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기상청이 올해 여름철 평균기온이 평년보다 높을 것으로 전망한 가운데, 정부가 폭염을 ‘기후 재난’으로 규정하고 대응 체계를 강화하고 나섰다. 다만 건설·물류·배달 등 야외 노동 현장에서는 휴식권 보장이 여전히 현실의 벽에 가로막힐 가능성이 큰 만큼 이번 대책이 실제 작업중지와 휴식 보장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린다.
14일 정부 발표를 종합하면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는 전날 여름철 노동자 건강 보호를 위한 ‘폭염 대비 노동자 건강보호 대책’을 마련해 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서 노동부는 폭염으로 인한 건강장해를 예방하기 위해 산업안전보건법과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을 개정하고 ‘체감온도 33도 이상 작업 시 2시간마다 20분 이상 휴식 부여’ 등 사업주의 보건 조치를 법제화한 바 있다. 더 나아가 이번 대책을 통해 폭염 취약노동자의 온열질환 예방을 위해 가용한 행정력을 총동원하겠다는 구상이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지난 12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무회의 겸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2026년 여름철 자연 재난 대책’을 보고 받고 “폭염에 따른 노동자 산재 사망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기상청이 올해 여름철 평균기온이 평년보다 대체로 높을 것으로 전망하면서 폭염 대응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여름철 평균기온은 25.7도로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평년(1991~2020년) 평균기온이 23.7도였던 것과 비교하면 상승세가 뚜렷하다. 기상청은 올해 역시 여름철 평균기온이 평년보다 높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실제 여름철 평균기온은 2023년 24.7도, 2024년 25.6도, 지난해 25.7도로 매년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폭염으로 인한 산업재해도 증가하는 추세다. 최근 5년간(2021~2025년) 온열질환 산업재해자는 총 228명으로 집계됐다. 연도별로는 2021년 25명에서 2022년 29명, 2023년 33명, 2024년 70명, 지난해 71명이다.
업종별로는 건설업이 106명(46.5%)으로 가장 많았으며 이어 제조업 33명(14.5%), 시설관리업 23명(10.1%) 순이었다. 특히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서 발생한 온열질환자가 162명으로 전체의 71%를 차지해 영세 사업장을 중심으로 폭염 대응 사각지대가 큰 것으로 분석됐다.
이에 노동부는 기상청이 올해부터 극단적 고온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폭염중대경보’를 새롭게 도입함에 따라 폭염 단계별 작업중지 기준을 보다 구체화해 현장 대응을 강화하기로 했다.
먼저 체감온도 33도 이상인 폭염주의보 단계에서는 작업 시간 조정이나 옥외작업 단축을 권고하고 체감온도 35도 이상인 폭염경보 단계에서는 오후 2시부터 5시 사이 야외작업 중단 조치를 시행하도록 할 방침이다. 특히 체감온도 38도 이상인 폭염중대경보가 발령되면 긴급·필수 작업을 제외한 옥외작업 전면 중지를 취하도록 명시했다.
또 폭염경보 상황에서 야외작업 중 온열질환 사망사고가 발생할 경우 즉시 작업중지 명령을 내리고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여부에 대해 강도 높은 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사업주에게는 시원한 물과 냉방설비, 보냉 장구 등을 의무적으로 제공하고 노동자들이 2시간마다 20분 이상 휴식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등 ‘폭염안전수칙’ 준수 의무가 부여된다. 노동부는 사업장 자체 점검을 유도하는 한편, 전국 1000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폭염 특별감독도 실시할 예정이다. 이는 지난해보다 약 30% 확대된 규모다.
폭염 대응 여력이 부족한 영세 사업장 지원도 확대한다. 정부는 올해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 이동식 에어컨 등 냉방장비를 지원하는 사업 예산으로 지난해보다 80억원 늘은 280억원을 편성했다. 온도계와 생수 등 폭염 대응 물품 지원에도 15억원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다만 현장에서는 업무에 대한 압박, 인력 부족, 작업중지 결정 권한의 불명확성 등으로 인해 폭염 대책이 실제 노동자 휴식권 보장으로 이어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이 지난해 7월 건설노동자 976명을 대상으로 사흘간 폭염 대응 실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폭염특보 발령 시 이 같은 휴식이 잘 지켜지고 있느냐’는 질문에 42.7%만 잘 지켜지고 있다고 답했으며 ‘보통’은 24.5%, ‘잘 지켜지지 않는다’는 32.9%였다.
일하는 현장에 충분히 쉴 공간이 부족하거나 없다는 응답은 57.2%를 차지했다. 8.9%는 폭염에 물조차 제공받지 못한다고 답했다.
폭염으로 작업중단을 요구한 적 있느냐는 질문에는 80.3%가 요구한 적 없다고 답변했다. 그 이유로는 ‘현장에서 쫓겨날까봐’가 28.8%로 가장 많았다. 그다음으로는 ‘재량껏 쉬어서’(28.3%), ‘요구해 봐야 안되니까’(20.5%) 등이었다. ‘더워도 일해야 하니까’라는 체념적인 응답도 20%로 집계됐다.
또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이 2024년 이동노동자 1198명 대상으로 진행한 ‘기후재난 시기 이동노동자 작업중지권 보장 촉구 및 현장 노동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최근 2년간 여름철 폭염 시 온열질환 및 건강 이상을 겪은 노동자는 85.1%(1019명)이었다.
위협을 느꼈음에도 작업을 중단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 노동자들은 ‘이후 누적될 물량이나 실적’이라는 응답을 37.8%(453명)로 가장 많이 지목했다. 이어 ‘수익의 감소(37.8%·425명)’, ‘계약해지 가능성(6.3%·76명)’ 등의 답변이 뒤를 이었다.
이에 노동계에서는 폭염 관련 정부 대책이 현장에서 제대로 실행되기 위해서는 불법도급 금지, 폭염으로 인한 임금손실 보전 제도화, 정부 당국의 관리감독 강화 등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산업안전보건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 택배나 배달 같은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들은 폭염 대응 매뉴얼과 안전관리 체계, 재난 시 작업 중지권 보장 등 실효성 있는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오민규 연구실장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현재 폭염 대책은 사실상 ‘작업하지 말라’는 수준의 온도 기준 제시에 머물러 있을 뿐 현장에서 이를 어떻게 촘촘하게 이행할지에 대한 구체적 방안은 다소 부족한 상황”이라며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의 경우에도 책임이 개인에게 전가되는 구조가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폭염이나 폭우가 극심한 시간대와 사고 다발 시간대에 대한 데이터를 활용해 경보·알림 시스템을 실질적으로 작동시키고 기업들도 이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며 “노동부의 관리·감독도 중요하지만 결국 현장을 바꾸는 주체는 노사다. 양측은 사업장별 위험성 평가를 통해 어떤 위험을 줄이고 어떤 작업을 제한할지 노사가 함께 안전 체계에 대해 협의하는 자리가 마련돼야 한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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