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빈 더봄] 블랙은 클래식, 스탠다드는 무음악···어느 유치원의 출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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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빈 더봄] 블랙은 클래식, 스탠다드는 무음악···어느 유치원의 출입문

여성경제신문 2026-05-17 10:00:00 신고

유치원에는 세 종류의 출입구가 있었다.

블랙 회원은 자동문을 통과했다. 센서가 카드를 인식하면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왔다. 플래티넘 회원은 일반 유리문을 밀고 지나가야 했다. 음악은 없었다. 스탠다드 회원은 건물 뒤편 출입구를 이용해야 했다.

효진은 플래티넘 카드를 목에 걸고 음악 없는 유리문을 통과해 3층 라운지로 올라갔다. 라운지에 있는 모니터 속에서는 보미가 트레드밀 위를 걷고 있었다. 전담 교사가 옆에서 기록지에 뭔가를 적고 있었다.

“보미 어머님, 오늘 보미 컨디션 최상이에요. 심박수 안정적이고 식욕도 왕성하고요.”

실장이 라운지로 들어서며 말했다.

“아, 그리고 이번 주 '프로필 촬영 이벤트' 참여하실 거죠? 프로필 사진 10장에 액자 제작까지 30만원인데 지금 예약하시면 20% 할인이에요.”

효진이 무언가 물어보려는데 라운지 저편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블랙 회원 몇 명이 앨범을 보고 있었다. 실장이 효진의 시선을 느끼고 얼른 한 마디 덧붙였다.

“저렇게 앨범으로도 만들어 드려요.”

효진은 질문을 삼키고 신청서에 서명했다. 복도 끝 스탠다드 회원 대기실에서 누군가 항의하는 소리가 들렸다.

“CCTV가 왜 또 끊긴 거예요? 지난주에도 그랬잖아요!”

“죄송합니다. 장비 노후화로 인해 업그레이드 상품으로 변경하시면···.”

효진은 고개를 돌렸다. 얼마 전 김 대리가 사표를 쓰며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제 월급으로는 제대로 된 어린이집을 보낼 수가 없어서요. 선생님 한 명이 애들 20명을 봐요. 그러니까 애가 다쳐도 몇 시간 뒤에나 연락이 오는 거죠.”

김 대리는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를 표정이었다.

효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보미 유치원비도 자기 월급의 3분의 1이었다.

효진은 퇴근길에 편의점에 들러 보미 간식을 샀다. 집에 들어서자 보미가 꼬리를 흔들며 달려왔다. 효진은 보미를 안아 올렸다. 따뜻했다.

저녁 뉴스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이 나왔다.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는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효진은 리모컨을 들어 TV를 껐다.

휴대폰이 울렸다. 엄마였다. 한참 울리다 끊기더니 다시 울렸다.

“효진아, 아빠가 넘어지셨어. 병원비가···.”

“얼마 보내면 돼요?”

“30만원만 어떻게 해 줘.”

효진은 송금 앱을 켰다. 잔액을 확인하고는 손가락을 멈췄다. 내일 보미 사진 촬영비 24만원이 빠져나간다. 지금 30만원을 보내면 이번 달 생활비가 모자란다.

“엄마 미안한데 모레 보낼게요.”

“효진아, 지금 필요하다니까!”

엄마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효진은 입술을 깨물었다.

“모레 보낼게. 꼭. 미안해.”

휴대폰을 끊는 손이 떨렸다. 보미가 그녀의 손을 핥았다. 따뜻했다.

지이잉.

그때 유치원에서 문자가 왔다.

  챗GPT로 만든 이미지입니다.
  챗GPT로 만든 이미지입니다.

[보미 어머님 안녕하세요! 오늘 보미는 유치원에서 정말 신나게 하루를 보냈어요! 오자마자 친구들과 마구마구 뛰어다녔답니다! 그중에서도 미노랑 코코와 특히 잘 어울려 놀았어요! 밝은 표정으로 활동에 잘 참여해 주었답니다!]

휴대폰 화면 상단에 엄마의 부재중 전화 알림이 5개 떠 있었다. 효진은 보미 유치원에서 온 알림장을 끝까지 읽은 후 엄마의 부재중 전화 알림을 쓸어내렸다. 유치원에서 프로그램 신청 문자가 왔다.

△아로마 테라피(월 15만원)
△수영 클래스(월 25만원)
△사회성 발달 그룹 케어(월 20만원)

효진의 손가락은 휴대폰 위에 떠 있었다.

트레드밀=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벨트 위를 걷거나 달릴 수 있게 만든 운동 기구.

여성경제신문 서빈 극작가·영화감독·미니픽션작가
michellesu@daum.net


☞미니픽션=아주 짧은 분량 속에 완결된 서사를 담아낸 초소형 소설을 말한다. '한 뼘 소설', '손바닥 소설(掌篇小說)', '플래시 픽션(Flash Fiction)' 등으로도 불리며 주로 설명은 생략하고 상징이나 묘사를 통해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끝맺는다. 짧은 틀 안에 소설적 재미와 철학을 압축해 놓은 '문학의 에스프레소'라고 할 수 있다. 

서빈 작가·연출가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서강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영상을 전공했다. KBS, EBS, SBS 등에서 방송작가로 활동하며 다큐멘터리적 시선을 길렀고, 현재는 공연 극본과 연출, 영화 작업을 넘나드는 창작자로 활동 중이다. 창작 뮤지컬 <길동무 북두칠성> , <날으는 모자> 등의 극본과 가사를 썼고, <컴백홈> , <일등급 인간> 등을 연출했다. 단편 다큐멘터리 <안, 보이다 in, visible> 을 연출해 국내외 영화제에 공식 선정·초청되었으며, 한국미니픽션작가회 회원으로 짧은 서사를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

*여성경제신문 기사는 기자 혹은 외부 필자가 작성 후 AI를 이용해 교정교열하고 문장을 다듬었음을 밝힙니다. 기사에 포함된 이미지 중 AI로 생성한 이미지는 사진 캡션에 밝혀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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