기존 유럽 방산 강국들의 영향력이 강하게 작동하고 있어 단순 성능 경쟁만으로는 시장 진입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 정부간 협의로 루마니아 차세대 보병전투장갑차(IFV) 사업 역시 독일 라인메탈 계열 장갑차가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전시장에서 만난 한 국내 방산업계 관계자는 “폴란드 이후 한국 무기체계에 대한 신뢰는 크게 높아졌지만 유럽 시장은 결국 정치·외교·산업 네트워크 경쟁”이라며 “기업 혼자 뛰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정부 차원의 전략적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럽 주요 방산 사업은 단순 무기 성능 경쟁을 넘어 정상외교와 군사협력, 금융 지원, 산업 협력 패키지가 결합된 ‘국가 총력전’ 성격이 강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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