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칼라 직종에서 인력 감축 바람이 거세지는 가운데, 현장 기술직의 가치는 오히려 급등하고 있다. 물리적 노동이 필수인 인프라 구축과 대면 서비스 영역이 새로운 고용 안전지대로 부상하는 양상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생성형 인공지능이 지식 노동의 핵심 영역까지 침투하면서 산업 현장의 인력 지형이 급격히 재편되고 있다.
판교 테크 벨트에서 초급 개발자들의 입지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깃허브 코파일럿을 비롯한 코딩 보조 도구들이 주니어 3~4명 몫의 작업을 단숨에 처리해내면서, 단순 코드 작성만 담당하는 신입 채용의 필요성이 급감했다. 국내 IT업계 임원은 기초적인 코딩, 번역, 회계 정리 직무에서 신규 채용 수요가 거의 사라졌다며 채용 문법 자체가 전면 개편됐다고 밝혔다. 국제 연구기관들도 유사한 분석을 내놓는다. 문서 초안 작성이나 보고서 정리처럼 고숙련 지식업무의 초입 단계를 생성형 인공지능이 직접 수행하면서 주니어급 인력 대체가 가시화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현장 기술직 시장에서는 완전히 다른 흐름이 감지된다. 배관, 전기, 건설, 설비 분야에서 인력 품귀와 임금 상승이 맞물리며, 대학 대신 직업훈련 과정을 택하는 청년층이 확대되고 있다. 미국 비영리단체 내셔널 스튜던트 클리어링하우스 집계 기준, 직업학교 등록률은 전년 대비 두 자릿수 상승을 기록했다. 영국 역시 유나이티드 칼리지 그룹 통계상 공학·건설 과정 등록이 최근 3년간 10% 가량 늘어난 반면, 대학 학부 등록률은 10년 만에 첫 감소세로 돌아섰다. 학자금 대출 부담을 피해 20대 초반에 배관공이나 용접공, 전기 기술자로 현장에 진출해 1억원 안팎의 연봉을 받는 사례가 해외 언론을 통해 빈번히 소개되고 있다. 인공지능 연구의 선구자로 불리는 제프리 힌턴 교수는 최근 배관공을 대체 위험이 가장 낮은 직업군 중 하나로 꼽았으며, 엔비디아 젠슨 황 최고경영자도 인공지능 공장 건설에 막대한 수의 전기 기술자와 배관공이 요구된다고 공개 석상에서 역설했다.
역설적이게도 현장 엔지니어 수요 폭발의 핵심 동력은 인공지능 그 자체다. 챗GPT를 구동하는 거대언어모델용 데이터센터가 전 세계에 급속히 확산되면서, 대규모 전력 공급과 냉각 시스템을 구축·운영할 기술 인력 확보가 시급해졌다. 글로벌 리서치 기관 전망에 따르면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시장은 2020년대 중후반까지 연평균 20% 이상 성장해 2030년대 초 수천억 달러 규모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
국내에서도 인공지능 특화 데이터센터 건립이 잇따르며 전력·냉각·네트워크 인프라 투자가 함께 불어나고 있다. 2028년까지 국내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는 연평균 11% 증가할 전망이며, 생성형 인공지능 확산이 전력 과열의 핵심 변수로 지목된다. 투자 확대는 곧바로 인력 쟁탈전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동통신사 관계자는 데이터센터 전력망과 냉방 설비를 설계·시공·유지보수할 경력자 풀 자체가 협소해 연봉 협상에서 매도자 우위가 형성됐다고 전했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서버실 누수나 변압기 사고가 터지면 현장에서 직접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결국 사람뿐이라는 설명이다. 젠슨 황 역시 개발자 행사에서 거대 인공지능 공장 건설에 대규모 전기기사, 배관공, 목수가 필수라며 물리적 기술직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들은 기업들이 숙련 기술자 선점을 위해 기존보다 20~30% 높은 연봉을 제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텍스트·이미지·코드 생성 능력이 급속히 향상되고 있지만, 인간의 체온과 신체 노동이 필수인 돌봄 영역은 여전히 기술 침투가 어려운 성역으로 남아 있다. 주요국에서 고령화가 심화하면서 요양보호사, 간병인, 방문 간호사 부족이 구조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병간호, 요양, 재활 보조는 단순 반복 업무가 아니라 돌발 상황에 대한 즉각 대응과 정서적 교감이 핵심인 직무다. 로봇이 신체 보조나 모니터링 일부를 담당하더라도 환자를 직접 돌보고 가족과 소통하는 역할은 상당 기간 인간의 몫으로 유지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일부 선진국 정부는 돌봄 훈련 프로그램 확대와 해외 인력 유치까지 추진하며 인력난 해소에 나서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람을 직접 대면하는 서비스 직종, 특히 돌봄·교육·심리상담처럼 정서 노동이 결합된 영역이 기술적 대체가 가장 어렵다고 강조한다.
향후 일자리가 통째로 소멸하기보다 직업 내부의 세부 직무가 기계와 인간 사이에서 재배치되는 방식으로 재편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생성형 인공지능이 고숙련 창의 업무 일부까지 대체 가능성을 보여주지만, 현실에서는 정형화된 반복 작업을 기계가 맡고 복잡한 상황 판단과 최종 책임은 인간에게 귀속되는 구조가 빠르게 정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언론사 기자직도 예외가 아니다. 속보성 시황 기사나 데이터 정리 기사는 이미 자동화 도구가 상당 부분 처리하고 있으며, 심층 분석과 윤리적 판단이 요구되는 영역은 여전히 인간 기자의 몫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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