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중 인플루엔자(독감) 감염이 자녀의 염증성 장질환 발병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국내 연구진이 250만 명이 넘는 아동 데이터를 장기간 추적 분석해 확인한 결과로, 산모 감염과 자녀 장 건강 사이의 연관성을 대규모 의료 빅데이터로 입증한 첫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경희대학교 의과대학 연동건 교수 연구팀은 임신 중 인플루엔자 감염이 자녀의 궤양성 대장염 발병 위험을 높인다는 사실을 규명했다고 14일 밝혔다.
이번 연구에는 김현지·박재유 연구원과 최유진 학생이 참여했다. 연구 성과는 소화기학 분야 최고 권위 학술지 가운데 하나인 Gastroenterology 분야 국제학술지 GUT 온라인 5월호에 게재됐다. 해당 저널의 영향력지수(IF)는 26.2다.
연구팀은 2010년부터 2017년 사이 출생한 아동 256만2302명을 대상으로 최대 14년간 의료 데이터를 추적 관찰했다. 분석 대상에는 궤양성 대장염과 크론병 등 대표적인 염증성 장질환(IBD) 발생 여부가 포함됐다.
분석 결과, 임신 중 산모가 인플루엔자에 감염된 경우 자녀의 궤양성 대장염 발병 위험이 33%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유전적 요인과 가족 환경 변수까지 보정한 뒤에도 통계적 연관성이 유지됐다고 설명했다.
위험 증가는 자녀가 7세가 될 때까지 이어지는 경향을 보였다. 반면 같은 염증성 장질환 계열인 크론병과는 유의미한 연관성이 확인되지 않았다. 연구팀은 임신 중 감염이 특정 면역 질환에 선택적으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감염 시점에 따른 차이도 확인됐다. 특히 임신 후기인 3분기에 독감에 감염된 산모의 경우 자녀 궤양성 대장염 위험이 비감염군 대비 약 2배 수준까지 높아졌다. 겨울·봄철 독감 유행기에 감염된 경우에도 자녀 발병 위험이 상승하는 흐름이 관찰됐다.
연구팀은 임신 중 인플루엔자 감염으로 발생한 염증성 사이토카인이 태반을 통과해 태아의 장 점막 면역 조절 체계에 영향을 줄 가능성을 주요 원인으로 추정했다.
박재유 책임연구원은 “크론병은 일반적으로 더 중증 질환으로 인식되지만, 이번 연구에서는 임신 중 독감 감염이 특히 궤양성 대장염 위험과 밀접하게 연결되는 결과가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연동건 교수는 “산모 감염이 자녀 장 건강에 미치는 장기 영향을 임상적으로 직접 검증하는 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며 “이번 연구는 대규모 의료 빅데이터를 활용해 그 연관성을 확인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임신 중 독감 예방접종과 감염 초기 치료가 자녀 염증성 장질환 예방 전략의 하나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연구진은 이번 결과가 ‘연관성’을 보여주는 연구이며, 독감 감염이 궤양성 대장염을 직접 유발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 발병에는 유전, 환경, 장내 미생물, 식습관 등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의료계에서는 최근 소아 염증성 장질환 환자가 세계적으로 증가하는 가운데, 임신 중 환경 요인이 장기 면역 체계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규명하려는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다. 이번 연구 역시 산모 건강 관리가 자녀의 장기 질환 위험과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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