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정 속 웃고 있는 남편·동생…"민주주의를 위한 희생"
5·18 46주년 하루 앞두고 유가족·추모객 발걸음 이어져
(광주=연합뉴스) 김혜인 기자 = "그리운 나의 아저씨…. 잊고 싶어도 잊을 수가 없네요."
5·18 민주화운동 46주년 기념일을 하루 앞둔 17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따가운 햇살이 내려앉은 묘역에는 희생자와 민주 유공자를 추모하려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5·18 유공자 고(故) 김갑진 씨의 아내 정정희(72) 씨도 소복 차림으로 남편의 묘역을 찾았다.
정씨는 빛바랜 영정에서 웃고 있는 30대 시절의 남편을 천천히 바라보고는 고개를 떨군 채 눈을 감았다.
정씨는 "세월이 이렇게 흘렀는데도 그날 생각만 하면 아직도 가슴이 미어진다"고 말했다.
광주고속 버스 운전기사였던 김씨는 1980년 5월 20일 시민들과 함께 차량 시위에 참여했다.
버스를 몰고 옛 전남도청 방향으로 향하던 그는 계엄군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한 뒤 상무대로 끌려갔다.
정씨는 "상무대에서 나온 우리 아저씨 모습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며 "머리는 다 깨져 있었고 온몸이 만신창이였다"고 떠올렸다.
이어 "병원에 있는 동안에도 계속 폭도라고, 간첩이라고 감시받았다"며 "그 시절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너무 마음이 아파서 잊어보려고도 했지만 잊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씨의 남편은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다 1986년, 3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정씨는 "46년이 지나도 우리는 그때 그일을 잊을 수가 없다"며 "남편도, 희생된 사람들도 제대로 기억됐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박관현 열사의 누나 박행순(77)씨도 동생을 찾았다.
박씨는 마른 건어물을 올려두고 한동안 묘비 곁을 지켰다.
박씨는 "동생은 늘 웃고 다니던 사람이었다"며 "시위를 막는 경찰들에게조차 웃으며 이야기할 정도로 사람을 참 따뜻하게 대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그 웃는 모습이 5·18민주화운동 기록관 사진에도 남아 있다"며 "아직도 동생 얼굴을 떠올리면 그 환한 웃음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고 말했다.
1980년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이었던 박관현 열사는 5·18 이후 수배 생활 끝에 체포돼 수감됐고, 민주화와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단식 투쟁을 벌이다 1982년 옥중에서 숨졌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추모객들도 5월 영령을 기렸다.
경기 이천에서 아내와 함께 묘지를 찾은 이석기(53) 씨는 "광주에 일정이 있어 내려와 어제 금남로 행사에 참석한 뒤 꼭 민주 묘지에 들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광주에 올 일이 있을 때마다 이곳을 찾는데, 항상 마음이 무겁고 아프다"며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민주주의가 얼마나 큰 희생 위에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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