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실크로드, 지구 반바퀴] ‘티무르 제국’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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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실크로드, 지구 반바퀴] ‘티무르 제국’ 유적

경기일보 2026-05-14 19:39:4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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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선 심산기념사업회장·前 관세청장

 

사마르칸트는 13세기 칭기즈칸이 철저히 파괴해 현재의 유적은 14세기 정복자 티무르가 약탈한 재화로 만든 것이다. 사마르칸트 역사와 유적을 설명해 줄 로디나양을 문화 유적 해설자를 고용해 설명을 들었다.

 

한국 사람은 우즈베키스탄의 국민 영웅 티무르에 익숙하지 않다. 티무르는 사마르칸트에서 70㎞ 떨어진 시골에서 태어난 쇠락한 몽골 귀족의 아들이다. 원나라와 몽골제국이 쇠락해 가기 시작하는 1336년 태어나 중앙아시아, 이란, 중동지역, 남러시아 등을 정복한 마지막 유목민 영웅이다. 명나라를 침략하러 가다 1405년 병사했다. 우즈베크인이 자랑하는 국민 영웅이다.

 

사마르칸트는 정복자 티무르는 정복지에서 데려온 장인, 예술가, 건축가들을 동원해 재정적 후원으로 멋진 건축물을 많이 지었다. 티무르는 준 문맹(文盲)임에도 유명한 학자들을 불러 토론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티무르는 소련시대에는 인민을 착취하는 사람으로 폄하되다 1991년 우즈베크 독립 후 영웅으로 다시 숭배되고 있다. 레닌 동상을 허물고 티무르 동상을 많이 건립했다. 티무르 영묘는 청록색 타일로 멋있게 지었다. 청색은 우주의 중심인 하늘과 해가 뜨는 동쪽을 상징한다. 종교적 염원이 있는 색이다. 여성은 티무르 묘지 입장시 치마를 입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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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무르 묘지 내부. 작가 제공

 

티무르 묘에는 티무르보다 1년 먼저 죽은 사랑하는 장손자, 티무르의 두 스승, 티무르 등 5명의 관이 있다. 묘지 건설은 일찍 죽은 장손자의 묘지로 시작했는데 티무르가 1405년 사망하자 합장했다고 한다. 중앙 검은색 관이 티무르 묘다. 전설에 의하면 티무르는 자기 묘를 파손하는 사람에게 큰 재앙을 내리겠다는 저주를 했다고 한다. 러시아 과학자가 1941년 티무르의 관을 열어 진짜 티무르인지를 확인했다. 티무르는 청년 시절 양을 도둑질하다 오른발을 다쳐 절름발이가 됐는데 다리뼈 확인 결과 오른발 절름발이가 맞음을 확인했다. 티무르의 저주 때문인지는 몰라도 묘지 개봉 1년 후 1942년 스탈린이 믿었던 동맹국 독일의 히틀러가 소련을 침공하는 제2차 세계대전 독소전쟁이 발발했다.

 

레기스탄 광장 주변에 우아한 색깔의 타일로 만든 세 개의 ‘마드라사(대학)’ 건물이 화려하고 웅장하다. 마드라사는 수십개의 교실과 기숙사가 위 아래층 붙어 있는 왕립대학 건물이다. 과거 교실인 1층의 기념품 가게, 학생 기숙사였던 2층은 가게의 창고로 쓰이고 있다. 마드라사 건물 벽 오른쪽에 불교를 상징하는 만(卍)자 문양, 호랑이 등에 탄 부처 얼굴, 연꽃 모양 장식이 있다. 건축가가 종교 간 화합의 목적으로 설치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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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기스탄 광장의 3개 ‘마드라사’ 건물. 작가 제공

 

8세기 이전은 사마르칸트 등 중앙아시아 지역은 모든 종교가 자유롭게 허용됐다. 조로아스터교, 불교, 마니교, 기독교, 유대교 등 세계의 종교 백화점이었다. 630년경 현장 스님이 천축으로 가던 때에는 불교 사원과 승려가 많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이슬람 사원 외 다른 종교 유적은 거의 없다.

 

비비하눔 모스크는 엄청난 규모로 14세기 건축 당시 최대 1만명이 예배를 봤다고 한다. 티무르의 부인인 비비하눔은 티무르보다 6세 연상의 부인으로 칭기즈칸의 손녀다. 티무르는 쇠락한 몽골의 작은 귀족 가문 출신이다. 티무르가 유목사회의 정복자로 명성을 얻은 후에도 칸(왕)은 칭기즈칸 후손을 명목상 세우고 본인은 칸에 오르지 않았다. 칭기즈칸 혈족은 ‘황금 가문’으로 칸은 칭기즈칸의 피를 받은 사람이 했다.

 

티무르는 아미르(영주, 제후) 신분으로 제국을 통치했다. 칭기즈칸의 손녀인 비비하눔과의 결혼은 티무르의 정통성 확보에 기여했다고 한다. 티무르는 칭기즈칸 손녀인 연상의 비비하눔을 50대 후반 늦은 나이에 부인으로 맞이하고 고귀한 집안과의 결혼을 매우 명예스럽게 생각했다고 한다.

 

비비하눔 모스크는 건설 과정에 건축가와 비비하눔의 애절한 로맨스 때문에 유명하다. 티무르가 원정을 가면서 비비하눔을 이슬람 사원의 공사 책임자로 임명했다. 그런데 건축가가 비비하눔을 사모해 공사를 지연시켰다. 건축가는 비비하눔에게 자기에게 키스를 해 주면 빨리 완공하겠다고 제안한다.

 

티무르가 귀환했을 때 키스 소문을 듣고 건축가는 사형에 처하고 비비하눔도 자살하도록 강제했다는 전설이다. 이런 전설 때문에 사원의 명칭을 비비하눔 모스크로 부르고 있다.

 

샤히힌다 공동묘지는 티무르의 후궁, 딸, 귀족 및 장군의 부인 묘지다.

 

당시 장례 풍속은 아내는 남편과 합장을 못 했다. 왕비, 후궁, 귀족 여성을 위한 묘지를 별도로 만들었는데 매우 아름다운 건축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청색, 하늘색, 감청색 등 아름다운 타일로 만든 수십개의 묘지가 멋진 예술품이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유적으로 불리는 인도 무굴제국의 타지마할 묘는 몽골족인 티무르의 자손이 세운 왕비 묘다. 샤히힌다 묘지를 보면서 인도 타지마할 묘는 사마르칸트에 있는 몽골족 조상의 묘지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인도 무굴제국의 건국자는 티무르의 고손자다. 티무르 고손자 바브르의 자손은 북부 인도를 정복하고 인도에 무굴제국을 건설했다.

 

세계 역사의 아이러니 중 하나가 독재자가 사후(死後) 궁전으로 만든 묘지가 현대의 후손에게 관광자원으로 돈을 벌어주고 있다는 점이다.

 

역사상 많은 독재자는 죽은 다음에도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한 대규모 묘지 공사를 했다.

 

서안의 진시황제 묘지, 사마르칸트의 티무르 묘지, 인도의 타지마할 묘지, 스페인 프랑코 총통 묘지 등은 인류의 문화유산 또는 관광자원으로 후손을 먹여 살리고 있다.

 

티무르가 정복지에서 약탈한 재화로 건설한 관광유적은 티무르 사후 700년 후 우즈베크인을 먹여 살리고 있다. 우즈베크인들이 티무르를 국부(國父)라고 부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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