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광의 고대 이집트 미술과 신화 #24] 베니 하산, 이집트 미술의 금기를 깨다① 아마르나 자연주의의 기원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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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광의 고대 이집트 미술과 신화 #24] 베니 하산, 이집트 미술의 금기를 깨다① 아마르나 자연주의의 기원을 찾아서

문화매거진 2026-05-15 11:07:4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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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광의 고대 이집트 미술과 신화 #23] 아텐의 지평선에서② 유일신을 꿈꾼 파라오의 사람들에 이어 

[문화매거진(이집트)=한민광 작가] 나일강의 유구한 물줄기가 만들어 낸 비옥한 대지 위로, 수천 년 전 고대 이집트인들은 영원을 향한 갈망을 새기고 그려 넣었다. 대개 이집트 여행자들의 발길은 기자의 거대한 피라미드나 룩소르의 화려한 왕들의 계곡에 머물곤 한다.

하지만 진정으로 고대인들의 숨결과 그들의 내밀한 일상을 마주하고 싶다면, 중부 이집트 엘민야(EL-Minya) 인근의 베니 하산(Beni Hasan)으로 향해야 한다. 이곳 석회암 절벽에 둥지를 튼 암굴 묘들은 중왕국 시대 지방 영주들이 가졌던 자부심과 그들이 꿈꿨던 사회적 이상향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제2호 묘의 주인, ‘아메넴하트(Amenemhat)’의 공간은 고대 이집트 예술이 도달한 인간 중심적 미학의 정점을 보여준다.

▲ 베니 하산의 거친 석회암 절벽을 가로질러 아메넴하트 무덤의 입구까지 길게 뻗어 있는 진입로 / 사진: 한민광 제공
▲ 베니 하산의 거친 석회암 절벽을 가로질러 아메넴하트 무덤의 입구까지 길게 뻗어 있는 진입로 / 사진: 한민광 제공


‘아메넴하트’의 무덤으로 들어서는 길은 이 무덤을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나에게도 그 자체로 시공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신비로운 체험처럼 느껴졌다. 언덕 아래에서부터 무덤 입구까지 길게 뻗은 통로는 이 신성한 장소로 나아가기 위한 정화의 길 같았다. 좌우에 배치된 거대한 바위들은 수천 년의 세월 동안 이 무덤을 지켜온 파수꾼과도 같으며, 방문객으로 하여금 곧 마주하게 될 영주의 권위와 마주할 마음의 준비를 하게 만든다. 이 길은 이후 신왕국 시대의 거대한 신전 진입로로 이어지는 건축적 원형 중 하나로 볼 수 있으며, 공간의 성스러움을 극대화하는 장치이다. 척박한 절벽을 깎아 이러한 장대한 진입로를 구축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당시 이 지역의 지배자였던 ‘아메넴하트’의 위상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 묘 입구에 설치된 안내 표지판으로, 아메넴하트의 생애와 업적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그가 다스린 '오릭스 노메'의 역사적 위상과 자애로운 통치 철학을 한눈에 보여주는 중요한 기록물이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묘 입구에 설치된 안내 표지판으로, 아메넴하트의 생애와 업적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그가 다스린 '오릭스 노메'의 역사적 위상과 자애로운 통치 철학을 한눈에 보여주는 중요한 기록물이다 / 사진: 한민광 제공


예술은 유적을 발굴하고 그것들을 해석한 사람들의 글로도 그 완성도를 높인다. 아메넴하트 묘 입구에서 마주하는 표지판은 단순한 안내를 넘어 한 인간의 생애와 신념이 담긴 설명이다. 그는 자신을 ‘오릭스 노메(Oryx nome - 고대 상이집트의 제16번째 행정 구역으로, 중왕국 시대 당시 막강한 권력과 경제적 풍요를 누렸으며 ‘베니 하산’이라는 찬란한 예술적 유산을 남긴 지방 영주들의 영지였다.)’의 마지막 지방 장관으로 소개한다. 그는 제12왕조의 위대한 왕 ‘세누스레트 1세(Senusret I)’의 치세 아래 약 25년 동안 이 광활한 영토를 다스렸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권력을 휘두르는 지배자가 아니었다. 비문에 기록된 그의 삶은 고대 이집트의 정의인 ‘마아트(Ma'at)’를 온몸으로 실천한 구도자의 모습에 가깝다.

그는 전쟁터에서는 왕을 보좌하여 누비아(Nubia) 원정에 참여해 승리를 이끌었고, 동쪽 사막에서는 왕의 보물을 찾기 위해 금광 채굴 원정을 두 차례나 진두지휘했던 용맹한 장수였다. 그러나 묘실의 벽면에 새겨진 그의 진심은 자신의 권위보다 민초들의 삶을 향해 있었다. “...I recount how I governed my territory fairly, and how I managed to keep everyone well fed even during a time of famine.( ...나는 나의 영토를 어떻게 공정하게 다스렸는지, 그리고 기근의 시기에도 어떻게 모든 이를 배불리 먹일 수 있었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라는 그의 말은 수천 년의 시간을 건너 현대의 우리에게도 묵직한 울림을 준다.

그는 어머니 ‘헤누(Henu)’에 대한 지극한 효심을 가진 아들이었으며, 아내 ‘헤테페트(Hetepet)를 평생의 동반자로 존중했던 남편이었다. 이러한 인간적인 면모는 그가 조성한 무덤 묘실의 미술 양식에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신격화된 왕의 경직된 권위보다는, 울고 웃는 인간의 일상과 가족의 유대를 중시하는 시선이 벽화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이는 훗날 신왕국 제18왕조의 ‘아케나톤’ 왕이 사실과 진리를 추구했던 왕실 가족의 친밀함과 자연의 생동감을 파격적으로 묘사했던 ‘아마르나 미술’의 철학적, 예술적 모태가 된다. 아메넴하트가 실천한 인간 중심의 정의는 수백 년 뒤 나타날 예술 혁명의 소중한 밀알이 되었던 것이다.

▲ 묘실 천장의 정교한 장식으로, 중앙을 가로지르는 노란색 직사각형은 지붕을 든든하게 받쳐주는 굵은 통나무를 시각적으로 재현한 것이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묘실 천장의 정교한 장식으로, 중앙을 가로지르는 노란색 직사각형은 지붕을 든든하게 받쳐주는 굵은 통나무를 시각적으로 재현한 것이다 / 사진: 한민광 제공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는 순간, 우리는 차가울 것이라 여겼던 무덤의 공간이 얼마나 따스하고 화려한 거처로 탈바꿈했는지 깨닫는다. 천장의 각 구획 중앙을 가로지르는 긴 노란색 직사각형은 지붕을 든든하게 받쳐주는 ‘굵은 통나무’를 시각적으로 재현한 것이다. 석조 건축물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굵은 통나무를 그려 넣은 것은, 죽음 이후의 세계가 일반 무덤처럼 낯설고 차가운 공간이 아니라 현세에서 누렸던 편안한 ‘집’이기를 바랬던 고대인들의 간절한 소망을 표현한 것이다. 통나무 양옆을 수놓은 빨간색과 노란색의 체크무늬, 그리고 돗자리 문양을 연상시키는 정교한 패턴들은 반복과 대칭의 미학을 통해 우주의 무한함을 상징한다.

특히 네 개의 잎사귀가 겹친 듯한 여러 ‘꽃무늬’들은 기하학적 정밀함과 일상의 건축 요소를 예술로 승화시킨 태도를 보여주는데, 이는 훗날 아마르나 미술이 추구했던 ‘눈에 보이는 진실함’과 깊은 연관성을 갖는다.

▲ 긴 관으로 불을 지피며 금속을 다루는 장인들과 커다란 항아리를 작업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치열한 노동의 현장을 역동적이고 세밀하게 묘사하여 고대 이집트의 뛰어난 기술력과 생명력을 보여준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긴 관으로 불을 지피며 금속을 다루는 장인들과 커다란 항아리를 작업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치열한 노동의 현장을 역동적이고 세밀하게 묘사하여 고대 이집트의 뛰어난 기술력과 생명력을 보여준다 / 사진: 한민광 제공


벽화를 향해 한 걸음 더 다가가면, 우리는 4,000년 전의 뜨거운 삶의 현장을 마주한다. 귀족의 우아한 삶 이면에는 이처럼 묵묵히 땀방울을 흘리는 이름 없는 장인들의 노고가 자리하고 있다. 화면의 위쪽을 살펴보면, 여러 남성이 긴 관을 입에 물고 화로를 향해 힘껏 바람을 불어넣고 있는 흥미로운 장면이 펼쳐진다. 그것은 금속을 가공하기 위해 불의 온도를 높이는 고대 이집트 특유의 풀무질 작업이다. 몸을 뒤로 젖히거나 앞으로 한껏 숙이며 온몸의 힘을 쥐어짜는 장인들의 역동적인 자세는, 단조로운 평면 위에 놀라운 생동감과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그 아래로는 사람 허리춤까지 오는 커다란 붉은색 항아리들 사이에서 무언가를 담거나 정성껏 다듬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곡물이나 포도주를 보관하는 커다란 토기를 다루는 이 장면은 당시 이집트 사회가 얼마나 풍요롭고 분업화되어 있었는지를 시각적으로 증명한다. 여기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화공의 따뜻하고도 예리한 시선이다. 벽화 속 노동자들은 똑같은 자세로 복사된 로봇이 아니다. 저마다의 작업 단계에 맞춰 팔의 각도를 달리하고, 허리를 굽히며, 무거운 것을 들기 위해 엉덩이를 뒤로 빼는 등 지극히 현실적인 신체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이전 구왕국 시대의 미술이 왕과 신의 완벽하고 경직된 모습을 그리는 데 집중했다면, 베니 하산의 예술은 이처럼 흙먼지 날리는 인간의 삶 그 자체를 무대 위로 끌어올렸던 것이다.

아메넴하트는 왜 자신의 영원한 안식처에 이토록 평범한 노동자들의 모습을 큼지막하게 새겨 넣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그가 다스리던 ‘오릭스 노메(Oryx nome)’의 진정한 힘이 바로 이들의 거친 손끝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깊이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기근이 닥쳤을 때도 백성을 위해 들판을 일구었다”던 안내판 비문 내용처럼, 지배자의 권위를 일방적으로 과시하는 대신 백성들의 치열한 일상을 넉넉하게 품어 안은 통치자의 마음결이 느껴진다.

미술사적 관점에서 이 벽화는 매우 귀중한 단서를 제공한다. 이상화된 아름다움을 버리고 인간의 실제 육체적 움직임과 노동의 땀방울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려 했던 이 ‘사실주의’는 이집트 미술의 거대한 전환점을 가져왔을 것이다. 이처럼 평범한 사람들의 미세한 움직임까지 놓치지 않았던 베니 하산의 따뜻한 관찰력은, 수백 년의 시간을 지나 아케나톤 왕이 이끌었던 아마르나 미술의 파격적인 자연주의로 만개하게 된다. 일상의 노동마저 예술로 승화시킨 이 붉은 벽화 앞에서, 우리는 진정한 예술이란 인간의 땀과 존엄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 커다란 저울을 가운데 두고 양쪽에서 물건의 무게를 세밀하게 달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아래쪽에는 다양한 형태의 잔과 그릇들이 놓여 있어, 고대 이집트의 체계적인 경제 활동과 공정성을 보여주는 귀중한 장면이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커다란 저울을 가운데 두고 양쪽에서 물건의 무게를 세밀하게 달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아래쪽에는 다양한 형태의 잔과 그릇들이 놓여 있어, 고대 이집트의 체계적인 경제 활동과 공정성을 보여주는 귀중한 장면이다 / 사진: 한민광 제공


아메넴하트 무덤의 벽화가 우리를 감동하게 하는 이유는 영웅의 과장된 무용담이 아니라 치열하고도 정교한 일상의 기록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사진 속 장면은 고대 이집트 사회의 경제 시스템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매우 흥미로운 대목이다. 화면 중앙에는 육중한 기둥 형태의 거대한 저울이 굳건히 서 있고, 양쪽에 선 두 남성이 매우 신중한 자세로 저울판 위의 물건들을 달아보고 있다. 한 사람은 저울의 수평을 맞추기 위해 세밀하게 손놀림을 하고, 맞은편의 사람은 무게를 잴 물건들을 조심스럽게 다루고 있다.

이 장면 아래쪽으로는 화려한 받침이 있는 술잔과 다양한 형태의 그릇들이 줄지어 놓여 있다. 이는 귀금속이나 향료, 혹은 중요한 제물의 무게를 정확히 계량하는 과정을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흥미로운 것은 이 ‘저울’이라는 도구가 상징하는 바다. 고대 이집트에서 저울은 단순히 물건의 무게를 재는 도구를 넘어, 사후 세계에서 인간의 심장을 달아 생전의 죄업을 심판하는 진리와 정의의 여신 ‘마아트(Ma'at)’의 상징이기도 했다.

아메넴하트는 왜 이토록 정밀한 계량의 순간을 묘실의 한복판에 새겨 넣었을까. “과부와 고아를 차별하지 않았다”던 안내판의 비문처럼, 이는 그가 오릭스 노메를 다스리며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통치의 근간, 즉 ‘공정함(Fairness)’에 대한 시각적 선언일 것이다. 그는 백성들에게 거두어들이는 세금이나 그들에게 분배하는 식량에 있어 한 치의 속임수도 없는 투명한 경제 체제를 유지했음을 이 저울의 수평을 통해 당당히 과시하고 있다.

▲ 무덤의 주인을 위해 곡물, 새, 항아리 등 다양한 공물을 운반하는 사람들과 가축들의 장엄한 행렬이다. 풍요로운 제물을 바치는 이들의 율동적인 움직임이 화면 전체에 짙은 생동감과 리듬감을 부여한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무덤의 주인을 위해 곡물, 새, 항아리 등 다양한 공물을 운반하는 사람들과 가축들의 장엄한 행렬이다. 풍요로운 제물을 바치는 이들의 율동적인 움직임이 화면 전체에 짙은 생동감과 리듬감을 부여한다 / 사진: 한민광 제공


묘실의 벽화는 단순한 일상의 기록을 넘어 아메넴하트가 사후 세계에서도 현세의 풍요를 영원히 누리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의 결정체이다. 사진 속 장면은 묘의 주인을 위해 바쳐질 다채로운 공물(제물)들의 행렬을 3단 구조로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가장 위쪽 단을 보면, 두 팔을 위로 번쩍 들어 올리거나 양팔을 앞으로 뻗은 채 리듬을 타는 듯한 여성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이들은 단순한 운반자가 아닌, 장례 의식이나 봉헌식에서 춤과 노래로 신성한 분위기를 돋우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아래 중간 단에는 건강한 체격의 남성들이 각자의 몫을 다해 공물을 나르고 있다. 한 손에 새를 쥐고 다른 손으로 항아리 쟁반을 받쳐 든 사람, 어깨에 긴 막대를 매고 양 끝에 곡물이 가득 담긴 무거운 바구니를 지고 가는 사람의 모습이 매우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가장 아래 단에는 뿔이 멋지게 솟은 얼룩무늬 소들이 등장한다. 가축을 몰고 가는 이 장면은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있어 소가 얼마나 중요한 재산이자 제물이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소의 가죽에 그려진 독특한 무늬와 걸음걸이의 묘사는 중왕국 화공들의 뛰어난 관찰력을 입증한다.

미술사적으로 이 장면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인물과 동물들이 만들어 내는 ‘움직임’일 것이다. 일정한 간격으로 배열된 사람들의 발걸음, 팔의 각도, 그리고 지물을 들고 있는 다양한 형태들은 평면적인 벽화 위에 음악적인 리듬감을 만든다. 이는 고정되고 경직된 틀에 갇혀 있던 과거의 미술 양식에서 벗어나 서사의 흐름과 움직임의 미학을 도입하려 했던 베니 하산 화공들의 혁신적인 시도라 볼 수 있다.

▲ 화려한 복색의 '아무(Amu)'족 사절단이 예물을 들고 입국하는 역사적인 장면이다. 이방인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는 당시 이집트의 국제적 위상과 문화적 포용력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화려한 복색의 '아무(Amu)'족 사절단이 예물을 들고 입국하는 역사적인 장면이다. 이방인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는 당시 이집트의 국제적 위상과 문화적 포용력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 사진: 한민광 제공


베니 하산 예술의 정수이자 역사적으로 가장 충격적이고 매혹적인 장면은 이방인 사절단의 방문이다. 다채로운 기하학적 무늬와 강렬한 색채로 직조된 옷을 입고, 짐을 가득 실은 나귀를 앞세워 사막을 건너온 ‘아무(Amu)’족의 행렬은 고대 이집트의 전통적인 미술 양식에 전례 없는 이국적 에너지와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대개 자신들을 세계의 중심으로 여기며 이방인을 ‘쳐부숴야 할 적’이나 ‘무질서(Isfet)의 상징’으로 묘사하는 경향이 강했다. 왕이나 장군이 적군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내리치는 곤봉 타격 장면은 이집트 미술의 전형적인 스토리였다(아래 사진 참조). 그러나 아메넴하트는 이 오랜 관습을 깨고 이들을 무기를 들고 침략하는 야만인이 아니라 이집트의 위대한 문명과 평화롭게 교류하고자 찾아온 존중받는 파트너로 그림에 담아냈다.

▲ 이집트 파라오가 신성한 힘을 상징하는 곤봉을 치켜들고, 무릎 꿇은 이방인 포로들의 머리채를 움켜쥐며 적을 제압하는 장면이다. 이는 이집트 미술의 전통적인 모티프인 '적을 내리치는 파라오'로, 왕의 절대적인 무력과 신의 대리자로서의 권위를 과시하는 전형적인 선전(Propaganda) 예술이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이집트 파라오가 신성한 힘을 상징하는 곤봉을 치켜들고, 무릎 꿇은 이방인 포로들의 머리채를 움켜쥐며 적을 제압하는 장면이다. 이는 이집트 미술의 전통적인 모티프인 '적을 내리치는 파라오'로, 왕의 절대적인 무력과 신의 대리자로서의 권위를 과시하는 전형적인 선전(Propaganda) 예술이다 / 사진: 한민광 제공


화공의 붓끝은 아무족의 낯선 문화를 폄하하지 않고 그 개성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데 집중했다. 이집트인들의 단순하고 단정한 흰색 ‘린넨(Linen)’ 의상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이방인들의 화려한 패턴 의상, 그들 특유의 뾰족한 수염과 독특한 헤어스타일, 그리고 그들이 다루는 이국적인 무기나 악기 등은 놀라울 정도로 정밀하고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러한 ‘타자(他者)에 대한 세밀한 관찰’과 ‘형식의 개방성’은 아메넴하트가 다스렸던 지역이 얼마나 국제적이고 포용력 있는 사회였는지를 증명한다. 더 나아가, 낯선 문화의 특징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화폭에 수용한 베니 하산의 진취적인 예술 정신은, 수백 년 뒤 아케나톤이 기존의 폐쇄적인 관습을 타파하고 국제적인 감각의 새로운 예술 양식(아마르나 미술)을 확립하는 데 심리적, 미학적 영감을 제공하는 중요한 역사적 이정표가 된다.

▲ 이집트와 주변국 간의 활발한 교류를 상징하는 사절단의 행렬 장면이다. 다양한 문화가 어우러진 이 벽화는 시대를 관통하는 공존의 가치를 현대까지 전한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이집트와 주변국 간의 활발한 교류를 상징하는 사절단의 행렬 장면이다. 다양한 문화가 어우러진 이 벽화는 시대를 관통하는 공존의 가치를 현대까지 전한다 / 사진: 한민광 제공


무덤 묘실의 마지막 장면은 아메넴하트가 꿈꿨던 세계가 단지 자신의 영토에 머물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여러 민족이 섞여 예물을 운반하는 행렬은 당시 이집트가 누렸던 국제적 권위와 번영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다양성 속의 통일성’은 베니 하산 미술이 지닌 가장 선구적인 지점이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삶의 모든 순간을 예술로 승화시키려 했던 그의 노력, 그리고 타인을 향한 자애로움을 통치의 근간으로 삼았던 한 인간의 진심이 이 벽화 속에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베니 하산의 암굴을 내려오며 우리는 깨닫는다. 아케나톤의 아마르나 예술은 갑작스러운 돌연변이가 아니라, 아메넴하트와 같은 선구자들이 닦아놓은 자연주의적 토대 위에서 피어난 결과임을 말이다. 4,000년 전의 붉은 벽화는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말을 건넨다. 진정한 예술은 형식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진실을 포착하는 데 있음을… 

아메넴하트가 자신의 묘실 벽면에 정성스레 새겨 넣은 그 붉은 색채들은 나일강의 노을처럼 여전히 선명하게 빛나며 인류가 지향해야 할 진정한 정의와 공존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묵직한 울림으로 전하고 있다. 그의 공간은 시간이 멈춘 암굴이 아니라 영원히 흐르는 인간 존엄의 서사시라 불러야 마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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