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진영 기자] 생성형 인공지능(AI) 투자 경쟁이 GPU를 넘어 메모리 반도체 시장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HBM과 서버용 D램, 기업용 SSD 수요가 급증하면서 메모리가 AI 인프라 핵심 병목으로 부상. 글로벌 빅테크들이 장기 물량 확보전에 나서며,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가격 협상력도 커지는 양상이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글로벌 빅테크들은 SK하이닉스에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신규 팹 투자와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구매 비용 지원 등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단순 구매 계약을 넘어 생산능력 자체를 장기 확보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일각에서는 빅테크들이 특정 생산라인을 사실상 ‘전용 메모리 기지’처럼 확보하려는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AI 데이터센터 증설 속도가 메모리 공급 확대 속도를 웃돌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공급 우위 구도가 강해지고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AI 서버에는 GPU뿐 아니라 HBM·고용량 DDR5 서버 D램·기업용 SSD가 함께 탑재되며, AI 모델 규모가 커질수록 데이터를 저장·이동하는 메모리 역할도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AI 서버 확대 흐름 속에서 HBM뿐 아니라 서버 D램과 기업용 SSD까지 수요 증가 효과를 동시에 누리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 공급망을 기반으로 HBM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으며, 삼성전자는 D램·낸드·SSD를 아우르는 포트폴리오를 앞세워 대응 범위를 넓히고 있는 상황이다.
AI 투자 흐름도 GPU 중심에서 메모리·CPU·광통신 등 인프라 전반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최근 뉴욕 증시에서는 AMD·인텔·마이크론·코닝 등 메모리·CPU·광통신 기업들의 주가 상승세가 두드러졌다. AI 시장 중심축이 챗봇에서 AI 에이전트와 실시간 추론 서비스로 이동하면서 메모리와 데이터 이동 인프라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메모리 부족 현상도 HBM에 국한되지 않는 양상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올해 2분기 일반 D램 계약가격이 전분기 대비 최대 63%, 낸드 가격은 최대 75%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AI 서버용 고부가 메모리 생산 확대가 이어지면서 스마트폰·자동차·가전 등에 들어가는 범용 메모리 공급 여력은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형국이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도 최근 실적 발표에서 메모리 가격 상승이 사업에 “점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언급했다. AI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가 일반 소비자 제품 가격에도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 과정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가격 협상 여지도 커지고 있는 분위기다. 고객사들은 장기 공급계약과 선급금, 가격 상·하한 조건까지 협상 테이블에 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메모리 시장이 단기 거래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수년 단위 장기 계약 비중이 확대되는 모습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메모리 업계가 AI 투자 확대를 계기로 기존 경기순환 산업과 다른 흐름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샌디스크와 웨스턴디지털은 수년 단위 장기 공급계약을 확대하고 있으며, 시장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역시 장기 계약 비중 확대 여부에 따라 수익 구조 변화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는 관측이 거론된다.
AI 메모리 확보 경쟁이 격화되면서 생산 안정성 중요성도 확대되고 있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노조 갈등이 장기화될 경우 AI 서버용 메모리 공급 차질 우려가 글로벌 고객사 확보 경쟁의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다만 장기 공급계약 확대가 항상 긍정적이지만은 않다는 시각도 공존한다. 특정 고객사 중심 생산라인 운영이 늘어나면 가격 상승분 반영이 제한될 수 있고, 물량 배분 유연성도 낮아질 수 있어서다. 수익성이 높은 HBM과 서버용 메모리에 생산라인이 집중될 경우 범용 D램과 낸드 공급 부족이 심화될 가능성도 언급된다.
미국의 대중 반도체 규제 속에서도 중국 반도체 기업들이 메모리와 AI칩 국산화에 속도를 내는 점도 변수다. 중국 업체들은 글로벌 공급 부족과 자국 내 대체 수요를 바탕으로 가격 협상력을 키우고 있다. 한미일 3국에서도 전력 효율과 가격 경쟁력을 갖춘 AI 데이터센터용 시스템·메모리반도체 공동 개발 필요성이 제기되는 등 메모리 공급망 경쟁은 국가 전략 산업 차원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업계에서는 AI 시대 반도체 경쟁의 무게중심이 단순 연산 성능에서 공급망 안정성과 인프라 운영 능력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특히 AI 데이터센터 확대가 장기 프로젝트화되면서 메모리 공급망 경쟁은 국가 전략 산업 차원으로 확대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더 좋은 칩을 먼저 만드는 기업이 시장을 주도했다면, 이제는 AI용 메모리와 전력 인프라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느냐가 핵심 경쟁력이 되고 있다”며 “향후 AI 산업 승부처도 단순 GPU 확보가 아니라 메모리 공급망과 데이터센터 운영 역량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HBM뿐 아니라 서버 D램과 SSD까지 AI 인프라 핵심 부품으로 자리 잡으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전략적 중요성도 이전보다 훨씬 커지고 있다”며 “향후 AI 반도체 경쟁은 결국 메모리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기업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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