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이 인공지능 전환(AX)과 희망퇴직을 확대하는 동시에 기업금융 베테랑 재고용도 늘리면서 금융권 인력 전략이 '디지털화'와 '인적 네트워크 강화'라는 두 흐름으로 동시에 재편되고 있다. 단순 반복 업무는 AI로 대체하면서도, 기업금융처럼 사람 관계와 현장 경험이 중요한 분야에서는 오히려 퇴직 인력을 다시 불러들이는 구조가 확산되는 모습이다.
14일 각 은행 공시와 은행연합회 등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5대 은행은 올 1분기에만 총 574명의 퇴직 직원을 재채용했다. 지난해 연간 재채용 규모는 1057명, 2024년에는 1067명 수준이었다. 올핸 1분기만에 예년의 절반을 넘긴 것이다.
반면 희망퇴직 규모는 계속 커지고 있다. 올해 초 5대 은행 희망퇴직자는 총 2364명으로 집계됐다. 은행권이 AI 전환과 비대면 영업 확대를 추진하면서 점포·창구 인력을 줄이는 흐름이 이어지는 가운데, 동시에 특정 분야에서는 다시 사람을 채용하는 '이중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재채용의 핵심은 기업금융이다. 은행권의 재고용 대상 상당수가 기업금융지점장(RM) 출신이다. 최근 부동산 대출 규제로 주택담보대출 성장성이 둔화되자 은행들이 중소기업·법인영업 확대에 다시 집중하면서, 지역 네트워크와 거래처 인맥을 보유한 베테랑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기업금융은 결국 사람 장사 성격이 강하다"며 "오랫동안 거래한 기업 대표와의 신뢰 관계, 지역 상공인 네트워크, 업종별 분위기 같은 건 데이터만으로 대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기업금융은 개인대출과 달리 재무제표만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영역이 많다. 오너 성향, 거래처 관계, 지역 평판, 업황 분위기 등 비재무 정보가 중요한 데다, 거래 성사 자체가 사람 네트워크 중심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아 AI 대체가 상대적으로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은행권에서는 '1인 지점장(PRM)' 모델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PRM은 별도 점포 없이 기업 영업만 전담하는 형태다. 지난 2019년 iM뱅크가 수도권 기업금융 확대를 위해 처음 도입한 이후 최근에는 시중은행까지 확산되는 분위기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PRM 조직을 기반으로 강북BIZ어드바이저센터를 신설했고, NH농협은행도 올해 초 기업금융전문역(PRM) 제도를 도입했다. KB국민은행 역시 퇴직 직원 중심의 '중소기업(SME) 현장지원팀'을 운영 중이다.
은행 입장에서는 비용 효율 측면에서도 유리하다. 희망퇴직으로 고정 인건비를 줄인 뒤 필요한 분야만 계약직·성과형으로 재고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주요 은행 영업이익경비율(CIR)은 지속 하락 중이다. 각 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하나은행 CIR은 39.6%, KB국민은행은 40.7%, 신한은행은 41.8%로 모두 전년 대비 개선됐다. CIR은 총영업이익 대비 판매관리비 비중을 의미하는 대표적 비용 효율성 지표다.
은행권 안팎에서는 AI 투자 비용이 계속 늘어나는 상황에서 은행들이 전체 인력을 예전처럼 유지하기는 어렵고, 핵심 영역만 선택적으로 사람을 남기면서 나머지는 디지털화하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은행권 내부에서는 앞으로 조직 구조 자체가 바뀔 가능성도 거론된다. 과거처럼 정규직 중심 폐쇄형 조직보다 프로젝트형·성과형 인력이 늘어나고, 기업금융 분야는 외부 네트워크 기반 플랫폼형 조직으로 재편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다만 부작용 우려도 존재한다. 베테랑 인력 의존도가 높아질 경우 세대교체 지연과 내부 승진 적체 문제가 심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최근 은행권에서는 'N번 퇴직'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하며 재고용 구조가 제도화되는 흐름에 대한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예전에는 희망퇴직이 사실상 완전 퇴장이었다면 이제는 필요할 때 다시 불러 쓰는 구조가 자리잡고 있다"며 "앞으로 은행 인력 구조도 평생직장 개념보다 프로젝트형·성과형 중심으로 점점 바뀔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이연호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Copyright ⓒ 비즈니스플러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