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한스경제 고예인 기자 | 삼성전자 노사 갈등이 정부 개입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초유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중앙노동위원회가 다시 한번 사후조정 재개를 요청한 데 이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까지 공개적으로 “파업만은 막아야 한다”며 긴급조정권 가능성을 언급하면서다. 그러나 노조는 성과급 제도화 없이는 추가 협상에 응할 이유가 없다며 기존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중앙노동위원회는 삼성전자 노사에 오는 16일 사후조정 재개를 공식 요청했다. 중노위는 “노사 간 입장 차이를 자율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진정성 있는 대화와 실질적인 교섭의 자리를 다시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사후조정은 노사 양측이 요청하거나 한쪽 요청에 상대방이 동의하는 경우 진행된다. 노동위원회가 필요성을 인정해 권고할 수도 있다. 앞서 삼성전자 노사는 지난 11~12일 이틀간 중노위 중재 아래 마라톤 협상을 벌였지만 끝내 합의에 실패했다. 협상은 17시간 넘게 이어졌으나 13일 새벽 노조 측이 협상장을 떠나면서 결렬됐다.
협상 결렬 이후에도 정부와 회사는 대화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연이어 손을 내밀고 있다. 삼성전자 사측은 이날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과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에 ‘노사 간 추가 대화를 제안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공문을 발송했다.
회사 측은 공문에서 “중노위 사후조정 과정에서 노사 양측이 각자의 의견을 전달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며 “노사가 직접 대화를 이어가길 제안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노조는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사후조정 노측 대표 교섭위원을 맡았던 최승호 초기업노조 위원장은 “성과급 제도화와 투명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대화할 이유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회사가 제대로 된 안건을 가져온다면 들어볼 생각은 있다”며 협상 가능성을 완전히 닫지는 않았다.
◆ “파업은 막아야”…정부까지 긴급조정권 언급
현재 최대 쟁점은 성과급 지급 구조다. 노조는 반도체(DS) 부문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 재원으로 고정 지급하고 현재 ‘연봉 50% 상한’을 폐지해 제도화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반면 회사는 기존 경제적부가가치(EVA) 기반 OPI(초과이익성과금) 체계를 유지하되 DS 부문에 특별 포상을 추가 지급하는 선에서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양측 입장 차가 좁혀지지 않으면서 삼성전자 창사 이후 최대 규모 총파업 현실화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노조는 요구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오는 21일부터 다음 달 7일까지 18일간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이번 사태는 단순 노사 갈등을 넘어 국가 산업 리스크로까지 번지는 분위기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날 SNS를 통해 “파업만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며 긴급조정권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김 장관은 “이번 사안의 중대성과 상상하기 어려운 파급효과를 고려할 때 어떠한 경우에도 파업은 막아야 한다”며 “만약 파업이 발생한다면 긴급조정도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긴급조정권은 노동쟁의가 국민경제를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을 때 고용노동부 장관이 발동할 수 있는 권한이다. 발동 시 노조는 30일간 모든 쟁의행위를 중단해야 한다.
정부가 삼성전자 노사 갈등에 사실상 공개 경고 메시지를 내놓은 것은 그만큼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이 한국 경제와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큰 데다 AI 반도체 패권 경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생산 차질이 현실화될 경우 국가 경쟁력에도 직접적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이다.
◆ HBM·AI 경쟁 속 ‘삼성 리스크’ 번지나
실제 업계 안팎에서는 총파업이 현실화될 경우 단순 생산 차질을 넘어 연구개발(R&D) 일정 지연과 고객사 대응 차질 그리고 평택·화성 사업장 운영 리스크까지 복합적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차세대 AI 반도체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개발·검증 일정이 흔들릴 경우 글로벌 고객사 신뢰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재계 관계자는 “과거 제조업 파업은 생산라인 중단이 핵심이었다면 지금 반도체 산업은 연구개발과 고객 대응 속도가 경쟁력”이라며 “AI 시대 반도체 시장은 하루만 늦어도 시장 주도권이 흔들릴 수 있는 구조”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갈등이 삼성 내부 보상 체계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 폭발한 결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DS 부문 직원들 사이에서는 SK하이닉스 등 경쟁사 대비 보상 수준이 부족하다는 인식이 강한 반면 회사는 대규모 반도체 투자와 업황 변동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결국 이번 사태는 ‘AI 반도체 전쟁’ 한복판에서 삼성의 경쟁력과 조직 안정성을 동시에 시험하는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노사 모두 명분 싸움에 집중할 경우 갈등 장기화가 불가피한 만큼 시장에서는 결국 어느 한쪽의 양보가 아닌 새로운 절충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Copyright ⓒ 한스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