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부 극성 학부모들의 행태로 일선 교사들의 고충이 날로 커지고 있는 가운데 비슷한 일이 대학이나 기업 내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인 자녀의 사회 생활에 과도하게 간섭해 담당 교수나 직장 상사, 주변 동료들이 곤욕을 치른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전문가들은 성인 자녀의 개인 사생활에 대한 과도한 간섭은 결국 자녀의 앞길을 막는 행위나 다름없다고 일침했다.
정당한 업무지시 항의에 업무 배분 개입까지…극성 부모에 몸살 앓는 '생업의 현장'
부산에서 한 사업체를 운영하는 A씨는 최근 황당한 경험을 했다. 회식을 앞두고 신입사원의 어머니로부터 직접 전화를 받은 것도 모자라 어이없는 소리까지 들었다. 수화기 너머 들려온 말은 부탁을 넘어선 '지시'에 가까웠다. 통화 내용의 요지는 "우리 아이가 술이 약하니 오늘 회식에서 술을 권하지 말고 일찍 귀가시켜 달라"는 것이었다. A씨를 당혹케 한 일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해당 직원의 어머니로부터 "오늘은 OO이 몸이 아파 출근을 못 하니 병결 처리를 해달라"는 전화를 받은 적도 있었다.
A씨는 "회사가 학교도 아닌데 다 큰 성인 직원의 부모로부터 이런 전화를 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회식 자리에서 벌어지지도 않은 일까지 미리 걱정하는 행태에 팀 분위기까지 어색해졌다"고 토로했다. 이어 "자녀가 아프다는 연락까지 받다 보니 나조차도 직원을 채용한 것인지 초등학생을 돌보고 있는 것인지 헷갈린다"고 말했다.
서울 가산디지털단지역 인근의 한 IT 중소기업 대표 김수종(52·남) 씨도 최근 신입사원의 업무 실수에 대해 피드백을 줬다가 당혹스러운 경험한 경험이 있다. 퇴근 후 해당 직원의 어머니로부터 항의 전화를 받은 것이다. 김 씨에 따르면 해당 직원의 어머니는 "아이가 집에 와서 울다가 저녁도 굶고 누워만 있다"며 "상사의 말투가 너무 고압적이었던 것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이어 "자식의 기를 죽였으니 사과해 달라"는 요구도 했다.
김 씨는 "직장 상사를 관리자가 아닌 그저 내 자식을 괴롭히는 동네 못된 형 정도로 취급하는 행태에 기가 막혀 이렇다 할 답변조차 제대로 못했다"며 "업무적인 지적조차 부모의 필터링을 거쳐야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업무를 가르치고 또 나중엔 무슨 업무를 맡길 수 있겠나"라고 토로했다.
가산디지털단지역 인근에서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는 이수민(32·여) 씨도 최근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씨는 "야근하는 20대 직원의 부모와 회사 건물 로비에서 마주치는 일이 잦아져 민망함을 느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며 "부모가 밤길이 무서워 데리러 왔다고는 하지만 일을 왜 이렇게 많이 시키느냐는 무언의 압박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대표 입장에서는 이런 상황 자체가 큰 압박으로 다가와 야근 지시를 하는 것조차 부담스러워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일은 대학가와 아르바이트 현장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얼마 전 서울 명동의 한 올리브영 매장에서는 한 아르바이트생의 부모가 매장을 직접 방문해 업무 배분에 개입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해당 지점 관계자에 따르면 아르바이트생 부모는 "우리 아이가 몸이 약하니 무거운 물품을 드는 일을 시키는 것을 자제해 달라"며 "대신 결제 업무나 매장 정리 위주로 일을 맡겨달라"고 부탁했다.
대학교 교육 현장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주변 교수들의 말을 들어보면 대학 학과 사무실로 부모들이 직접 찾아와 '자녀의 학점을 왜 이렇게 낮게 줬냐'며 항의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대학생은 엄연한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부모가 성적 문제까지 개입하는 것은 매우 비정상적인 현상이다"고 지적했다.
주목되는 사실은 성인 자녀들 역시 부모의 사회생활에 개입을 크게 개의치 않고 있다는 점이다. 취업 플랫폼 제티(Zety)가 지난 2월 Z세대 100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부모가 직장을 방문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 비중이 무려 56%에 달했다. 직장인 2명 중 1명이 부모의 직장 방문 경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또 응답자의 67%는 '정기적으로 부모에게 커리어 조언을 받고 있다'고 답했으며 44%는 부모가 이력서 작성이나 수정을 도왔다고 밝혔다. 심지어 면접에 부모가 동행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자 비중도 20%나 됐고 응답자의 28%는 급여나 복리후생 협상 과정에서 부모의 도움을 받았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사회생활에 대한 부모의 과도한 개입은 성인 자녀의 독립성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사회적 네트워크 형성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과거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던 부모세대가 내 자녀만큼은 손해 보지 않고 편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보상심리를 갖게 되면서 이러한 과잉보호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며 "유치원, 초등학생 자녀를 둔 젊은 부모들 사이에서 이미 아이를 과하게 감싸는 모습이 보편화된 만큼 앞으로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고 강조했다. 이어 "사회생활에 대한 부모의 과도한 개입은 자녀의 독립성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네트워크 형성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자녀가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질 수 있도록 지켜봐 주는 부모의 인내와 인식의 변화가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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