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수·이희준의 적대적 공생…'우영우' 이후 ENA 최고 시청률
범인 놓쳤던 30년 세월에 초점…"실제 사건 다룬 작품의 모범 사례"
(서울=연합뉴스) 장진리 기자 = 1986∼1991년 경기도 화성 일대에서 벌어진 연쇄살인 사건은 대한민국 범죄사에서 참혹한 기록으로 남았다.
연극 '날 보러 와요'(1996)와 이를 영화로 각색한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2003) 등 여러 작품에서 미제의 공포로 남아있던 이 사건은 2019년이 돼서야 진범인 이춘재가 잡히면서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으로 불렸다.
현재 방영 중인 ENA 월화드라마 '허수아비'는 이춘재가 잡힌 후 처음으로 이 사건을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살인의 추억'이 포스터에서 "미치도록 잡고 싶었다.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면, '허수아비'가 "드디어 만났다. 그토록 찾아 헤맸던 나의 살인자"라고 범인을 확인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허수아비'는 연쇄살인 사건의 진범을 수사하던 형사가 자신이 혐오하던 검사와 뜻밖의 공조를 하면서 펼쳐지는 범죄 수사 스릴러다.
지난 달 20일 시청률 2.9%(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로 출발한 이 작품은 꾸준한 우상향 그래프를 그리다 이달 6화와 8화가 각각 7.4%까지 상승했다. 2003년 스카이HD로 개국해 2022년 ENA로 리브랜딩한 채널의 전체 시청률을 따져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17.5%·2022) 다음으로 높다.
이러한 상승세에 업계에선 "두 자릿수 시청률은 떼놓은 당상"이라는 조심스러운 예측이 나오고 있다.
23년 전 '살인의 추억'은 범인을 추적하는 데 집중했다. 영화 전반에는 범인을 잡지 못한 시대의 절망이 배었다. 엔딩 장면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한 소녀가 자신이 목격한 얼굴에 대해 "그냥 평범해요"라고 말하자 형사 박두만(송강호 분)은 카메라 밖 진범과 눈을 맞추듯 관객을 빤히 응시했다.
그러나 '허수아비'는 이춘재 검거에 기반해 진범 이용우(정문성)를 처음부터 제시하고 출발한다.
다만 그의 얼굴을 가리고 30년이 지나 범죄학 교수와 수형자로 마주한 강태주(박해수)와 이용우의 대면을 매회 시작과 끝에 배치했다.
실화를 기반으로 했지만 스토리를 현실에만 맡겨두진 않았다.
실제 사건에서 경찰이 범인을 압박하고자 "자수하지 않으면 사지가 썩어 죽는다"는 문구를 써 사건 현장에 세워뒀던 허수아비는 드라마에서 여성을 위협하는 섬뜩한 공포의 이미지로 바뀌었다.
또한 등장인물 모두에게 의심을 심고 불안을 확장해가는 방식은 실화의 무게를 돌파하며 수사물의 쾌감을 안긴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연쇄살인범의 실체에 관해 퍼즐을 맞추듯 구성한 사건이 현실과 가상을 넘나들면서 펼쳐져 훨씬 핍진성 있게 흥미롭다"고 말했다.
수사물을 외피로 한 '허수아비'는 형사 강태주와 검사 차시영(이희준)의 관계를 중심으로 다층적 서사를 쌓아간다.
두 사람은 한때 둘도 없는 친구였으나 가정사로 얽혀 학교폭력의 피해자와 가해자가 된 사이. 증오하던 차시영과 손을 잡아야 하는 강태주는 딜레마에 빠진다. 적인지 아군인지 믿을 수 없는 두 사람의 적대적 공생 관계는 극 초반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허수아비'는 반환점을 돌자마자, 강태주의 친한 친구이자 다른 이름으로 살았던 진범 이용우의 '얼굴'을 공개하고, 왜 30년간 잡지 못했는지를 풀어낸다.
비록 그 과정은 허구지만, 범죄로 삶이 파괴된 사람들의 고통만큼은 현실과 다르지 않다. 강태주도 예외가 아니다. 여동생과 결혼을 약속한 상대는 용의자로 지목돼 모진 고문을 받다 세상을 떠나고, 강태주는 오히려 가혹행위 가해자로 몰린다. 열악한 수사 환경 속 그의 오판은 무고한 사람을 용의자로 몰아넣기도 한다.
허수아비를 쫓다 도리어 허수아비 신세가 된 경찰과 범죄 희생자·유족, 무고한 피해자까지 일상이 무너지는 모습은 드라마가 배경으로 하는 1980년대 혼란상을 각인시킨다.
연출을 맡은 박준우 PD는 "실제 범죄사건을 통해 한국 사회의 특정 시기를 보여주고 싶다는 오랜 꿈을 이뤄준 작품"이라며 "단순히 범인을 잡는 스릴러를 넘어, 30년이란 세월이 당시 사람들과 지금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묻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건의 결말 만큼이나 잘못된 수사 과정에 집중한 '허수아비'의 서사는 작품의 인기 요인으로 꼽힌다.
공희정 드라마 평론가는 "연쇄살인 사건을 다룬 기존 작품은 '범인이 누굴까'를 두고 계속 반전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재미지만, 이 작품은 진범을 잡기까지의 과정이 더 궁금해진다"며 "장르물의 경우 극단적으로 선과 악을 구분해 놓고 권선징악, 복수, 극적 반전을 일반화하지만 '허수아비'는 시청자들을 집중시키는 각각의 사연이 드라마를 살리는 요소"라고 설명했다.
김헌식 평론가는 "이춘재가 잡힌 이후의 이야기를 정리한 것은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시사 프로그램밖에 없었는데, '허수아비'가 극적 재미를 더해 사건을 재구성하고 있다"며 "범인을 등장시켜 그의 입으로 들어보고자 하는 완결성도 시청자들에겐 궁금한 요소"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허수아비'가 실제 사건을 다룬 장르물로서 유의미한 사례로 남을 것이라고 봤다.
김 평론가는 "진범이 잡힌 상황에서 드라마가 접근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실제 사건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모범적인 사례"라며 "이후 이같은 방식과 유사한 작품들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소재 측면에서도 의미 있는 시도"라고 평가했다.
ma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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