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재한 항공·방산 전문기자] 전쟁과 지정학적 긴장이 해저로 확산되면서 해저 케이블과 에너지 인프라가 국가안보의 핵심 자산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따라 해저 인프라를 보호·감시하고 파손 시 즉각 수리할 수 있는 관련 특수선과 해양 감시 장비 시장 확대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단순 통신시설 아니라 ‘국가안보 자산’
14일 국제전기통신연합(ITU)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국제 데이터 트래픽의 99% 이상이 해저 케이블을 통해 이동하고 있다. 금융 거래와 클라우드 서비스, 군사 통신, 국가 행정망까지 사실상 바다 밑 케이블에 의존하는 구조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해저 인프라 위협 사례가 잇따르면서 해저 케이블은 단순 통신 시설이 아닌 국가안보 자산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발트해다. 지난 2022년 노르트스트림 가스관 폭발 이후 발트해에서는 해저 통신 케이블과 에너지 인프라 손상 사례가 반복적으로 발생했다.
이에 북대서양조약기구 나토(NATO)는 지난해 1월 발트해 해저 인프라 보호를 위한 감시·경계 활동인 ‘발틱 센트리(Baltic Sentry)’를 시작했다. 이를 위해 나토는 발트해에 함정과 초계기, 감시 자산 운용 등을 확대한다고 밝혔다.
유럽연합(EU)도 대응을 강화하고 있다. 유럽집행위원회(EC)는 지난 2월 6일 발표한 ‘해저 케이블 보안 툴박스(Submarine Cable Security Toolbox)’를 통해 신규 케이블 노선 확대와 수리 역량 확보, 감시 체계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특히 유럽집행위는 2026~2027년 약 3억4700만유로를 디지털 백본 인프라와 스마트 케이블 프로젝트에 투입하기로 했다.
미국 역시 지난 3월 ‘전략적 해저 케이블 법안(Strategic Subsea Cables Act of 2026)’이 하원에 발의되는 등 입법 대응에 나선 상태다. 이 법안은 해저 케이블을 단순 통신망이 아니라 국가 전략 인프라로 보고, 미 정부가 외교·제재·정보공유·국제협력을 총동원해 보호 체계를 만들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 케이블선 시장 확대…수리선 수요 증가
해저 케이블은 선박 닻과 어업 활동, 해저 지진, 외부 충격 등으로 지속적인 손상 위험에 노출된다. 국제케이블보호위원회(ICPC)에 따르면, 전 세계 해저 케이블 장애는 연간 150~200건 수준으로 발생하고 있다. 문제는 수리 역량 부족이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상업용 해저 케이블 총연장은 170만km 이상에 달한다.
이에 따라 국제 공조 움직임도 확대되고 있다. 지난 2월, 포르투갈 포르투에서 열린 ‘제2차 국제 해저 케이블 회복력 서밋’에서는 70여개국 대표단이 공동 유지보수 체계 구축 필요성을 담은 ‘포르투 선언문’을 채택했다. 아울러 EU도 지난해 긴급 투입용 ‘EU 케이블 선박 예비대(EU Cable Vessels Reserve)’ 구축을 제안한 바 있다.
해저 인프라 보호 움직임은 곧바로 특수선 수요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핵심은 케이블 부설선(CLV)과 케이블 수리선이다. 시장조사업체 코히런트 마켓 인사이트(Coherent Market Insights)에 따르면 글로벌 해저 케이블 부설선 시장 규모는 2026년 약 64억3000만달러(약 8조8000억원)로 추산된다. 해당 시장은 연평균 7.7% 성장해 오는 2033년에는 약 2배인 108억1000만달러(약 16조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아울러 최근 유럽 해상풍력 확대와 국가 간 전력망 연결 사업도 시장 성장 요인으로 꼽힌다. 해상풍력 단지와 육상을 연결하는 초고압직류송전(HVDC) 케이블 수요가 늘면서 관련 설치·유지보수 시장도 함께 확대되는 구조다.
◇ K조선, 특수선·해양감시 시장 기회되나
업계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국내 조선·해운업계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기존 상선 중심 시장에서 벗어나 고부가 특수선 시장으로 영역을 확대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해저 케이블 부설선은 고난도 선박으로 분류된다. 파도와 조류 속에서도 정밀한 위치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고급 정밀 위치 제어(Dynamic Positioning) 시스템과 대형 케이블 저장 설비, 해저 작업 장비 등이 필요하다.
업계에서는 국내 조선사들이 LNG선과 해상풍력 설치선(WTIV), 해양플랜트 분야에서 축적한 기술력이 경쟁력이 될 수 있다는 평가다. 실제로 LS마린솔루션은 지난해 6월 아시아 최대급 HVDC 해저 케이블 포설선 건조 계약을 체결했다. 대한전선은 충남 당진에 케이블 공장을 운영하며 해저 시공 역량 확대에 나서고 있다.
다만 국내 조선업계에서는 시장 규모가 아직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케이블 부설선은 특수 목적 선박 특성상 발주량 자체가 많지 않고, 국내 대형 조선소 입장에서 시장 규모가 크지 않은 편”이라고 평가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최근 해저 케이블 관련 시장이 주목받으면서 관련 사업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면서 대신 “아직 본격적인 사업화 단계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전문가는 해저 케이블 보호 시장이 단기간에 대형 상선 시장으로 확대되기는 어렵지만, 안보와 에너지 인프라 중요성이 커지면서 관련 특수선과 유지보수 시장의 전략적 가치는 점차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Copyright ⓒ 이뉴스투데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