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률보다 우방국 우선…글로벌 경제 블록화 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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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익률보다 우방국 우선…글로벌 경제 블록화 가속

이데일리 2026-05-14 06:00:0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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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정윤 기자] “앞으로는 지정학적 조건이 민간과 정부의 투자 방향을 좌우하는 주요 변수로 부상할 것입니다. 국경 간 자본 이동은 감소하고 정치적으로 밀접한 국가 간 자금 이동은 더욱 활발해질 전망입니다.”

생산적 금융 연구의 세계적 석학인 토르스텐 벡 유럽대학연구소(EUI) 금융안정학과 교수는 최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글로벌 자본 흐름은 점점 더 ‘블록 내부’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고 이러한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며 “과거에는 수익성과 효율성이 투자 결정을 좌우했다면 앞으로는 지정학적 조건이 훨씬 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중 전략 경쟁과 공급망 재편, 전쟁과 제재 확산 속에서 글로벌 금융 질서 역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자본이 더 이상 수익률과 효율성만 좇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정치·안보적 이해관계에 따라 재편되기 시작했다는 진단이다. 벡 교수는 금융 역시 중립적인 자원 배분 시스템을 넘어 국가 전략과 권력 경쟁의 일부가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6월 16~17일 서울신라호텔에서 열리는 제17회 이데일리 전략포럼 둘째 날 기조연설자로 나서 ‘권력 재배치와 생산적 금융: 변화하는 글로벌 질서 속 금융시스템의 흐름’을 주제로 발표한다.

토르스텐 벡 유럽대학연구소(EUI) 금융안정학과 교수


◇‘수익률보다 지정학’…자본 흐름의 대전환

벡 교수는 현재 세계 경제가 단순한 경기 변동이 아니라 자본이 움직이는 규칙 자체가 바뀌는 구조적 전환기에 들어섰다고 평가했다. 기업과 정부 모두 투자 결정을 할 때 ‘어느 국가가 정치·안보적으로 가까운가’를 점점 더 중요하게 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는 “국경을 넘는 자본 흐름은 줄고 정치적으로 가까운 국가들 사이의 자금 이동은 늘어날 것”이라며 “이는 과거 냉전 시기와 유사한 블록 형성 흐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 국제통화기금(IMF) 연구에서도 지정학적으로 가까운 국가 간 자본 이동이 증가하는 현상이 확인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벡 교수는 “이는 과거 냉전 시기와 유사한 블록 형성 흐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무역뿐 아니라 금융에서도 세계가 분절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해외 투자에 대한 헤지 수요 역시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벡 교수는 “환율이나 지정학적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위험 회피 거래는 증가할 것”이라며 “반면 국경을 넘는 자산·부채 규모 자체는 줄어드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이 같은 국제 공조 약화는 향후 금융위기 대응 능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는 주요국 공조가 비교적 원활하게 이뤄졌지만 지금처럼 세계가 분열된 상황에서는 공동 대응이 훨씬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벡 교수는 미국 중심 국제금융 시스템의 변화 가능성에 주목했다. 미국이 달러 결제망과 금융 제재를 외교·안보 수단으로 활용하면서 글로벌 금융 시스템의 분절화가 심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그는 “국제 금융은 오래전부터 제재 수단으로 사용돼 왔지만 최근에는 훨씬 더 광범위한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다”며 “제재와 세금, 금융 규제가 지정학적 목표를 위해 사용되는 사례가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이 달러 결제 시스템과 금융 제재를 외교·안보 수단으로 적극 활용할수록 달러 중심 질서에 대한 경계심도 커질 수 있다”며 “앞으로는 미국, 유럽, 중국 등 각 진영 중심으로 통화 체계가 나뉘는 흐름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생산적 금융, 지정학 시대에 더 중요해졌다”

벡 교수는 이런 환경에서 ‘생산적 금융’의 중요성이 다시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생산적 금융은 소비나 부동산 같은 기존 자산 거래보다 유형·무형 자산에 대한 생산적 투자에 자금을 공급하는 금융을 의미한다.

그는 “원래 금융과 성장에 대한 초기 연구들은 생산적 금융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면서도 “많은 선진국에서는 지난 수십 년간 은행 대출이 부동산과 소비 중심으로 흘러간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생산적 금융이 다시 강조되는 이유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유럽 국가뿐만 아니라 선진국들의 성장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여기에 지정학적 긴장과 산업 경쟁 심화가 더해지면서 전략 산업에 대한 장기 투자 필요성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다만 생산적 금융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정부 개입이 지나치게 커질 경우 경쟁력이 낮은 분야로 자금이 쏠리거나 특정 산업·기업에 대한 특혜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동아시아 성장 과정에서는 정부가 생산적 금융을 유도하는 역할을 했고 상당 부분 성공적이었다”면서도 “시장 규율과 정부 지원 사이의 균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가 모든 자원 배분을 직접 결정하는 방식보다는 방향성과 제도적 틀을 제시하고 민간이 실제 투자 결정을 내리는 구조가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한국이 생산적 금융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은행 대출 중심 금융 구조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봤다. 특히 혁신 산업과 스타트업 분야는 안정적인 담보가 부족한 경우가 많아 은행 대출만으로 충분한 자금 공급이 어렵다는 것이다. 벡 교수는 “벤처 캐피털과 자본시장 같은 시장 기반 금융의 역할이 더 중요해질 것”이라며 “생산적 투자로 자금이 흘러갈 수 있는 금융 구조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벡 교수는…

△ 버지니아대 경제학 박사 △ 세계은행 선임 이코노미스트 △ 네덜란드 틸버그대 교수 △ 런던 베이즈 경영대학원 교수 △ 유럽대학연구소 금융안정학과 교수(현) △ 피렌체 은행·금융 연구소 소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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