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지네 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 주신 스승은 마음의 어버이시다 아아 고마워라 스승의 사랑 아아 보답하리 스승의 은혜"
스승의 날이면 으레 불리던 이 곡을 요즘은 듣기 힘들다. 조촐한 교실 내 행사도 규제의 대상이 됐다.
경상북도교육청은 내부 게시판 공지를 통해 청탁금지법상 교사와 학생·학부모가 '직접적 이해관계자'에 해당한다며, 스승의 날에 케이크를 교사에게 전달하거나 함께 먹는 행위를 자제하라고 안내했다.
"아이들이 스승의 날 카드를 만들면서 '선생님한테 선물 줘도 되냐, 안 되냐'며 이야기를 나누더라고요. 몇몇 학생은 '카네이션도 안 되고 음료수 하나만 받아도 선생님 잡혀간다'며 거침없이 얘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부산 금정구 S 초등학교에서 6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21년 차 교사 윤미숙 씨는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아이들은 별 의도가 없었겠지만, 스승의 날을 앞두고 '선생님이 음료수 하나 받아도 잡혀간다'는 말을 당연하게 주고받는 교실이 된 현실에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그녀는 "이 상황이 과연 정상적인 것이냐"고 반문했다.
교사를 기리는 날에도 교사는 학생이 건네는 케이크 한 조각과 카네이션 한 송이 앞에서 법적 위험부터 따져야 하는 존재가 됐다.
한국 사회에서 이 장면이 더욱 아이러니하게 읽히는 이유는, '스승'이 단순한 직업 명칭이 아니라 존경과 도덕적 권위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유교 문화권에서 교사는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을 넘어 인격과 질서를 가르치는 존재로 인식됐고, 지금도 학교에서는 '스승의 은혜' 노래와 감사 편지 문화가 이어진다.
스승의 날은 1958년 청소년적십자(RCY) 단원들이 병중(病中)의 교사를 찾아간 활동에서 시작돼, 1965년 세종대왕 탄신일인 5월 15일로 날짜가 정해지며 전국적 기념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교권 추락과 악성 민원, 각종 법적 부담이 겹치면서 교사들 사이에서는 "이제는 이름만 남은 날"이라는 자조가 커지고 있다.
교권과 교직에 대한 자부심이 바닥을 친 지는 오래다.
교사노동조합연맹이 14일 발표한 '교사 인식 설문조사'에 따르면 최근 1년 사이 사직을 고민한 적이 있다는 교사는 절반을 넘었다. 교사 100명 중 5명가량만이 "교사가 사회로부터 존중받고 있다"고 답했으며, 교직 생활에 보람을 느낀다는 응답도 30%대에 머물렀다.
교권 침해와 신뢰 붕괴에 대한 무력감도 뚜렷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KFTA)가 제45회 스승의 날을 앞두고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5일까지 전국 유·초·중·고·대학 교원 8,9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13일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9.2%는 "최근 1~2년 사이 직업적 자부심이 낮아졌다"고 답했다. 교사들이 가장 큰 무력감을 느끼는 순간으로는 "학생·학부모로부터 신뢰받지 못하고 교권이 침해될 때"(67.9%)가 꼽혔다.
지역 현장에서도 분위기는 비슷하다. 부산교사노동조합이 최근 전국 교사 7,180명(부산 38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6 교사 인식 설문조사'에서는 부산 교사의 69.2%가 "다시 태어나면 교직을 선택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80.9%는 "정당한 교육 활동 중에도 아동학대 신고로 피소될까 불안하다"고 했고, 85.1%는 아동학대처벌법상 '정서적 학대' 조항이 교육 활동을 위축시킨다고 답했다.
교사들은 학교 현장이 점점 '방어적 교실 문화'로 변하고 있다고 말한다. AI와 스마트폰 확산도 교사의 권위를 바꾸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 교사는 "예전에는 학생 생활지도의 일부로 받아들여졌던 일들도 이제는 매뉴얼과 민원 가능성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며 "상담할 때 녹음을 하는 경우가 많다. 혹시라도 민원이나 신고가 들어올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학생들과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며 "수업 중에는 늘 존댓말을 쓰고, 지나치게 스스럼없이 다가오지 않도록 교육한다"고 말했다. 친밀함이 오히려 오해나 분쟁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서울 강남의 한 초등학교 교사 백모 씨는 "예전처럼 교사가 모든 답을 알고 있는 존재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며 "디지털 환경 속에서 교사의 권위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몇 년 사이 한국 사회에서는 교사 사망 사건과 교권 침해 논란이 반복적으로 이어졌다. 특히 2023년 서울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 이후 수만 명의 교사들이 서울 여의도 일대에서 집회를 열며 교권 보호를 요구했지만, 현장 교사들 사이에서는 "실질적으로 달라진 것이 체감되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교사 폭력 문제도 더 이상 드문 사례로 여겨지지 않는다. 지난달 충남 계룡에서는 학생이 교사를 흉기로 공격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이후 교사노동조합연맹이 전국 유·초·중·고교 교사 7,30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학생의 교사 대상 폭행 실태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7%가 학생으로부터 물리적 위협을 경험했다고 답했고, 32%는 실제 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전문가들은 한국 사회가 여전히 유교적 '스승 존중' 문화를 이야기하지만, 현장에서는 교사에게 필요한 신뢰와 재량이 충분히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학생 생활지도와 정서적 돌봄 책임은 계속 요구하면서도, 이를 뒷받침할 권위와 보호는 약해졌다는 것이다.
과거 안정성과 사회적 존중의 상징이던 교직의 위상도 흔들리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와 민원 부담, 법적 리스크가 겹치며 교대 선호도 역시 하락세다. 입시업계에 따르면 주요 교육대학의 2025학년도 수시 합격선은 전년보다 낮아졌다. 서울교대·춘천교대·한국교원대·광주교대·청주교대 등 5개 교대의 2025학년도 수시전형 내신 합격선은 3.61등급으로 전년(3.22등급)보다 하락했다.
초등교직의 성비 불균형도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2026학년도 서울 공립 초등학교 교사 임용시험 최종 합격자 210명 중 남성은 30명으로 14.3%에 그쳤다. 전체 유치원·초등·특수학교 합격자 295명 가운데 남성은 32명(10.9%)이었다. 유치원 교사 합격자 48명 중 남성은 1명뿐이었고, 특수학교 유치원 교사 합격자 7명은 전원 여성이었다.
이 같은 성비 불균형 속에서 남성 교사들은 업무 부담을 호소한다.
대전의 한 30대 남성 교사 연모 씨는 "남자 교사가 적다 보니 체력적으로 힘든 일이나 어려운 상황 대응이 자연스럽게 남교사에게 몰리는 경우가 많다"며 "힘들다고 이야기하기도 쉽지 않은 분위기"라고 말했다.
교사들은 결국 교육 현장에 필요한 것은 법과 제도만이 아니라 신뢰와 공동체 의식이라고 강조한다.
"교사들이 바라는 것은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던 시절의 권위가 아닙니다."
윤 교사는 "내 아이가 소중한 만큼 다른 아이도 소중하고, 내 아이가 피해받기 싫은 만큼 다른 아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기본적인 배려와 공동체 의식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배려와 양보는 손해가 아니라 아이의 마음 그릇을 넓히는 기회"라며 "교육은 법과 제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 사이를 존중과 배려가 채워줄 때 교사와 학생, 학부모 모두 더 편안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한 번의 스승의 날. 지금 교사들이 바라는 것은 거창한 존경이나 감사의 노래보다, 움츠러들지 않고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교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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