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비를 벌기 위해 공장에서 잠시 일했던 한 영국인 친구의 이야기이다. 어느 날 기계에 이상이 생겨 뜨거운 김이 뿜어져 나오자, 상사는 신입이던 친구에게 손을 집어넣어 기계를 끄라고 지시했다. 친구는 '당연히' 거절했다고 했지만, 이 경험을 떠올리며 말했다. "만약 내가 당장 먹여 살려야 할 가족이 있거나, 저축해둔 돈이 한 푼도 없었다면 그때처럼 단호하게 거절할 수 있었을까?" 위험한 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하는 선택은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며, 정보가 없었던 '무지한 선택'도 아니다.
콜롬비아의 바호 카우카(Bajo Cauca) 지역 여성들이 독성 물질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구조적 문제를 통해 선택에 대해 생각해보자(☞논문 바로가기: 임신 지도를 탐색하여 독성 생식 위험을 이해하기. 바호 카우카 지역의 금광 및 코카 재배 지역에서 독성 오염에 대한 구체화된 경험). 저자는 선주민 여성들과 함께 '임신 지도(Pregnancy maps)' 워크숍을 진행하며 여성들의 몸에 새겨진 오염 물질의 기록을 추적했다. 임신 지도는 연구 참여자들이 월경 주기와 임신 기간 동안 신체를 직접 그림으로 그려 표현한 것이다.
바호 카우카 지역은 수십 년간 지속된 무장 세력 간의 갈등, 금광 채굴과 코카 재배 경제, 그리고 국가의 방치가 뒤섞인 곳이다. 금을 캐기 위해 오랫동안 강물에 쏟아 부은 '수은'이 있고, 코카 작물을 제거하겠다며 공중에서 살포한 '글리포세이트'가 있다. 수은은 강물, 어류, 여성의 모유에서 검출되었다. 글리포세이트는 불임, 유산, 월경 주기 변화 등 여성의 재생산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 연구는 독성 물질의 위험성과 더불어, 코카인과 금광 산업이 여성들의 삶의 방식을 뿌리째 흔들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선주민 여성들은 전통적으로 달의 주기와 강의 조수를 태아의 움직임이나 진통 시기와 연결하며, 자연과 몸을 연결해 이해해왔다. 그러나 금 채굴을 위해 강에 수은을 쏟아붓고 나서부터 이러한 관계는 달라졌다. 과거 삶의 터전이었던 강은 이제 '두렵고 예측 불가능한 공간'이 되었다. 독성 물질은 단순히 생물학적 위험을 넘어, 선주민들이 자연과 맺어온 유대감을 교란하고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환경 오염은 재생산 건강뿐만 아니라 삶의 경로 자체를 왜곡했다. 수은과 글리포세이트는 그 자체로 위험하지만, 더 큰 문제는 지역 사회의 생계 기반이 무너졌다는 점이다. 제초제 살포로 코카 농지가 파괴되자 주민들은 생계 수단이 없어져 강제 이주를 택해야 했고, 이 과정에서 식량과 생계의 불안정을 겪었다.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동안 아이들을 친척에게 맡겨야 했으며, 생계 수단과 동시에 문화적 관습이던 어업의 붕괴는 문화적 단절로 이어졌다. 전통적인 출산을 돕던 선주민 조산사들은 다른 지역이나 도시로 이주하였고, 농업 파괴로 인해 이들이 사용하던 약용 식물 또한 구하기 어려워졌다. 그로 인해 선주민 여성들은 안전하게 출산할 권리와 문화적 관습을 동시에 박탈당했다.
여성들이 독성 물질에 노출되는 것은 '무지함' 때문이 아니라, 가족을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흔히 보건 당국이나 국제기구는 특정 집단이 위험에 취약한 이유를 "잘 몰라서" 혹은 "조심하지 않아서"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저자는 연구에 참여한 여성들이 오염 물질의 위험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고 밝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카 농사나 금광 채굴에 뛰어드는 이유는 그것이 가족을 먹여 살릴 유일한 수입원이기 때문이다. 어머니로서 아이를 굶기지 않아야 한다는 '돌봄의 책임감'이 역설적으로 자신과 아이를 독성에 노출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독성 물질의 위험'보다 '가난한 엄마로 남는 위험'이 훨씬 더 실존적이고 거대한 위협이었다.
이 연구는 보건학적 시선이 특정 집단이 위험 물질에 노출되는 이유를 '개인의 무지와 인식 부족'이라는 기존의 설명에서 '사회적 구조'로 옮겨가야 함을 시사한다.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대안이 없는 구조가 문제라면, 교육과 캠페인은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저자는 독성 위험 속을 위태롭게 헤쳐나가는 행위가 이 지역 여성들에게는 이미 임신과 육아라는 삶의 과정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즉, 건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위험으로 내모는 환경을 먼저 바꿔야 한다는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또한 위험에 노출된 집단의 경험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이들의 경험에서 문제를 해석하고 구성해야 함을 시사한다.
한국의 현실 또한 콜롬비아 여성들의 삶과 닮아있다. 과로로 사망한 쿠팡 택배노동자와 런던베이글 직원이 거절할 수 없는 구조에 내몰렸던 상황을 '개인의 선택이나 부주의'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이들이 위험을 몰라서 용인하거나 그곳에 있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산업재해와 환경 오염 피해는 당장의 생계를 위해 위험을 거절할 수 없게 만드는 열악한 노동 구조에서 비롯된다. 결국 시민의 건강권은 "조심하라"는 훈계가 아니라, 위험한 환경에 대해 '거절'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을 갖출 때 지켜질 수 있다.
*서지 정보
Chiavaroli, C. (2025). Exploring pregnancy maps to understand toxic reproductive risks. Embodied experiences of toxic contamination in goldmining and coca farming communities in the Bajo Cauca region (Colombia). Gender, Place & Culture, 32(7), 1101-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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