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젤리백, 20년만 '퍼킨백'으로 유행
최화정·키키 키야 등 스타들이 들면서 입소문
월마트 '워킨백' 이어 '듀프' vs '짝퉁' 논란
"MZ의 실속 소비"…"상표권·디자인 침해 논란 반복"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인턴기자 = '2만원짜리 버킨백을 아시나요.'
'억' 소리 나는 엄청난 가격, 사고 싶어도, 돈이 있어도 못 산다는 명품 가방의 대명사 '에르메스 버킨백'이 요즘 길거리와 인스타그램에서 심심치 않게 포착된다.
사각형 토트백 형태에 플랩과 벨트형 잠금장치, 자물쇠 디테일까지 언뜻 보면 딱 버킨백이다.
그러나 고급 가죽이 아니다. 투명하거나 반투명한 PVC·TPU 계열 소재를 사용해 말랑한 질감과 뚜렷한 색감을 강조했다. 가격도 '단돈' 2만~8만원대.
'젤리' 소재의 '퍼킨(Firkin)백'이다.
'짝퉁' vs. '듀프' 논란이 재점화됐다.
◇ "버킨 짝퉁이냐고요? 아뇨, 퍼킨인데요"
'퍼킨백'은 가짜를 뜻하는 '페이크'(Fake)와 '버킨'(Birkin)의 합성어로, 에르메스 버킨백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구조와 장식 요소를 재해석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일부 판매처와 SNS에서는 '젤리 버킨백', '젤리 퍼킨백', '키키백', '최화정백' 등으로도 불린다.
15일 패션업계에 따르면 '젤리 퍼킨백'은 2003년 전후 처음 등장해 2006∼2008년 젤리 소재 유행과 함께 한 차례 인기를 끌었다. 당시 해외 브랜드 제품의 발매가는 약 20만∼30만원대로 알려졌다.
이후 생산이 중단되거나 유통량이 줄면서 한동안 잊혔으나, 최근 이른바 'Y2K(2000년 전후) 패션'이 다시 떠오르면서 20년 만에 해외 빈티지 셀렉숍과 SNS를 중심으로 '부활'했다.
유행의 불씨를 다시 지핀 건 스타들이다.
지난해 6월 방송인 최화정은 개인 유튜브 채널에서 왕년에 잘 쓰던 오렌지색의 젤리 퍼킨백이 어느 순간 동생의 '목욕탕 가방'이 됐다가, 다시 깨끗하게 닦여 돌아왔다고 소개해 주목받았다.
올해 1월에는 아이돌 그룹 키키의 두 번째 미니앨범 '델룰루 팩' 콘셉트 포토에서 멤버 키야가 연두색 젤리 퍼킨백을 든 사진이 공개되며 10∼20대 사이에서 "키키가 든 가방"으로 입소문을 탔다.
고등학생 한모(18) 양은 "평소 키키 팬이고 최애 멤버가 키야인데 연두색 젤리백을 들고나온 게 너무 잘 어울렸다"며 "나도 비슷한 디자인과 색으로 2만원대 제품을 구매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버킨백은 이름만 알지 정확히 어떻게 생겼는지는 잘 몰랐다"고 했다.
2000년대 유행했던 원조(?) 퍼킨백을 찾는 이들은 당근마켓, 번개장터 등 중고 플랫폼이나 해외 빈티지 셀렉숍에서 '젤리 퍼킨', '젤리백', '키키백' 같은 키워드로 매물을 검색한다.
다만 실제 구매는 쉽지 않다. 현재 생산이 중단돼 정식 판매처에서는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고·빈티지 플랫폼에 간헐적으로 매물이 올라오지만, 인기 색상은 웃돈이 붙거나 금세 동난다.
'유행템'으로 가볍게 들 제품을 찾는 소비자들은 온라인 플랫폼에서 판매되는 신제품이나 공동구매 상품을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
대학생 딸을 둔 김모(56) 씨는 "내가 젊을 때 딱 저런 젤리 소재 가방이 유행했다"며 "예전에는 그냥 여름에 막 들고 다니는 가방, 목욕탕·수영장 갈 때 들 법한 가방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Y2K니 빈티지니 하면서 다시 예쁘다고 하니 신기하고 웃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딸이 '엄마 이거 요즘 유행이래'라길래 유행은 역시 돌고 도는구나 싶었다"며 "짝퉁처럼 보인다기보다는 재밌고 귀여운 패러디처럼 보인다"고 덧붙였다.
지난주 젤리 퍼킨백을 구매했다는 직장인 정모(30) 씨는 "평소 힙한 스타일을 좋아하는데, 인스타그램에서 요즘 유행 중이라길래 3만원 정도에 구매했다"고 말했다.
이어 "에르메스 버킨백을 떠올리게 해서 호불호가 있겠지만 소재가 달라 짝퉁 느낌은 없는 것 같다"며 "오히려 말랑하고 투명한 소재로 버킨백 디자인을 구현한 그 부조화가 트렌디하게 느꼈다"고 덧붙였다.
◇ 듀프 문화의 확산인가, 상표권 침해인가
퍼킨백 열풍의 이면에는 '듀프'(Dupe) 문화가 자리한다.
'복제하다'(Duplicate)의 줄임말인 듀프는 고가 브랜드 제품과 기능이나 디자인은 비슷하지만 가격은 훨씬 저렴한 대체품을 뜻한다. '짝퉁'이 브랜드 로고까지 똑같이 베끼는 식이라면, '듀프'는 디자인적 요소만 차용해 가성비를 추구하는 소비자들을 공략한다.
앞서 2024년 미국 월마트에서 1천만 원이 넘는 에르메스 버킨백 디자인을 차용한 '워킨(Wirkin·월마트+버킨백)백'을 판매해 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에르메스의 수천만원짜리 버킨백과 비슷한 디자인인데 가격은 78달러(약 12만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경계선'은 늘 아슬아슬하다.
2020년 국내에서는 에르메스 디자인에 커다란 눈 장식을 붙여 판매한 이른바 '눈알 가방' 업체들이 대법원까지 가는 법정 공방 끝에 상표권 및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판결을 받았다.
자신을 쇼핑업계 관계자라고 밝힌 스레드 이용자 'yu***'는 지난 11일 젤리 버킨백과 관련해 "가방 판매하는 사람으로서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상품명에 버킨백으로 기재해놓은 것도 기가 찬다. 운 나쁘면 지식재산처에 신고당할 수 있다. 더 운 나쁘면 에르메스에게 혼난다. 나는 간땡이가 작아 해볼 엄두도 안 나는데 이걸 파네"라는 글을 올렸다.
대학생 최모(27) 씨도 "로고가 없다고 해도 모양 자체가 너무 특정 브랜드 가방을 생각나게 하지 않나"라며 "그냥 투명 젤리백이면 괜찮은데 플랩이나 잠금장치까지 비슷하면 솔직히 짭, 그러니까 가짜에 가까운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반면 1년차 온라인 쇼핑몰 사장 김모(29) 씨는 최근 중국에서 들여온 젤리 퍼킨백을 3만원대에 판매 중이다.
김씨는 "신생 쇼핑몰이다 보니 검색 유입을 높이기 위해 최근 유행인 젤리 버킨백을 들여오게 됐다"며 "상표권 리스크가 솔직히 신경 쓰이지만 요즘 쇼핑몰에서 거의 다 판매하고 있고 '에르메스'라는 브랜드명만 안 넣으면 큰 문제는 없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밝혔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듀프 소비는 MZ세대의 실속 소비를 중시하는 특성이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이들은 명품을 그대로 따라 한 '짝퉁'보다는 비슷한 감성과 디자인을 보다 합리적인 가격에 소비하는 듀프 소비에 거부감이 적다"고 설명했다.
서 교수는 다만 "디자인을 그대로 차용한 제품은 크게 보면 짝퉁으로 볼 여지도 있다"며 "상표권이나 디자인 침해 논란이 반복될 수밖에 없고, 완전히 없애기도 어려운 문제"라고 지적했다.
minji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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