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과의 전쟁' 실행 두테르테 최측근, 의사당서 피신하다 잠적
'최소 32명 살해' 반인도적 범죄 혐의…"의회가 사격장으로 전락"
(하노이=연합뉴스) 박진형 특파원 = 필리핀 상원에서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대통령 최측근 의원의 국제형사재판소(ICC) 체포영장 집행을 둘러싸고 여러 발의 총격이 발생한 사건 와중에 해당 의원이 체포를 피해 상원 밖으로 달아났다.
존빅 레물라 필리핀 내무부 장관은 14일(현지시간) '마약과의 전쟁'과 관련해 ICC 체포영장이 발부된 로널드 델라 로사 상원의원이 이날 새벽 마닐라 수도권의 상원 의사당을 빠져나갔다고 밝혔다.
두테르테 전 대통령과 가까운 앨런 피터 카예타노 상원의장도 델라 로사 의원이 더 이상 상원 구내에 없다고 확인했다.
카예타노 의장은 그가 도망친 것이 아니라 떠나기로 선택한 것이라면서 그의 행동은 불법이 아니라고 말했다.
또 자신은 ICC 체포영장을 인정하지 않고 필리핀 법원이 발부한 체포영장만 인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전날 오후 델라 로사 의원이 ICC 체포영장 집행을 피하기 위해 피신해 있던 상원 의사당에서 총성 여러 발이 울려 건물 내 인원들이 급히 대피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은 총격에 따른 사상자가 없었고 이 사건에 정부는 관여하지 않았다면서 진상 조사를 지시했다.
경찰 당국은 델라 로사 의원의 탈출을 은폐하기 위해 총격 사건이 조작됐을 가능성을 포함해 여러 의혹에 대해 수사를 진행 중이다.
그가 의사당을 빠져나가는 데 총격 사건에 따른 혼란이 도움이 된 것으로 보인다고 AP 통신은 전했다.
경찰은 현장에서 수거한 자동소총 탄창과 탄피, 폐쇄회로TV(CCTV) 영상 등을 근거로 최소 30발의 총격이 있었다고 보고 있다.
로미오 브라우너 주니어 필리핀군 합참의장과 대통령실에 따르면 총격은 상원 경비대 소속 요원들이 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또 국가수사국(NBI) 소속 운전기사 1명을 체포했는데, 그는 상원 경비대원이 먼저 발포한 뒤 총을 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지난 11일 ICC는 델라 로사 의원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했다고 발표했다.
ICC는 델라 로사 의원이 두테르테 전 대통령 아래서 경찰청장으로 일하던 2016년 7월부터 2018년 4월까지 최소 32명을 살해한 반인도적 범죄 혐의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두테르테 전 대통령이 벌인 마약과의 전쟁을 실제로 실행한 최측근 인사다.
작년 11월 이후 ICC의 체포 가능성을 우려해 잠적한 델라 로사 의원은 지난 11일 카예타노 의원의 차를 타고 상원 의사당에 돌연히 나타났다.
의사당 계단을 오르던 델라 로사 의원을 NBI 요원들이 발견, ICC 체포영장 집행을 시도하자 그는 의사당 안으로 달아나 두테르테 측 의원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체포에 저항해왔다.
같은 날 델라 로사 의원을 포함해 상원 24명 중 과반인 13명을 확보한 두테르테 측은 전격적으로 표결에 나서 비센테 소토 현 상원의장을 해임하고 카예타노 의원을 상원의장으로 선출, 상원 지도부를 장악했다.
델라 로사 의원은 전날 페이스북에서 "두테르테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로 또 다른 필리핀 국민이 (ICC가 있는) 헤이그로 끌려가는 것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또 "정부가 나를 외국인에게 넘겨서는 안 된다는 뜻을 제복을 입은 동료들이 표명해야 한다"면서 사실상 군경에 마르코스 정부에 맞서 저항할 것을 촉구했다.
하지만 브라우너 합참의장은 "우리는 오직 우리의 임무에만 집중하고 정치는 정치인들에게 맡겨야 한다"면서 군이 이번 사건과 거리를 두고 있다고 밝혔다.
마르코스 대통령 진영과 두테르테 전 대통령 진영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리사 혼티베로스 상원의원은 성명에서 이번 사건에 대해 "안타깝게도 국민의 집이자 법이 만들어지고 권리가 수호되는 신성한 공간인 상원이 사격장으로 전락했다"면서 "우리나라 역사상 최악의 사건"이라고 개탄했다.
또 "이 모든 것은 단지 법의 심판을 받기 싫어하는 사람 때문"이라면서 "그게 전부"라고 덧붙였다.
이번 상원 총격 사태는 마르코스 대통령의 권위에 심각한 도전이 되고 있다고 로이터 통신은 관측했다.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필리핀 남부 다바오 시장과 대통령으로 재직하던 2013년∼2017년 마약 관련 범죄자 수십 명이 살해된 사건 등에 연루된 혐의로 작년 3월 ICC 체포영장에 따라 마닐라에서 체포돼 ICC가 있는 네덜란드 헤이그로 압송됐다.
이후 ICC 구금센터에 구금된 상태로 지난해 10월 ICC에 의해 기소됐고 ICC는 지난달 그의 혐의와 관련해 '충분한 근거'가 인정된다면서 재판 회부를 결정했다.
jh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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