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나이지리아, 잇단 반이민 시위에 남아공 내 자국민 대피계획 발표
세계 최고 수준 실업률 등 경제 불만이 이민자에게로 표출 분석
(요하네스버그=연합뉴스) 나확진 특파원 = "우리가 무슨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겁니까? 남아공 사람들은 에티오피아인이 여기서 하는 작은 상점 같은 것을 자기가 하고 싶은 건가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대학을 나와 남아공 여성과 결혼해 요하네스버그에서 개인 사업을 하는 가봉 국적의 넬슨 트레저(39)는 남아공에서 또다시 강하게 표출되고 있는 외국인 혐오에 대해 13일(현지시간) 기자에게 이렇게 반문했다.
2010년 처음 남아공에 온 그는 "남아공 사람들이 본질적으로 외국인 혐오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면서도 2~3년에 한 번씩은 자신과 같은 이민자에 대한 혐오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넬슨의 말처럼 최근 남아공에서는 행정수도 프리토리아나 최대도시 요하네스버그 등 주요 도시에서 외국인 불법 체류자를 겨냥한 시위가 잇달아 벌어져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의 우려를 사고 있다.
'마치 앤드 마치'(행진과 행진)로 이름 붙여진 이번 시위에서 이민자 반대 단체 관계자들은 "우리나라의 경제적 자유를 이용하는 외국인들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자신들을 '외국인 혐오'로 규정하지 말라는 게 이들의 입장이다. 남아공인으로서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고, 남아공인을 우선하라고 요구할 뿐이라는 주장이다.
시위가 벌어지는 곳 주변에서는 폭력 사태를 우려해 문을 닫는 상가가 많다. 여러 명이 외국인으로 보이는 이를 둘러싸고 적법한 체류 권한을 증명하라고 요구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소셜미디어에 올라오기도 했다.
한국을 비롯해 여러 나라 대사관은 홈페이지 등을 통해 시위 상황을 전달하며 자국민에게 군중이 밀집한 장소를 피하라고 알렸다.
특히 가나와 나이지리아 정부는 자국 주재 남아공 대사를 불러 외국인 혐오를 막아달라고 항의 의사를 전달한 데 이어, 남아공에 있는 자국민을 긴급 대피시키기 위한 계획도 밝혔다.
사무엘 오쿠제토 아블라콰 가나 외무장관은 엑스(X·옛 트위터)에 "존 마하마 대통령이 남아공에 있는 국민 300명의 긴급 대피 계획을 승인했다"며 최근의 외국인 혐오 공격에 따라 고통받는 가나인이 그 대상이라고 적었다.
나이지리아 정부도 남아공에서 귀국을 원하는 자국민 130명을 항공편으로 긴급 대피시키겠다는 계획을 지난 3일 밝힌 바 있다.
남아공의 외국인 혐오는 백인의 흑인에 대한 분리·차별을 뜻하는 아파르트헤이트와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볼 수 있는 흑인의 백인 적대시와는 또 다른 문제다.
남아공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인터넷 사이트 '사우스아프리칸 히스토리온라인'(SAHO)에 따르면, 이 같은 외국인 혐오는 남아공에서 소수 백인 정권이 끝나고 흑인 정권이 출범한 1994년 무렵부터 본격화된 것으로 보인다. 외국인 혐오 맥락에서는 남아공 내 백인은 외국인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반면 짐바브웨, 말라위, 콩고 등 주변 아프리카 국가 이민자들이 이러한 혐오의 주된 타깃이다. 이민자 반대단체들은 주변국 이민자들이 남아공 흑인들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주장으로 혐오 공격을 정당화한다.
남아공 주요 민족집단인 줄루나 코사족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이 공격받기도 하며, 때로는 '피부색이 너무 어둡다'는 이유로 외국인으로 몰려 공격받은 남아공인도 있다고 한다.
30여년간 남아공의 외국인 혐오 문제가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원인으로는 30%가 넘는 세계 최고 수준의 실업률과 극심한 빈부격차, 범죄에 대한 불안, 공공서비스 부족 등이 꼽힌다.
남아공 정부 발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실업률은 32.7%로 더 악화했다.
이런 상황에서 가난한 흑인 주민들의 분노가 정치권이나 경제 구조보다는 오히려 취약한 외국인 이주민에게 향하고 있으며, 선거를 앞둔 정치권에서 이를 조장한다는 시선도 있다. 남아공은 올해 말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다.
물론, 전반적으로 취약한 아프리카의 경제 상황 탓에 가장 산업화한 남아공으로 주변국 이주민이 지속해 유입되는 것도 사실이다.
현재 남아공 내 외국인 합법 체류자만 해도 전체 국민의 5% 정도인 300만명이다. 불법 체류자 수를 합하면 이보다 훨씬 많은 이주민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경제 상황 등에 대한 분노가 외국 이주민을 향하고 집단행동과 폭력으로까지 이어질 경우, 남아공이 오랫동안 비판해온 인종차별과는 다른 형태의 갈등이 불거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아파르트헤이트를 극복하며 인종차별 철폐와 화해의 상징으로 불렸던 남아공이 이제는 같은 아프리카인들을 배척하는 나라로 비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아프리카 각국의 시선은 점점 싸늘해지고 있다.
ra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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