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임규리 인턴기자】“아버지, 어머니. 두 단어를 쓸 수 있게 된 게 제일 좋지.”
한평생 가슴에 배움의 한을 품고 살아온 이들이 내뱉는 소박하고도 묵직한 진심. 그 마음이 모여 밤마다 불을 밝히는 곳이 있다.
회기역 1번 출구에서 도보 14분. 끝없이 이어진 오르막길 위로 전진 신호가 켜진 듯한 초록색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배움의 앞에 멈춰 서 있던 모든 이들을 위한 야간학교 ‘상록야학’이다. 이곳은 정규 교육과정을 밟지 못한 만학도들이 검정고시 합격과 졸업장 취득을 목표로 공부하는 일종의 대안학교다.
상록야학의 교육과정은 초등 1년, 중·고등 각 2년으로 구성돼 있다. 최근에는 졸업생을 위해 다도부터 생활 AI(인공지능)까지 아우르는 ‘열린 강좌’를 개설했다. 상록야학만의 ‘대학교 교양수업’인 셈이다.
현재 학교에는 45명의 교사와 90여명의 학생이 속해있다. 열린 강좌 수강생까지 더하면 매주 300여명이 이곳을 드나든다. 개교 이래 배출한 졸업생만 약 8000명. 연 2회 치르는 검정고시 합격률은 100%에 육박한다.
고단한 생업과 뒤늦은 학업을 병행하는 학생들이 이토록 높은 성취를 이뤄내는 비결은 무엇일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해 기자는 지난 4일 이곳에서 1·2교시 수업을 연달아 청강하며 노동절 연휴도 잊은 학생들의 뜨거운 일과를 함께했다. 그 첫 수업은 노호연(33) 교사가 이끄는 중학교 1학년 반의 수학 시간이었다.
오후 7시의 ‘피타고라스 정리’ 수업
1교시 수업을 듣기 위해 찾은 중학교 1학년 반 교실. 책상 위 각자의 이름 스티커가 붙어있었고 볼펜으로 자그마한 낙서가 그어져 있었다. 의자마다 주인의 취향이 묻어나는 형형색색의 방석과 담요도 놓여있었다.
교실 앞 게시판에는 지난 체육대회에서 거둔 우승 상장이 위풍당당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기자를 만난 학생들은 마치 여고생처럼 상장을 가리키며 그날의 활약을 자랑했다. 칠판 옆 시간표와 청소 당번표까지 이곳은 영락없는 ‘학교’였다.
고된 일과를 마치고 교실에 들어온 이들은 각자의 고단함을 잠시 내려놓은 채 배움이라는 공통분모 안에서 온전한 학생이 됐다.
“차렷, 선생님께 인사.”
오후 7시 20분, 수업 종이 울리자 학생들의 우렁찬 인사가 교실을 채웠다. 노 교사는 출석을 부른 뒤 칠판 앞 휴대폰의 화면 녹화 버튼을 눌렀다. 노씨에 의하면 매주 생업 등으로 결석한 학생들을 위해 밴드(SNS) 업로드용 영상을 찍는다.
“벌써 내신고사가 2주 남았네요. 그렇다면 오늘 배울 내용은 시험 범위에 들어가겠군요. 180페이지 펼칠게요.”
‘내신’과 ‘시험 범위’ 단어에 다른 곳을 보던 학생들도 서둘러 책장을 넘겼다.
이날 수업 주제는 피타고라스 정리의 응용이었다. 노 교사가 도형을 그리며 “양변의 비율이 각각 5와 12일 때 나머지 변은 몇이죠?”라고 묻자 학생들은 입을 모아 “13이요”라고 외쳤다. 묻고 답하는 쌍방향 소통이 끊이지 않는 수업이었다. 노 교사는 “학생분의 학구열이 높아 질문 하나에도 반응이 뜨겁다”고 설명했다.
문제의 난도가 높아 예상치 못한 답이 나왔을 땐 교실 이곳저곳에서 학생들의 탄성이 들렸다. 그럴 때마다 학생들은 고개를 숙여 필기하거나 빨강, 노랑, 초록의 라벨스티커를 책에 붙이며 문제에 표시를 해뒀다. “이 부분은 근래 검정고시에 자주 출제된다”는 노 교사의 말에는 학생들은 칠판과 책 사이로 눈을 바삐 옮기며 공식을 중얼거렸다. 시험을 앞둔 교실의 흔한 풍경이었다.
중1반 반장 여변숙(69)씨는 “요양사 일과 공부를 병행한다”면서도 “공부가 너무 재미있어 학교에 오지 않을 수 없다”며 웃었다.
이런 열의는 교사에게도 수업의 원동력이 된다. 무보수임에도 3년째 강단을 지키는 노 교사는 “수업 자체가 즐거워 지치지 않는다”며 수업 직후임에도 여전히 반짝이는 눈으로 답했다. 나이 차에서 오는 어려움을 묻자 그는 “처음엔 조심스러웠지만 학생들의 깊은 이해심과 좋은 수업 태도 덕분에 오히려 배우는 점이 많다”며 미소를 띠다.
40분의 수업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학생들은 교과서를 정리하거나 앞부분을 펼쳐 복습에 들어갔다. 교실을 나서는 기자에게 두유를 건네는 손길에서 학생들의 정(情)과 온기가 느껴졌다.
시험 끝난 고3 교실, 야학에선 무얼 하나
2교시에는 윤다영(33) 교사가 담당하는 고등학교 3학년 도덕 수업에 들어섰다.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학생들의 모습에선 앞선 중학 반과는 또 다른 여유가 느껴졌다. 지난 4월 검정고시를 치른 직후라 마치 수능이 끝난 고3 교실을 보는 듯했다.
수업 종이 울리자 윤 교사는 칠판에 ‘제미나이 사용법’이라고 적었다.
“오늘은 생성형 인공지능 제미나이를 활용해 가짜 뉴스를 판별하는 방법을 배울거예요.”
윤 교사에 따르면 상록야학은 검정고시가 끝난 뒤에도 학생들의 연령대와 수요에 맞춰 다양한 실무 실습을 이어간다.
수업에서는 9개의 기사 제목이 적힌 유인물이 학생들에게 전달됐다. “이중 가짜 뉴스가 있다”는 윤 교사의 말에 교실 여기저기서 놀라움 섞인 탄성이 터져 나왔다. 곧이어 학생들이 직접 스마트폰으로 제미나이를 켜서 기사의 진위를 판별하는 실습이 시작됐다. 디지털 기기가 낯설 법도 하지만 학생들은 익숙하게 인공지능에 질문을 던지며 진실을 가려냈다.
윤 교사는 “어르신들과 어울리고 싶어 야학에 발을 들이게 됐다”며 “이곳은 현실과 다른 차원의 공간 같다. 틀에 박힌 세상에 있다가도 이곳에 오면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수업에 몰입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직장 생활과 야학 수업을 병행하는 고단함에 대해서는 “물리적으로는 힘들지만 정신적으로는 문제가 없다”며 “학생들의 뜨거운 학구열에서 얻는 보람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삶의 위안”이라고 덧붙였다.
연필 꽉 쥔 손으로 써보는 ‘어머니’
같은 시간 초등학교 반에서는 김희란 교사가 국어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자음을 바꿔가며 새로운 글자를 만드는 시간이었다. “깔때기가 아니라 깔대기가 맞아요”라는 교사의 설명에 학생들은 “평생 깔때기인줄로만 알고 써왔는데 이제야 제대로 쓸 줄 알게 됐다”며 좋아했다. 취재 중 마주한 수업 중 속도는 가장 느렸지만 학생들의 손에서 연필이 떨어지는 법은 없었다.
맨 앞에 앉아 연신 큰 소리로 대답하던 김순호(72)씨는 “우리 모두 배움이 힘든 시기에 태어나 한평생 일만 하고 살았다”며 “배움에 한이 맺혀 이곳을 찾았다”고 털어놨다. 평생 건설 현장에서 육체노동을 해왔다는 그는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자 자식들이 가장 기뻐한다며 웃어 보였다.
그에게 무엇이 가장 좋으냐고 묻자 “아버지, 어머니. 이 두 단어를 쓸 수 있게 된 게 제일 좋지”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의 묵직한 진심에 공감하듯 교실에는 잠시 정적이 흘렀다.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책상 앞에 앉은 이들에게 그 두 단어의 무게는 남다를 터였다.
지금은 거리의 간판을 읽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는 김씨는 졸업 후 목표를 묻는 말에 “배움 그 자체가 목표지. 서울대 갈 것도 아니고”라고 소박하게 답했다. 옆자리 학생의 “서울대 가면 되지!”라는 장난 섞인 말에 교실은 이내 웃음바다가 됐다.
수업이 끝나자 기자의 손에는 또다시 비타민 음료가 쥐어졌다. 기자의 가방은 이미 학생들이 건넨 떡과 과일, 두유, 비타민 음료로 가득 차 있었다. 배움의 허기를 채우러 온 이들이 도리어 기자의 마음을 넉넉히 채워주고 있었다.
스승과 제자가 함께 뿌리 내린 ‘상록수’
쉬는 시간 학교의 심장부인 교무실을 찾았다. 단칸방보다 작은 크기의 공간은 긴 책상 하나와 컴퓨터, 프린터 한 대만으로도 이미 공간이 꽉 차 있었지만 사람들의 발길은 쉼 없이 이어졌다. 교사들은 이곳에서 짧은 숨을 고르며 수업 자료를 출력했고 학생들은 직접 챙겨온 떡이나 과일을 내밀며 감사를 표했다. 게시판에 붙은 “부족한 저희를 가르치느라 고생하시는 선생님, 맛있게 잡수세요”라는 고등반 학생의 쪽지가 눈길을 끌었다.
취재 중 만난 교사들은 한결같이 밝은 모습으로 기자를 맞았다. 절반 이상이 직장 생활과 야학 수업을 병행하고 있었지만 그 동력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입을 모아 “재미있어서”, “뿌듯하니까”라는 대답을 자연스럽게 꺼내 놓았다.
노 교사는 “나 말고도 훌륭한 선생님들이 정말 많다”며 몸을 낮추면서도 “처음엔 그저 ‘좋은 일 해보자’는 마음으로 왔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학생들은 물론 동료 교사들의 열정적인 삶의 태도에서도 많은 것을 배운다”고 고백했다.
상록야학의 학교명은 소설 <상록수> 에서 왔다. 일제강점기의 시련 속에서도 교육의 끈을 놓지 않았던 주인공 영신의 모습처럼 언제나 푸른 꿈을 간직하라는 염원이 담겼다. 거친 땅에 깊게 뿌리 내린 상록수처럼 이곳에서의 배움은 주는 이와 받는 이 모두의 삶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상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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