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선경그룹이 선경반도체를 띄우자마자 별안간 2차 오일쇼크가 터졌다. 오일쇼크 충격파는 전방위적이었는데, 특히 당시 폴리에스터 필름 개발과 관련해 자금난을 겪고 있던 선경그룹은 부담이 더 컸다. 선경반도체는 2년도 채 지나지 않은 1980년 9월 정부의 대기업집단 주력기업 전문화 정책에 따라 계열기업 정리대상 업체로 선정되면서 사실상 경영이 어려워졌고, 이듬해 7월 결국 문을 닫았다.
◇최태원의 반도체 ‘뚝심 투자’
“오랜 꿈이 드디어 이뤄졌다.”
최태원 회장은 2011년 12월 하이닉스반도체 인수 확정 직후 임직원들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반도체업계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적자에 빠져있던 하이닉스를 꼭 인수해야 하는가를 두고 SK그룹 내부 경영진조차 반대 의견이 더 많았다”고 전했다. SK텔레콤이 하이닉스 매각 3차 공고에 인수의향서를 제출할 당시인 2011년 7월 D램 가격은 사상 최저치로 떨어질 정도로 업황은 최악이었다. 2011년 3분기와 4분기 분기 영업적자는 각각 2909억원, 1065억원에 달했다. 그럼에도 최 회장은 반도체의 미래를 확신하며 “무슨 일이 있어도 인수한다”며 결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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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를 기점으로 SK하이닉스의 공격 투자가 본격화했다. 2013년까지 3조원대에 머물렀던 연간 투자금액을 꾸준히 늘리더니 2017년(10조3000억원) 이후로는 10조~20조원을 투자했고, 인공지능(AI) 특수를 누린 지난해에는 30조2000억원을 쏟아부었다. SK하이닉스는 공식 출범한 2012년 2270억원 연간 영업적자를 낼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지만, 14년 만인 지난해 47조2060억원으로 영업이익을 늘렸다. 올해는 200조원 중후반대 전망치가 나올 정도다.
재계 한 고위인사는 “SK그룹의 네 차례 퀀텀점프를 상징하는 시기는 1980년 석유화학, 1994년 이동통신, 2012년 반도체, 2025년 AI”라고 말했다.
◇글로벌 시총 톱10 진입 가능성
SK하이닉스가 올해 국내 증시를 이끄는 ‘국민주’로 급부상한 것은 이같은 SK그룹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엠피닥터에 따르면 SK하이닉스 시가총액은 올해 1월 5일 500조원을 돌파했고, 넉달 후인 이달 4일에는 1000조원을 넘어섰다. 이후 이달 내내 주가가 폭등해 무려 1400조원대까지 찍었다. AI 시대 ‘게임체인저’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비롯한 메모리 제품들의 경쟁력이 월등한 덕이다. SK그룹 편입 직전인 2011년 당시 시총이 13조원대였던 만큼 지금의 성장세는 격세지감이라고 부를 만하다.
더 주목받는 것은 경쟁사들과 비교한 시총 증가 속도다. 특히 파업 리스크에 빠진 삼성전자를 제치고 사상 첫 국내 시총 1위에 오를 수 있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한 금융시장 인사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SK하이닉스 시총 규모는 삼성전자보다 5~10배는 더 작았다”며 “놀라울 정도의 추격 속도”라고 했다.
컴퍼니스마켓캡 집계를 보면, SK하이닉스 시총은 이날 기준 전 세계 14위다. 사상 첫 1조달러 돌파와 12위 월마트, 13위 버크셔해서웨이 역전이 가시화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올해 전례 없는 역대급 실적을 근거로 사상 첫 글로벌 톱10 진입을 점치는 전문가들도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 씨티증권은 최근 SK하이닉스의 목표주가를 310만원으로 높여잡았다. 현재 주가와 시총을 감안하면, 주가가 300만원을 넘어설 경우 시총은 1조5000억달러를 훌쩍 넘어설 수 있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이는 현재 9위 테슬라, 10위 메타 등과 비슷한 수준이다.
산업계와 SK하이닉스 내부에는 메모리 업황 전망의 불확실성 탓에 ‘장밋빛’ 전망을 경계하는 기류도 일부 있지만, 아직까지는 메모리 초호황을 점치는 이들이 훨씬 더 많다.
김동원 KB증권 리서치본부장은 “지금까지 AI는 예고편에 불과하다”며 “본편은 이제부터 시작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향후 AI 시장은 클라우드 중심의 서버 AI를 넘어 온디바이스 AI와 피지컬 AI로 확장되면서 훨씬 더 폭넓은 성장 경로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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