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노동조합이 예고한 총파업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은 파업에 대비해 반도체 생산량을 축소하는 비상관리 단계에 돌입했다.
오는 21일로 예고된 파업이 현실화되면 대규모 인력 부족으로 인해 파업 이후 설비를 가동하더라도 품질 문제가 생길 수 있어 미리 설비 라인을 제한하며 대비에 나선 것이다. 이로 인한 피해액은 100조 원으로 추산돼 파업 이전부터 손실이 현실화 됐다.
20일로 예정된 법원의 위법 파업행위 금지 가처분 신청이 인용되더라도 그간의 생산 라인 제한으로 인해 최소 10~20조 원의 손실이 예상돼, 글로벌 공급망은 물론 국가 경제 전반에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이날 노조는 사측의 대화 제안에 대해 협상 재개를 위한 성과급 제도화를 요구하며 15일 오전 10시까지 대표이사가 직접 답하라는 최후통첩을 날렸다.
삼성, 파업 대비한 비상관리 돌입으로 생산라인 제한 조치
14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DS 부문은 오는 21일로 예고된 파업 개시를 일주일 앞두고 이날부터 생산라인을 조정하는 사전 조치에 착수했다.
생산라인 초입에 투입하는 신규 웨이퍼 수량을 제한하고 단가가 높은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최신 공정 위주로 제품 구성을 재편하는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파업에 돌입한다면 인력 부족으로 인해 품질 관리가 어려울 것으로 보고 사전에 생산 라인을 제한했다.
노조에 따르면 이날을 기준으로 파업 참가 의사를 밝힌 인원은 4만3286명이다. 실제 파업에 돌입하면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대규모 셧다운이 불가피한 상황으로, 24시간 초정밀 공정이 쉬지 않고 이어지게 설계된 반도체 공장은 작업이 한 번 멈추면 대규모 피해가 발생한다.
반도체 생산에 있어 품질 결함 발생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전반에 막대한 피해를 줄 수 있어 파업 일주일을 앞두고 삼성전자가 반도체의 품질 관리를 위해 선제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반도체 제조의 핵심 재료인 웨이퍼는 변질·부패가 빨라 장당 수천 만 원인 웨이퍼를 전량 폐기해야 한다. 단순히 생산량 감소에 따른 손실뿐만 아니라 폐기해야 하는 원재료부터 파업 이후 라인 재가동을 위한 사후 안정화 작업 등을 고려한다면 파업 기간 18일이 아닌 한 달 이상 생산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보인다.
1대당 최대 5000억 원에 이르는 반도체 설비는 전원 종료 이후 재가동까지 수개월의 시간이 걸리며 내부 세척과 재정비 등 즉시 가동이 불가능하다.
실제로 2007년 삼성전자 기흥 사업장은 4시간 정전으로 약 400억 원의 피해가 발생했고 2018년 평택 사업장도 30분의 정전 동안 500억 원 상당의 피해를 입어 파업 이후 정상화까지 수십 조 원의 비용이 들어갈 전망이다.
삼성전자 평택 사업장의 경우 생산라인 1개당 협력사를 포함해 약 3만 명의 일자리를 책임지고 있어 파업 여파는 협력사에도 미칠 것으로 예측된다.
중노위 "16일 사후조정 재개하자"…사측 "직접 대화" 제안
삼성전자는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 주관의 사후조정이 노조의 결렬 선언으로 종료된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하며 이날 노조 측에 공문을 보내 직접 대화를 공식 제안했다.
정부 중재로 인한 사후조정 절차 종료 이후에도 자율 교섭을 통해 임금협상을 매듭짓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으로 보인다. 중노위 역시 오는 16일 사후조정 재개를 권고하며 이례적인 재중재에 나섰다.
삼성전자는 이날 초기업노조 삼성전자지부 및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에 '노사 간 추가 대화를 제안 드린다'라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했다. 지난 11~12일 진행된 사후조정 과정에서 노조가 결렬을 선언하며 협상이 중단된 지 이틀 만에 나온 첫 공식 행보다.
정부도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의 총파업에 따른 국가 경제 위기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중노위도 이날 노사 양측에 오는 16일 사후조정 회의를 다시 열자고 요청했다.
이미 한 차례 결렬된 사후조정을 정부가 먼저 나서 다시 권고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로, 노사 갈등 장기화가 산업 전반 및 국가 경제에 미칠 파급력을 우려한 조치로 풀이된다.
정부는 이번 사안을 개별 기업의 갈등을 넘어 국가적 사안으로 보고 노조의 태도 변화를 촉구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날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제38회 한국노사협력대상' 시상식 참석에 앞서 뉴시스와 만난 자리에서 "계속 대화로 해결해야 한다"며 협상 재가 필요성을 강조했다.
공적 중재기구의 절차 결렬 후 사측이 다시 손을 내밀었다는 점과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으로 돌려줄 것을 요구하며 비반도체 인원을 제외하는 등 노노 갈등도 고조된 시점에서 결국 사태 해결의 핵심은 노조의 협상 테이블 복귀에 달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노조 "15일 10시까지 대표이사가 직접 답하라" 통첩
성과급 제도 개선 등 핵심 요구안에 대한 전향적인 입장 변화 없이는 대화에 응할 수 없다며 정부와 사측의 대화 제안을 거부했던 노조는 이날 오후 사측에 공문을 보내 자신들의 요구안을 주장하며 "5월 15일 오전 10시까지 대표이사가 직접 답변해달라"고 최후통첩 했다.
노조는 이날 사측에 발송한 공문에서 "진심으로 노사 간 대화를 원한다면 핵심 안건에 대한 구체적인 안을 제시하기 바란다"며 안건으로 '성과급(OPI) 투명화', '성과급 상한 폐지', '이에 대한 제도화' 등을 요구했다.
노조는 "위 안건에 대한 사측의 확실한 대화의 의지가 확인되면 노조는 대화에 임할 것"이라며 "이에 대한 답을 가지고 5월 15일 오전 10시까지 대표이사가 직접 답변해달라"고 전했다. 안건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사실상 파업 수순으로 가겠단 의지를 재차 밝힌 셈이다.
앞서 최승호 초기업노조 위원장은 "성과급 제도화와 투명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대화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노조는 영업이익 15%의 성과급 배분, 연봉의 50%인 성과급 상한 폐지, 이들 요구의 제도화를 요구하고 있다.
사측은 제도화 할 경우 미래 투자 여력 감소, 사업부 간 보상 격차 확대, 타기업에 미칠 여파 등 부작용을 야기한다는 입장이어서 대화가 공전하고 있다.
최승호 노조위원장, 정부 중노위 공식 조정 절차 비판
노조 대표로 사측과 정부 협상을 주도하고 있는 최승호 초기업노동조합 위원장이 중노위 공식 조정 절차에 대해 "헛소리, 글러 먹었다"는 비하 발언을 쏟아낸 사실도 확인됐다.
총파업에 대해 정부는 물론이고 사회 각계의 우려가 확산된 와중에 조합원 내부 의견을 다시 한 번 수렴하자는 중노위 제안에 대한 강력한 거부 의사를 내부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노조 내부에서는 노노갈등으로 인해 논란이 있었던 최 위원장의 '마이웨이'식 태도에 대한 비판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노위는 지난 13일 최종 결렬된 사후조정에서 기존 경제적 부가가치 기준의 초과이익성과금 제도를 유지하되 반도체(DS) 부문에 대해 특별 포상을 추가 지급하는 검토안을 제시했다. 특별 포상은 반도체 부문이 매출과 영업이익 업계 1위를 달성할 경우 영업이익의 12%를 공통 7, 사업부별 3으로 배분하자는 내용이다.
중노위는 해당 검토안을 최승호 위원장이 거부하자 '조합원 투표에 부쳐볼 수 있지 않느냐'고 제안했지만 최 위원장은 이후 이를 공개하면서 들 과정을 공개하면서 "헛소리, 글러 먹었다"라는 반응을 보인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최 위원장은 노사 사후조정이 최종 결렬된 직후 조합원 온라인 커뮤니티 대화방에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잠정합의 안 하더라도 조합원 투표를 올리면 안 되냐는 헛소리를 했습니다. 그냥 글러 먹었습니다'는 비난 글을 올렸다.
이번 발언을 두고 재계 안팎에선 국가 경제에 미칠 충격 최소화를 위해 밤샘 조정을 이끈 정부 기구의 권위를 무시했다는 지적과 함께 합리적인 대화와 타협을 이끌어야 할 노조 대표가 공적 조율 과정을 폄하하고 '헛소리'로 치부해 노조가 사회적 책임이나 대화를 통한 협상 의지를 보이지 않고 이익만을 관철하려 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민노총 "파업은 헌법이 보장한 권리, 긴급조정권 반대"
일각에서는 삼성전자 파업을 막기 위해 정부가 '긴급조정권'을 발동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이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은 "긴급조정권 여론몰이를 중단하라"며 정부 개입에 반대했다.
긴급조정권은 쟁의행위가 국민의 일상을 위태롭게 하거나 국민 경제를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을 때 고용노동부 장관이 발동할 수 있는 절차다. 발동할 경우 30일간 쟁의행위가 금지되고, 중노위 조정 및 중재절차가 진행된다.
민노총은 14일 성명을 통해 "삼성전자 노동자들의 쟁의행위에 대해 재계와 보수언론, 학계에서 긴급조정권 발동을 거론한다"며 "노동자의 헌법상 권리를 경제 논리로 위축시키는 시도에 단호히 반대한다"고 전했다.
이어 "단지 산업 규모가 크고 국가 경제에 중요하다는 이유만으로 노동자 단체행동권을 제한하는 논리가 허용되면 앞으로 자동차·조선·철강·배터리 등 국가 전략 산업 전반에서 노동자의 합법적 파업이 언제든 국가 개입 대상이 될 것"이라며 "이는 헌법이 보장한 노동 3권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선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민노총은 긴급 조정권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중대한 위험이 발생하는 예외적 상황에서만 제한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노동자의 파업은 헌법이 보장한 정당한 권리다. 정부는 노동권 제한 가능성을 둘러싼 무책임한 여론몰이를 방치하지 말고, 노사 자율 교섭 원칙에 따라 교섭을 통한 원만한 해결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적극 나서라"고 요구했다.
국힘, 파업 앞두고 '국민배당금' 비판의 연장선으로 활용
국민의힘은 이번 사태를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언급한 '국민배당금' 비판의 연장선으로 활용하며 정부가 나서 파업을 막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1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수십조 손실을 불러올 삼성전자 파업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그런데도 이재명은 '수금 욕심'밖에 없다. 김용범의 '국민배당금'이 바로 이재명의 본심"이라며 "초과이윤이든, 초과 세수든, 이재명이 잘해서 번 돈이 아니다. 애당초 이재명과 민주당은 숟가락 얹을 자격도 없다"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불과 3~4년 전 세계적인 반도체 불황으로 엄청난 적자를 기록할 때 국민의힘이 반도체 산업을 살리기 위해 'K-칩스법'을 추진하자 민주당은 '재벌특혜'라며 악착같이 반대했다"며 "우리당이 끝까지 노력해서 'K-칩스법'을 통과시키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올라탈 수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초과 세수가 발생하면 빚부터 갚아야 한다. 긴축재정이 포퓰리즘이라는 가당치도 않은 궤변으로 국민을 속이려 들지 말고 '국민배당금'에 헛물켤 것이 아니라 삼성전자 파업부터 막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우재준 국민의힘 청년최고위원은 성과급 요구 파업 예고에 대해 "성과급은 근로 제공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임금이 아니기에 임단협 의제로 보기 어렵다는 대법원 판례와 학계 시각도 존재한다"고 설명하며 "노란봉투법 개정으로 노조가 사업상 판단에도 영향을 미칠 여지가 생긴 반면 현재까지도 교섭 주체와 의제에 대한 지침은 명확히 마련되지 못했기에 이러한 파업 도미노 현상이 벌어진 것"이라고 비판했다.
[폴리뉴스 김성지 기자]
Copyright ⓒ 폴리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