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고도 못 떠난다”…도마 오른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 이직 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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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고도 못 떠난다”…도마 오른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 이직 제한’

투데이신문 2026-05-13 17:29:2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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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 오후 서울 중구 민주노동조합총연맹에서 고용허가제 20년, 무권리 강제노동, 차별과 착취 피해 이주노동자 증언대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2024년 8월 오후 서울 중구 민주노동조합총연맹에서 고용허가제 20년, 무권리 강제노동, 차별과 착취 피해 이주노동자 증언대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권신영 기자】“힘없고 곤궁한 처지에 있는 이들을 대하는 태도가 사회의 품격을 보여주는 법이다. 생업을 위해 먼 길을 떠난 대한민국 국민이 귀하듯 이주노동자들의 기본적 인권도 지켜져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전남 나주의 한 벽돌제조 공장에서 스리랑카 국적 이주노동자가 지게차에 매달려 이동당한 사건이 알려진 뒤 자신의 SNS에 이같이 밝혔다. 당시 피해 노동자는 벽돌제품에 쓰이는 흰색 비닐로 몸이 결박된 채 지게차에 매달려 이동당하는 등 한국인 관리자에게 가혹행위를 당한 것으로 드러나 공분을 샀다.

대통령의 공개 비판 이후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는 해당 사업장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노동부는 폭행과 직장 내 괴롭힘 여부, 임금체불 등 노동관계법 위반 전반을 들여다봤고, 내국인 관리자에게 과태료를 부과했다.

그러나 노동부의 조치 이후에도 이주노동자를 향한 폭력과 인권침해는 반복되고 있다. 국내 이주노동자들은 고용허가제의 사업장 변경 제한이 유지되는 한 이 같은 문제가 반복될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지난 4월 26일 노동절을 앞두고 열린 집회에서도 이 같은 문제의식은 다시 제기됐다. 당시 참가자들은 모든 이주노동 정책에 앞서 사업장 변경의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기사와 직접 관련이 없는 생성형 AI 제작 이미지.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기사와 직접 관련이 없는 생성형 AI 제작 이미지.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에어건·쇠파이프·박치기...타국에서 맞이한 일터 폭력

이주노동자들이 마주한 일터 폭력은 특정 업종이나 지역에 국한되지 않았다. 지난 2월 20일 경기 화성시의 한 도금업체에서는 대표가 태국 출신 노동자의 신체에 에어건을 분사해 중상을 입힌 사건이 발생했다.

폭력은 기숙사 안에서도 이어졌다. 지난해 11월 경기 화성시의 한 제조업체 기숙사에서는 한국인 관리자가 베트남 국적 노동자의 얼굴을 때리고 수차례 머리를 들이받았다. 피해 노동자는 뇌진탕 등 상해를 입었고 사건은 뒤늦게 알려져 공분을 샀다.

지난 4월 24일 인천 서구의 한 섬유·침구 공장에서는 방글라데시 출신 노동자가 업체 대표에게 뺨을 맞고 머리채를 잡히는 폭행을 당했다. 폭행 장면이 담긴 영상이 공개되면서 노동 당국은 특별근로감독에 착수했다.

공장과 기숙사, 공사 현장을 가리지 않고 반복되는 폭력은 이주노동자가 한국의 일터에서 얼마나 취약한 위치에 놓여 있는지를 드러내는 동시에, 고용허가제의 구조적 맹점을 보여주고 있다.

에어건 분사 사건을 제외한 피해 노동자들은 고용허가제를 통해 국내 사업장에 입국해 일하던 이주민들로 알려졌다. 에어건 분사 피해 노동자는 고용허가제로 입국했으나 사건 당시에는 체류기간 만료로 미등록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2019년 8월 서울 중구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사업장 이동의 자유 및 노동허가제 쟁취를 위한 이주노동자 대회 중 얼음 깨기 퍼포먼스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2019년 8월 서울 중구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사업장 이동의 자유 및 노동허가제 쟁취를 위한 이주노동자 대회 중 얼음 깨기 퍼포먼스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고용허가제에 발 묶인 노동자들...“독소조항 폐지해야”

이 같은 이주노동자 인권침해 논란의 중심에는 고용허가제의 ‘사업장 변경 제한’이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노동계는 해당 조항을 고용허가제의 대표적 독소조항으로 꼽으며 열악한 노동환경에 놓인 이주노동자를 사업장에 종속시키는 구조라고 비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는 지난해 8월 노동부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고용허가제는 노동자가 아닌 사용자를 중심으로 설계돼 이주노동자를 노동력 수급 수단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외국인고용법 제25조 제1항에 규정된 사업장 변경 허용 사유를 전면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주노동자 역시 내국인 근로자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의사에 따라 자유롭게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행 사업장 변경 제한은 헌법상 평등 원칙과 직업선택의 자유에 어긋날 소지가 있으며 부당한 처우나 열악한 노동환경에 놓인 노동자가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수단이 사업장 이동권이라는 것이다.

이주노동자평등연대 정영섭 집행위원도 본보와의 통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자가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생각을 사업주가 갖게 만드는 것”이라며 “그것이 이주노동자를 최소한 인격적으로 대우하게 하는 조건”이라고 했다. 그는 “계약 기간 동안 아무 데도 갈 수 없는 소유물처럼 여겨지면 사업주는 노동자를 함부로 대하게 된다”고 꼬집었다.

정 집행위원은 “현재로서는 사업주에 대한 인권교육조차 의무화돼 있지 않은 상태”라며 노동 당국의 사업주 관리·감독 강화도 주문했다. 이어 “노동부는 이직 제한을 완화할 경우 잦은 이직이 발생할 것이라는 사업주들의 우려에 지나치게 무게를 두고 있다. 이직을 막기 위해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이동 제한이 아니라 근로조건 개선”이라고 말했다.

기사와 직접 관계 없는 자료 이미지.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기사와 직접 관계 없는 자료 이미지.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노동부·법무부 이원화된 관리 체계...인권 사각지대 키운다

노동부는 반복되는 이주노동자 인권침해 사태의 대책으로 ‘외국인력 통합지원 로드맵’을 6월 중 발표할 예정이다. 로드맵에는 산업현장의 인력 수요와 이주노동자 권익 보호 방안을 함께 담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노동계와 이주인권단체 안팎에서는 로드맵의 실효성을 두고 한계가 분명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국내 이주노동자 관리 체계가 노동부와 법무부로 나뉘어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 가운데 상당수는 노동부가 관할하는 고용허가제 아래 있다. 고용허가제는 원칙적으로 자유로운 이직을 제한하지만 폭행·임금체불 등 인권침해가 확인될 경우 사업장 변경을 허용하고 있다. 노동부 역시 인권침해 의심 사업장에 대한 감독과 특별근로감독을 통해 일부 관리에 나서고 있다.

문제는 고용허가제 밖에도 이주노동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계절근로자나 숙련기능인력처럼 법무부 소관 체류 자격으로 국내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고용허가제처럼 노동부가 입국부터 고용, 사업장 변경까지 일괄 관리하는 체계와는 다르게 운영된다. 이 때문에 피해가 발생해도 사업장 정보 파악과 근로감독, 사업장 변경 지원이 제때 이뤄지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계절근로자는 최대 8개월의 단기 체류 자격으로 운영돼 부당한 대우를 당하더라도 문제를 제기하거나 구제 절차를 밟기 쉽지 않다. 농촌 지역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아 외부 지원단체와 연결되기도 어렵다. 이 과정에서 브로커 착취, 인신매매성 노동, 사기 피해 등이 발생해도 피해가 수면 위로 드러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게 현장 활동가들의 설명이다.

지난 12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외국인 고용정책 개선방향 모색을 위한 토론회’에 법무부가 참여하지 않은 점도 이 같은 한계를 드러낸 대목으로 꼽힌다. 이주노동자평등연대 정영섭 집행위원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로드맵에 사업장 변경 완화나 인권 보호 대책이 담기려면 법무부 관할 제도까지 통합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지만 법무부가 관련 권한을 내려놓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 집행위원은 “계절근로, 숙련기능인력 등 법무부 소관 제도는 노동부가 사업장 정보조차 알 수 없어 근로감독도 제대로 하기 어렵다”며 “고용허가제와 사실상 연계된 노동인데도 비자가 바뀌는 순간 노동부 관리 밖으로 빠져나간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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