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1일로 예고된 삼성전자 창사 이래 최대 총파업을 엿새 앞두고 삼성전자 노사가 핵심 쟁점인 성과급 제도화를 두고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면서 파업이 현실화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사측은 15일 노조와 추가 대화를 위한 핵심 쟁점 입장을 담은 공문을 발송했으나 노조는 파업 종료 시점인 6월7일 이후 대화에 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사실상 파업 강행 의지를 드러냈다.
고용노동부의 긴급조정권 발동 여부를 두고 청와대는 "결정할 단계가 아니다. 노사 간 협의가 잘 마무리되길 바란다"며 신중한 입장을 밝힌 가운데 삼성전자 측은 "국민께 죄송하다"며 공식 사과문을 발표하고 사태 진화에 나섰다.
반면 최승호 삼성지부 초기업노조위원장은 비공개로 진행된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 사후조정 회의 음성을 이날 조합원과 언론에 공개하며 사측과 전면전 양상을 띠었다. 노조의 도덕성 논란이 제기된 상황에서 비반도체 부문(DX) 노조는 초기업노조를 향해 "대표성이 없다"며 총파업 가처분 신청을 추진하고 나서 노노 갈등도 격화됐다.
창사 이래 최대 파업과 경영 손실액이 100조 원에 이를 것이란 추산이 나오면서 벼랑 끝을 향해 가는 삼성전자 노사가 사과와 폭로라는 평행선을 달리며 총파업이 가시화 되고 있다.
삼성전자 "심려 끼쳐 죄송" 대국민 사과 나서
삼성전자 사장단은 이날 '국민 여러분께 사과 드립니다'라는 입장문을 통해 "노사 문제로 국민과 정부에 큰 부담과 심려를 끼쳐드려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고개를 숙였다.
사장단은 "글로벌 경영 환경이 급변하는 무한 경쟁 시대에 내부 문제로 시간을 허비할 수 없다"며 "노조를 한 가족이자 운명 공동체로 생각하고 조건 없이 열린 자세로 대화에 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조를 향해서도 "국가 경제를 생각해 조속히 대화에 나서달라"고 거듭 요청했다. 총파업만은 막기 위한 경영진의 절박함이 담긴 메시지로 풀이된다.
이날 오전에는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지부(초기업노조)에 공문을 보내 "회사는 지난 3월 중앙노동위원회 조정에서 기존 초과이익성과급(OPI) 제도는 재원을 영업이익 10%와 경제적부가가치(EVA) 중 선택하는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성과급) 제도화, 상한 폐지 요구와 관련해선 기존 OPI 제도를 유지하면서 추가로 상한이 없는 특별보상 제도를 신설하는 등 보다 유연한 제도화 방안을 제안했다"고 설명하며 "협상 타결을 바라는 임직원과 주주, 국민의 바람에 부응해 조건 없이 다시 만나 대화하자"는 말로 노조와의 대화 재개를 촉구했다.
이번 입장문에는 전영현 대표이사 부회장, 노태문 대표이사 사장을 비롯해 김수목, 김용관, 김우준, 김원경, 남석우, 마우로 포르치니, 박승희, 박용인, 박홍근, 백수현, 송재혁, 용석우 등 사장단 일동이 참여했다.
靑 "긴급조정권 단정 지을 수 없어…결정할 단계 아냐"
청와대는 삼성전자 노사 간 성과급 협상 결렬로 총파업이 예고되면서 정부의 긴급조정권 발동 가능성이 나오는 것에 대해 "단정 지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규연 청와대 홍보소통수석은 이날 오후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통해 "아직까지 (긴급조정권 발동을) 결정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라며 "노사 간 협의가 잘 마무리되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이 수석은 "다만 그냥 바라보고 있는 것만은 아니고 적어도 국가 경제에 차지하는 비중, 역할이 크다. 10명 중 1명은 삼성전자 주식을 직간접적으로 갖고 있고, 1700개 정도의 협력업체가 있는 걸로 알려져 있다"며 국민 우려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는 취지로 언급했다.
이어 "국민 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절대로 파업 같은 상황이 오지 않길 보고 있고, 우려와 걱정의 눈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14일 엑스(X·옛 트위터)에 "이번 사안의 중대성과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파급효과를 생각할 때 어떠한 경우에도 파업만은 막아야 한다"며 "산업부 장관으로서는 만약 파업이 발생한다면 긴급 조정도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것에 대해 이 수석은 "산업장관으로서 할 말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 수석은 "기본적으로 거시경제를 총괄하는 게 재정경제부, 실물경제를 총괄하는 것이 산업부고, 노동정책을 관할하는 게 고용노동부이기 때문에 각자 부서의 역할을 각자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산업부 장관의 발언이 청와대와 조율이 안 된 상태에서 나온 것이냐는 질문들이 있는데 재경부 역할, 산업부 역할, 노동부 역할을 장관으로서 각자 (역할을) 하는 것이고, 어제 발언은 산업부 장관으로서는 할 말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긴급조정권은 법적으로 고용노동부 장관의 권한이다. 노동부는 "긴급조정권은 검토한 바 없다"며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어 긴급조정권 발동과 관련해 정부의 인식 차이나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다.
노조 "파업 전 대화 없다, 파업 후 대화" 강행 예고
노조 측 중노위 녹취록 공개하며 반격 "실적 규모 거짓말"
최승호 초기업노조 위원장은 15일 10시까지 대표이사 명의로 자신들의 요구에 대한 답신을 줄 것을 요청했지만 대표이사 명의로 답신이 오지 않고 사측 입장으로 오자 파업 의지를 밝혔다.
최 위원장은 "6월 7일 이후 협의할 의사가 있다. 헌법이 보장한 권리를 잘 이행할 생각"이라고 밝혀 오는 21일부터 18일 간의 파업이 종료된 6월7일 이후 대화를 재개하겠다고 답해 파업 강행을 시사했다.
노조를 향한 도덕성 논란도 커지고 있다.
최 위원장은 이날 언론과 조합원들에게 비공개로 진행된 중노위 사후조정 과정 내용을 담은 녹취록을 공개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정부 중재 아래 진행된 비공개 내용을 외부에 공유한 행위가 노사 분쟁 조정 절차의 신뢰를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녹취록에 따르면 최 위원장은 사측 대표 교섭위원이 올해 영업이익을 200조 원대로 언급하자 "올해 연간 예상 영업이익은 300조 원인데 실적 규모 자체를 거짓말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회사가 반도체를 하나도 모르고 있다. 더 이상 대화할 생각이 없으니 조정안을 달라"고 요구했다.
당시 노사 협상 과정에서 성과급 제도 개편과 영업이익 연동 방식 등을 놓고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자신들의 핵심 요구안인 성과급 상한 폐지와 제도화가 관철되지 않는 상황에서 사측이 실적을 축소했다는 것에 대한 불만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녹취에서 중노위 중재위원은 노사 간 간극을 좁힐 수 있는 절충안을 검토하겠다며 조정 지속 의사를 밝혔고, 이에 최 위원장은 "추가 협상보다 조정안 제시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업계에서는 중노위 사후조정이 통상 비공개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회의 내용 공개 자체가 향후 중재 절차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상대방 동의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녹취가 이뤄졌다면 적절성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앞서 삼성전자 노사는 지난 11~12일 중노위 주재 사후조정을 진행했지만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노조는 성과급 상한 폐지와 제도화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결렬을 선언했고 21일부터 6월 7일까지 총파업을 예고했다.
비반도체 노조원, 파업 중단 가처분 추진…노노갈등 격화
삼성전자 노동조합 내부 갈등이 법적 분쟁으로 번질 조짐도 보이고 있다.
반도체(DS) 부문 중심으로 교섭을 이끌고 있는 초기업노조를 향해 비반도체 부문인 완제품(DX) 부문 조합원들은 "대표성이 없다"며 가처분 신청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21일 총파업을 앞둔 상황에서 노조 간 내부 균열이 드러났다.
노사 협상 과정에서 소외됐다고 주장하는 DX 소속 조합원들은 현재 교섭권을 가진 DS 중심 초기업노조의 대표성에 문제를 제기하며 협상 중단을 요구하는 가처분 신청 절차에 들어갔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사내 커뮤니티에서는 최승호 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초기업노조를 상대로 임금협상 체결 및 파업 금지를 요구하는 가처분 신청을 추진하자는 글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소송비 모금도 진행 중이며, 조만간 법무법인을 선정해 구체적인 소송 방향을 정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DX 조합원들은 초기업노조가 DS 부문의 성과급 문제에만 집중한 채 DX 구성원들의 요구는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있다고 반발했으며, 앞서 지난달 23일 평택캠퍼스에서 열린 투쟁결의대회 이후 일부 조합원들은 파업 기간 조합원비가 5만원으로 인상되는 데 불만을 드러내며 노조 탈퇴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가처분 신청의 핵심은 초기업노조의 대표성 문제다. DX 조합원들은 특정 사업부 중심의 교섭 구조로는 전체 조합원을 대표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어 현재 초기업노조는 사측이 제기한 불법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 신청과 DS 노조의 가처분 신청 등 총파업 전 두 개의 법적 리스크에 직면한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생산시설 보호와 웨이퍼 손상 방지, 주요 시설 점거 차단 등을 이유로 지난달 16일 수원지방법원에 위법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법원은 파업 개시 하루 전인 20일 최종 결론을 내릴 예정이다.
사측은 총파업에 대비해 14일부터 설비 라인을 제한하며 '비상플랜'을 가동 중이다. 대규모 인력 부족으로 인한 품질 문제를 염려해 설비 라인을 제한하는 사전 조치에 나선 것으로, 오는 20일 법원의 위법 파업행위 금지 가처분 신청이 인용되더라도 그간의 생산 라인 제한으로 인해 최소 10~20조 원의 손실이 예상돼, 글로벌 공급망은 물론 국가 경제 전반에 충격을 줄 수 있다.
소액주주들 "주주 재산권 침해" 노조 파업 법적 대응 나서
삼성전자 노조의 총파업이 임박해지자 소액주주 단체는 임금 협상과 파업 움직임에 대해 법적 조치 검토에 착수했다.
소액주주 단체인 '대한민국 주주운동본부'는 14일 보도자료를 통해 삼성전자 이사회와 경영진,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 공동투쟁본부를 상대로 한 법률 대응 방침을 공개했다.
주주운동본부는 노조 측이 요구한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으로 일률 지급'하는 방안이 상법상 '자본충실의 원칙'을 위반할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영업이익은 법인세와 법정준비금 등을 차감하기 전 단계의 수치"라며 "이를 노무비 명목으로 우선 배분하는 것은 사실상 주주 재산권을 침해하는 위법 배당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경영진이 노조 요구안을 수용해 이사회 결의를 강행할 경우 이사의 충실의무 위반과 업무상 배임 혐의 등을 이유로 결의 무효 확인 소송과 위법행위 유지청구 가처분 신청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주주운동본부는 노조의 총파업 계획을 비판하며 "경영성과급은 단순 임금이 아닌 사업 이익의 분배 성격이 강하다. 이를 관철하기 위한 파업은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렵다"며 "파업으로 반도체 생산 차질과 기업가치 훼손이 발생한다면 주주 재산권에 대한 직접적 침해 행위"라며 조합원들을 상대로 대규모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에 나설 가능성도 시사했다.
이들은 오는 21일 예정된 총파업 시점에 맞춰 주주행동 플랫폼 '액트(ACT)'를 통해 삼성전자 주주와 전국 단위 소송인단 모집에 나설 계획이다.
학계 전문가들, 주주 관점서 파업 지적 "영업이익은 주주 몫"
삼성전자와 삼성바이오로직스 등이 기업 실적에 따른 영업이익의 성과급 제도화를 요구하며 노사 갈등이 불거지자 학계 전문가들은 "영업이익은 주주의 몫"이라며 이성적인 판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회사 성과에 대해 정당한 보상 요구는 있을 수 있지만 과도한 요구는 상법을 비롯한 국내 법체계와 충돌할 소지가 있으며, 첨단사업의 경쟁력이 저하될 수 있다는 우려의 말이 나왔다.
주주행동연구원은 이날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주주 관점에서 본 최근의 파업 이슈-삼성그룹 사례를 중심으로' 주제의 전문가 좌담회를 개최하고 이 같은 의견을 나눴다.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회사법적 관점에서 이익 처분은 주주총회 고유의 권한이자 주주의 몫이다. 노조는 인사고과나 인수합병(M&A) 등 경영 사안에 사전 합의권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는 이사회 고유 권한을 침해하고 상법이 정한 의사결정 구조를 왜곡할 소지가 크다"고 말했다.
송헌재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는 노조가 회사 주체로서 유연한 판단을 해줄 것을 촉구하며 "경영진이 무능하거나 부패하다면 파업이 하나의 수단이 될 수 있지만 삼성전자는 현재 그런 상황이 아니다. 비합리적인 주장으로 투쟁만 내세우기보다는 지금이라도 생각을 바꿨으면 한다"고 전했다.
정무권 국민대 경영대학 교수는 노동 기여에 대한 보상 요구가 기업 핵심 이해관계자인 주주 이익과 충돌할 가능성을 지적하며 "영업이익의 일정 부분을 근로자에게 이전할 경우 미래 투자와 기업가치 제고에 활용할 재원이 감소한다"고 설명했다.
강원 주주행동연구원장(세종대 경영학부 교수)은 "노동자가 회사 성과에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노조 주장엔 장기 투자와 위험 부담에 대한 보상, 미래 경기 변동까지 함께 고려하는 구조가 보이지 않는다"며 "치킨게임으로 치닫는 노조와 이해관계자 간 갈등을 어떻게 다시 '함께 성장하자'는 협상 테이블로 가져와 정상화할 수 있을지 토론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피력했다.
[다음은 삼성전자 사장단 사과문 전문]
<국민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국민>
저희 삼성전자의 노사 문제로 국민들과 주주, 그리고 정부에 큰 부담과 심려를 끼쳐드렸습니다.
성취가 커질수록 우리 사회가 삼성에 거는 기대가 더 엄격하고 더 커지는데, 이를 제대로 살피지 못했습니다.
삼성전자 사장단은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깊이 고개 숙여 사과 드립니다.
지금은 매순간 마다 글로벌 경영환경이 급변하는 무한경쟁의 시대입니다. 회사 내부 문제로 시간을 허비할 수 없습니다. 노사가 한마음으로 화합해 끊임없는 기술혁신과 미래를 위한 과감한 투자로 사업경쟁력을 확보해야 할 때입니다.
반도체는 다른 산업과 달리 24시간 쉼 없이 공정이 돌아가야하는 장치 산업이므로 결코 파업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고객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신뢰 자산을 완전히 잃게 됩니다.
저희 사장단은 현재의 경제상황과 대한민국의 먼 미래를 보며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으겠습니다. 노동조합을 한 가족이자 운명 공동체라고 생각하고 조건없이 열린 자세로 대화에 임할 것입니다.
노동조합도 국민들의 우려와 국가 경제를 생각해 조속히 대화에 나서줄 것을 거듭 요청 드립니다.
삼성전자 사장단 일동
대표이사 부회장 전영현, 대표이사 사장 노태문
김수목, 김용관, 김우준, 김원경, 남석우, 마우로 포르치니, 박승희, 박용인, 박홍근, 백수현, 송재혁, 용석우, 윤장현, 이원진, 최원준, 한진만
[폴리뉴스 김성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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