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산업 확산이 국내 제조업 지형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
반도체 · 전력기기 · 데이터 인프라처럼 AI와 직접 연결된 업종은 슈퍼사이클에 올라탄 반면 철강 · 석유화학 · 배터리 업종은 수요 둔화와 공급 과잉에 시달리며 부진이 깊어지는 양상이다. 같은 제조업 안에서도 업종별 체력 차이가 극단적으로 벌어지는 '양극화' 국면이다.
세계반도체무역통계기구(WSTS)는 2026년 메모리 반도체 시장 성장률을 16.2%로 제시했다. 전체 반도체 시장 성장률(8.5%)의 두 배에 가까운 수치다. AI 데이터센터 확산으로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가 급증한 결과로,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올해 HBM 시장 규모를 546억 달러로 추산했다.
전력 · 통신도 AI 특수...효성 · 한화 · KT 인프라 시장 선점 나서
삼성전자는 고성능 반도체 중심 사업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고, SK하이닉스는 2025년 3분기 기준 HBM 시장 점유율 57%로 선두를 유지 중이다.
AI 인프라 확산은 전력 산업에도 기회가 됐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사용량이 2022년 460TWh에서 2026년 1050TWh로 두 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한국 정부는 2040년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를 현재(8.2TWh)의 5배인 42.1TWh로 제시했다. 효성과 한화는 전력 설비·에너지 사업 확대에 속도를 내며 이 흐름을 탔다. KT도 AI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 사업을 앞세워 단순 통신 사업자에서 AI 인프라 플랫폼 기업으로 체질 전환을 서두르는 모습이다.
철강 · 석화 · 배터리, 중국 자급률 상승에 타격
전통 제조업은 상황이 다르다. 철강업계는 글로벌 공급 과잉 물량이 2024년 기준 6억 톤에 달하며 전체 설비의 약 24%가 과잉 상태다.
중국은 2022년 4월부터 생산원가 이하 가격으로 덤핑 수출을 이어가고 있다. 세계철강협회는 중국 철강 수요가 2020년 10억5000만 톤에서 2050년 6억 톤대까지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석유화학도 공급 과잉과 중국 자급률 상승 여파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흐름이다. 롯데케미칼은 지난해부터 대규모 적자를 이어오고 있으며, LG화학 석유화학 부문과 한화솔루션 케미칼 부문도 지난 3분기 적자를 기록했다.
배터리 업계도 전기차 시장 성장 둔화로 실적 압박이 가중됐다. 미국 전기차 판매는 2025년 150만 대에서 2026년 110만 대로 29% 감소할 것으로 추산된다. 삼성SDI는 올해 794억 원 영업손실, SK온은 6139억 원 영업적자가 예상된다.
수도권 뜨고 울산 · 여수 · 포항 식는다…지역경제도 양극화
산업 재편은 지역경제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반도체 클러스터와 데이터센터 투자가 몰리는 수도권·충청권은 신규 일자리와 투자 확대 기대감이 커지는 반면 철강·석화 비중이 높은 울산·여수·포항 등은 투자 감소와 고용 위축 우려가 커지는 구도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제조업 전체가 함께 성장하는 구조였다면 이제는 AI와 연결되느냐에 따라 업황이 완전히 갈리는 시대가 됐다"며 "산업 간 격차를 넘어 지역경제와 고용 구조까지 재편되는 흐름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폴리뉴스 손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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